도보에 관하여..

응답하라, 북녘의 산! 금강산(1638m)

*바다향 2014. 1. 10. 19:38
월간마운틴|13.12.20 11:57

 

1만2천봉우리 다시 볼 날을 기다리며

 

대한민국 국민의 대다수가 금강산을 처음 접하게 되는 계기는 아마도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으로 시작하는 동요 '금강산'이 아닐까 싶다.

마음만 먹으면 금방이라도 찾아갈 수 있을 듯한 신나고 경쾌한 리듬의 동요는 가곡'그리운 금강산'으로 이어져,

실제로는 찾아갈 수 없는 이념의 장벽 너머에 존재하는 산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10여 년전인 1998년, 금강산관광 계약이 체결되어 금강산을 찾을 수 있는 바닷길이 열렸고,

이어 육로를 통한 길도 생겨 많은 사람들이 말로만 듣던 금강산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2008년 잠시 열렸던 이념의 문이 닫혀 금강산은 다시 그리운 존재로 멀어졌다.

남한에도 금강산과 꼭 닮았다는 설악산이 있고 북녘의 산 중에 기세와 경치가 빼어난 다른 산들도 많은데,

우리들은 어찌하여 금강산만을 콕 집어 '그립다' 노래를 부르는 것일까.

그것은 휴전선 너머 멀지 않은 곳에 닿을 듯 닿지 못하는 아쉬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 세존봉에서 본 외금강 모습. 예부터 금강산의 산악미를 보려면 외금강으로 가라는 말이 있었다.

그 말처럼 외금강에는 기운차게 솟아오른 바위 봉우리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김용남作

 

 

볼수록 아름다워 금강이라네

금강산은 남한의 행정구역과 이름이 같은 강원도 회양군과 통천군, 고성군에 걸쳐있는 산이다.

최고봉인 비로봉의 높이는 1638m로 백두대간의 기운을 받아 약 160㎢의 면적에 펼쳐져 있다.

금강산의 아름다움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널리 알려져 있어,

송나라 시인 소동파는 '고려국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다'라고 말한 바 있고,

스웨덴의 구스타프 국왕은 '하느님이 천지창조를 하신 여섯날 중 마지막 하루는 금강산을 만드는데 보내셨을 것이다'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금강(金剛)'이라는 이름은 불교 경전인 <화엄경>에 '해동에 보살이 사는 금강산이 있다'고 적힌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름부터 불교와 인연이 깊은 금강산은 <동국여지승람>에도 금강, 개골, 열반, 풍악, 지달 등 다섯 가지 이름으로 적혀있는데,

이 중 '금강'과 '열반'이 불교용어이며 세존봉, 지장봉, 석가봉, 천불산, 미륵봉 등 봉우리 이름에서도 불교 색채를 눈치챌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봄에는 온 산이 새싹과 꽃에 뒤덮이므로 금강이라 하고,

여름에는 봉우리와 계곡에 녹음이 깔려 봉래, 가을에는 온 봉우리에 단풍이 곱게 물들어 풍악,

겨울이면 나뭇잎이 지고 암석이 앙상한 뼈처럼 드러나 개골이라 부르는 등 계절별로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흔히 말하는 금강산 1만2천봉, 8만9암자라는 표현에 걸맞게 금강 산군에는 1000m가 넘는 산이 60여 개가 솟아있고,

8개의 금강문, 금강산 4대 폭포라 불리는 구룡폭포, 조양폭포, 십이폭포, 비봉폭포를 비롯한 수많은 폭포와 기암괴석이 포진해

비경을 이루고 있다.

외무재령~차일봉~비로봉~옥녀봉~온정령~선창산으로 이어지는 금강산의 백두대간 줄기는

금강산을 내금강과 외금강으로 나눈다. 이는 설악산의 그것처럼 대간의 서쪽이 내금강, 동쪽이 외금강이다.

이에 더해 금강산의 동쪽으로 입석리에 펼쳐진 바다와 기암이 어울린 풍경이 금강산을 축소하여 옮겨놓은 듯하다 해서

해금강으로 불러, 금강산은 내ㆍ외ㆍ해금강으로 나누어 부른다.

 

↑ 가을의 연주담. 금강산 관광이 가능했던 시기에는 외금강 구룡연 코스에서 금강문을 지나

구룡폭포에 이르기 전에 볼 수 있던 계곡이다. 박지서作

 

 

계곡미와 산악미 갖춘 내ㆍ외금강의 절경

금강산 지질은 흑운모화강암과 화강편마암이 주종이다.

