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보여행

1/15일~겨울바다와 향호 호반길..

*바다향 2011. 1. 17. 03:12

항구의 어느 한 골목으로 들어서니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가히 장관이었다.

80년대 달동네를 연상시키는 좁다란 골목..

 

그리고 지그재그 연탄을 지어 나르던 그런 언덕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행렬은

좀처럼 보기힘든 그런 풍경이고도 남았다.

 

 

언덕을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풍경 또한 잊었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풍경이다.

                            나 어렸을적에, 한 분 밖에 안계셨던 

                       오래전에 위암으로 돌아가신 이모가 주문진에 사셨었다

그옛날엔 바다가 코옆인 가까운 지역에 살았어도 직접 생선을 잡고 보고 만지고 하진 않았기에

이모집에만 가면 사방에서 풍겨지던 생선비린내를 난 못견뎌 했었다.

유난히 나를 이뻐하시며 늘 나를 무릎에 앉히고 밥을 먹이려 하셨던

이모부의 사랑어린 손길도 왜그렇게 부담스러워 했었던지...

담배냄새와 더불어 풍겨지던 막걸리 냄새를 어린 꼬맹이가 당연히 좋아했을리 없었겠지.. 

 

그렇게 옛날을 회상하며 둘러본 어촌의 풍경...

옴닥옴닥 지붕들이 맞닿은 좁지만..그래서 더더욱 정이 묻어나는

어항마을의 끝에는 강원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등대가 자리하고 있다.

 

주문진은 본디 강릉 신리면 주문진리에 속했으나 이곳에 나루가 있다해서

주문진으로 변경되어 지금까지 불리어지고 있다.

주문진 등대가 위치한 곳은 서쪽 태백산맥 산줄기의 끝자락이다.

 

 

산맥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마지막 줄기이자 바다와 만나는 첫 지점...

 그 해안절벽에 불빛을 반짝이는 등대라는 사실만으로 신비롭기 그지없는......


주문진 등대는 그렇게 어촌을 한눈에 굽어보고 있었다.

1918년 봄날에 석유등으로 불빛을 밝힌 이래 강원도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로서

86년간 어민들과 고락을 함께 해오고 있다.

이곳 등대는 7.5초마다 한번씩 불빛을 반짝인다. 빛이 가 닿는 거리는 31마일에 이른다.

이 빛을 받아 실제 항해에 활용하는 선박의 거리는 20마일(37km) 해상이다.

먼 곳에서 우연히 등대 불빛을 바라보았던 사람들에게는 아주 작게 깜박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처럼 강렬한 불빛으로 광활하고 검푸른 파도 위를 대낮처럼 밝혀주는 것이다.

특히 낮선 밤바다에서 표류중이거나 악천후를 만난 선박에게 다가와 환하게 비추어지는

이 불빛이야말로 광명의 빛인 셈이다. 

작은 등불에서 시작한 주문진 등대는 이제 인공위성을 통해 정확한 길잡이로서

항해하는 선박의 뱃머리까지 다가서는 아주 세심하고 따뜻한 동행자가 된 것이다.

오래 전 아련한 등대지기 추억과 함께 첨단 등대지기 시대의 상징으로

그렇게 다가선 주문진 등대...

 

 

시인과 바다...

 

물론 커피와 그밖의 차를 파는 곳이지만,

바다를 노래하는 시인과 바다는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아름다운 바다를 노래하는 시인에게 이보다 더 좋은 소재는 없을 것 같다. 

 

흰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와 검푸른 바다...

 

그 속에 환호하는 行님들...

 

볼을 에이던 차가운 겨울의 바닷바람 앞에서도 너무도 꿋꿋하게 한몫을 한

꼬맹이 예아람과 그 형, ㅎㅎ형제는 용감 하였다?

 

 

 

 

 

이 곳은 소돌항의 아들바위 쉼터...

 

"아들바위"의 유래는 옛날 3대 독자 아들을 둔 부부가 전쟁에서  아들을 잃고

상심한 상태에서 이곳에 와서 지극 정성으로 기도를 올리자

이에 감동한 용왕이 바위 구멍을 통해서 아들을 점지해 주었고

그 때부터 아들바위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아들바위,

 

 

 

아들바위를 둘러보고 떠나 주무진 해수욕장 앞 바다.