흔히 내금강은 여성으로, 외금강은 남성으로 비유하는데, 이에 맞게 내금강에는 경사가 완만한 계곡이 흐르고,

외금강에는 길이가 짧고 경사가 급한 계곡들이 침식 작용을 하여 산세를 험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즐기려면 계곡미가 갖춰진 내금강으로 들라 했고,

산악미를 원한다면 날카로운 첨봉과 절벽이 펼쳐진 외금강을 가라 했다.

내금강은 비로봉을 비롯하여 능허봉, 영랑봉, 월출봉, 일출봉, 내무재, 차일봉, 백마봉이 주맥을 이루고,

무려 만개의 폭포가 있다는 만폭동과 백천동, 태상동, 구성동, 수렴동, 백탑동, 장안동 등의 계곡들이 굽이쳐 흐른다.

아름다운 계곡미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전망대도 있어 백운대에 오르면 만폭동의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고,

거울처럼 매끈하다하여 이름 붙여진 명경대, 수렴동 안쪽으로 내금강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다는 망군대가 있다.

서북쪽의 구성동에는 금강산 4대 폭포 중 하나인 조양폭포가 있는데, 길이 31m에 이르는 2단폭포다.

내금강의 계곡들은 금강천과 동금강천으로 합쳐져 북한강의 상류원이 된다.

걸출한 산악미를 지닌 외금강에는 만가지 형상을 품고 있는 만물상, 톱니 모양의 관음연봉,

월출봉에서 동쪽으로 뻗어나간 채하봉과 집선봉 암릉 등이 자리를 잡고 있다.

특히 날카롭게 솟은 집선봉은 전문 클라이머들이나 오를 수 있는 등반지로,

일제시대 조선산악회나 백령회 회원들이 활동한 기록이 있다.

외금강에도 옥류동, 동석동, 성문동, 효운동, 만경동, 천불동, 천폭동 등의 계곡이 있는데,

옥류동에는 우리나라 3대 폭포의 하나인 구룡폭과 옥빛의 담이 8개나 이어지는 상팔담이 있다.

성문동에는 금강산 4대 폭포의 하나인 십이폭이 있는데, 이 폭포는 길이 289m로 금강산에서 가장 길다.

 

↑ 내금강의 표훈사. 금강산에는 유점사, 신계사, 장안사, 표훈사 등 4대 사찰로 불렸던 절들이 많았으나, 한국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이후에는 4대 사찰이라는 구분이 모호해졌다. 그나마 표훈사만이 옛 모습을 지닌 채 남아있다

 

 

이름이 불교에서 유래한 만큼 금강산에는 사찰이 많다.

속칭 금강산 4대 사찰이라고 부르는 유점사, 신계사, 장안사, 표훈사 외에도 정양사, 보덕굴, 마하연, 도솔암, 장경암,

지장암, 관음암 등 크고 작은 절이 1만2천봉 도처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천년사찰로서 유서 깊었던 4대 사찰들은 한국전쟁 때 크게 부서지는 피해를 입었다.

그나마 옛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표훈사는 내금강 최고 절경이라 불리는 만폭동의 입구에 남아있다.

금강산을 유람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금강산은 암석산인데다 경관이 좋아 암석에 글씨를 써서 각자한 것이 많다.

내금강 만폭동에는 양사언이 '봉래풍악원화동천(蓬萊楓嶽元化洞天)'이라고 쓴 초서가 널리 알려져 있는데,

속설에 '만폭동 경관의 값이 천냥이라면, 그 중 오백냥은 양사언의 글씨 값'이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다.

글씨 크기로는 외금강 구룡폭 절벽에 새겨진 '미륵불' 글씨가 가장 크다고 한다.

이외에도 바위 곳곳에 멋지게 새겨진 글씨들은 금강산 절경을 더욱 운치 있게 만들어 주는데,

분단의 역사를 거치며 공산주의 사상의 글씨들도 더러 새겨져 우리 정서와는 조금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 해금강의 만물상. 금강산은 계곡미의 내금강, 산악미의 외금강, 그리고 금강산을 바다에 옮겨놓은 것 같다 하여

해금강이라 부르며 세 지역으로 나누어 부른다. 해금강은 금강 산군이라 보기는 어렵지만 금강산 관광에서 빠뜨릴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곳이다. 김용作


 

이름도 아름다운 금강산의 명소들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려면 외금강의 만물상을 빼놓을 수 없다.

만물상은 금강산의 10가지 아름다움 중 산악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깎아지른 층암절벽과 다양한 형태의 기암괴석들이 우열을 다투듯 솟아오른 만물상 지역에는 한하계,

만상계, 망양대 등의 명소가 있다.

이 중 망양대라는 전망대에서는 동남 방향으로 뻗은 세지봉 줄기의 기암괴석과 서쪽 오봉산을 바라보기 좋다.

특히 날씨가 좋으면 멀리로 푸른 동해바다와 섬들이 보여 아름다움을 한층 더 하고,

천불동과 옥녀봉, 비로봉 등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옥류동은 옥빛처럼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골짜기 전체를 부르는 이름이다.

꽃송이를 닮았다는 천화대와 이쁘장하게 생긴 옥녀봉 등의 산봉우리들에 사면이 둘러싸여 더욱 아름다운 절경이 만들어진 장소다. 옥류동 안에 면적 600㎡, 깊이 5~6m에 이르는 맑고 푸른 담소 옥류담이 있고,

담 위의 넓고 완만한 바위 사면을 타고 구슬처럼 흘러내리는 물을 옥류폭포라 부른다.

이와 함께 금강산 곳곳에는 수많은 폭포들이 흐른다.

대표적으로 금강산 4대 폭포 중 하나인 비봉폭포는 세존봉 중턱에서 층층으로 된 바위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이

봉황이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모양과 같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개성의 박연폭포, 설악산의 대승폭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폭포에 속할 정도로 유명한 구룡폭포는 금강산의 풍치와

힘찬 기상을 상징한다. 150여m 높이의 절벽에서 쏟아져 내리는 구룡폭포는 수량이 많을 때 길이가 120m에 이르며,

금강산을 지키는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구룡연으로 물을 떨어뜨린다.

금강산은 아름다운 모습에 걸맞게 여러 전설들도 생겨났다.

8개의 담이 연이어지는 상팔담은 우리들이 잘 아는 '선녀와 나뭇꾼'에서 선녀가 목욕하던 못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삼선암에는 네 신선이 귀면암을 만들어 만물상을 구름으로 가리고 있던 마귀들을 쫓아낸 후,

세 신선은 만물상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막내 신선은 건너편에 자리를 잡아 만물상 경치를 감상하다 돌로 굳어졌다는

전설이 흐른다.

한국의 산천은 우리 민족의 역사의 장이요, 철학이다. 이 안에서 민족의 정서는 가다듬어 졌고, 사상이 생겨났다.

그러기에 우리 민족에게 있어 산은 경제적 효용성으로 값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가치를 앞세우는 소중한 자산이다.

이런 의미에서 금강산은 수려한 봉들에서 무한한 영기(靈氣)가 풍겨, 민족의 영기로 승화된 장소라 말할 수 있다.

금강산에 관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풀어놓는 일은 지면을 통해 모두 이야기하기도 어렵고, 직접 눈으로 보는 것만도 못한 일이다.

그래서 한때 마음만 먹으면 찾아갈 수 있었던 금강산이 지금은 아쉽다.

'그리운 금강산'을 다시 찾게 될 그 날은 과연 언제런가.ⓜ


TIP - 한반도 최초의 관광철도, 금강산선


금강산선은 철원에서 내금강까지 연결되던 경원선의 지선으로, 1924년 최초로 개통되어 1931년 전구간 개통이 완료된 노선이다.

다른 철도와는 달리 주로 관광 목적을 위해 건설된 점이 이채롭고,

당시의 한반도 철도로는 드물게 전기로 운행하는 전기철도였다.

이는 지형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당시 금강산 일대에 유역변경식 발전소가 설치된 점도 작용했다.

1942년 금강산선을 개통한 금강산철도주식회사가 일제의 전력 통제를 목적으로 경성전기주식회사로 흡수합병되었으며,

1944년에는 창도~내금강 구간이 불요불급한 노선으로 지정되어 철거되었다.

다만 창도에 유산철광이 있어 철원~창도 간의 구간은 해방시까지 유지되었다고 한다.

해방 이후에는 금강산선의 대부분 구간이 38선 이북에 있었기 때문에 북조선의 통제 하에 들어가게 된다.

이 당시에 운행이 되었는지는 불명확하고, 1945년 시점에서 운행이 중단되었다고도 한다.

이후 운행이 재개되지 못한 채로, 1950년 한국전쟁 이후 금강산선 주변으로 군사분계선이 설치되면서 사실상 폐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