 

 

 

 그 갖가지 표현을 잡기에 인간의 힘은 너무나 나약하지만..

오랫만에 보았던 겨울바다의 위상은 나를 꽤 오래 행복하게 할것이니..

 

머무는 내내 파도는 쉼 없이 갖가지 표정을 가지고 부서지고 있었다.

 

 향동교를 지나 향호호로 간다.

 

파아란 하늘은 눈이 시려울 만큼 맑고 청아하다.

 

그 하늘빛을 받은 호수는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향호......

해수가 섞여들어와 염분농도가 높은 석호...

 

플랑크톤이 풍부하고 부영양호가 많다고 하지만

이렇게 얼어붙어서야......

 

 

고려 충선왕(1309년) 때에는 고을 수령들이 향도집단과 함께 태백산지의 동해사면을 흐르는

하곡의 계류와 동해안의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에 향나무를 묻고

미륵보살이 다시 태어날 때 이 침향으로 공양을 드릴 수 있도록 해달라는

매향(埋香)의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향호의 이야기는 조선시대의 시인 안숭검(安崇儉)『산수비기(山水秘記)』에도 보이는데..

이에 따르면, 향골의 천년 묵은 향나무를 아름답고 맑은 호수 아래에 묻었는데,

나라에 경사스런 일이 있으면 향호의 침향(沈香)에서 빛이 비쳤다고... 

 

                  향호의 지명은 이러한 매향의 풍습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얼어붙은 호수를 끼고 도는 데크...

바람이 불어오면 한순간에 와르르......

그렇게 스러지나 싶으면 곧 제 모습을 되찾곤 하는 갈대..

그리고 향호의 추억을 가득 담은 갯배..

 

 
부는 바람이 아니더라도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것 같은

그 길을 돌아 걸으며 느낀 수많은 감정들......

그렇게 향호를 돌아오는중...마지막 길, 동네길에서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나게 된다.

동네의 젊은 사람 한명이 언성을 높여 우리들에게 소리를... 

요즘 곳곳에서 구제역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때라

우리는 그런 지역을 피해 코스변경해서 간다고 갔는데 그래도...

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불쾌하거나 화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버스를 타고 다시 돌아온 주문진항...

바다엔 선상바다낚시를 즐기려는 이들의 기호에 맞춰 바다체험낚시를 할 수 있는 배가 띄워졌다.

 

 

 

늦은 점심식사를 하기위해 주문진어시장으로 들어갔다

 

3시반쯤 어시장에서 모듬회와 얼큰한 도치탕으로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 이슬이도 한잔 곁들이고

오늘 걸었던 멋진길과 멋진 동해의 겨울바다에 대한 담소가 즐거웠고 새로 얼굴 익히는 이들도 반갑다.

 

혹한을 견디고 하루의 여정이 기분좋게 마무리 되고..

           겨울바다 주문진, 바우길은 아무리 추워도 우리들의 발걸음을 머뭇거리게 하지못하는

멋진 도보였다.

 

집에 오는길, 장거리 여행길은 매번 그랬듯이

오늘도 역시나 이미 서울에서의 마지막 고속뻐스는 놓친 시간이고

수원역에서 두시간여 기다렸다 10시35분 열차를 타야했다

 

하루종일 많은 사람들과 시끌벅적하게 걸을때는 그저 즐겁고 좋은데

이렇게 늦은밤 낯선 역사에서 홀로 기다리며 보내는 시간은 참 쓸쓸하고 황량하다...

을씨년스러운 한겨울의 찬바람이 늦은밤 더욱 스산하고

조금은 피곤했는지 한기가 들어 역앞 초장마차에서 오뎅먹고 오뎅국물을 마시다가 혀까지 데이고..

혼자 속으로...누가 등떠미는것도 아닌데 이추운날에 웬 고생이냐.. 하며 궁시렁 궁시렁~

ㅎㅎ 그럼에도 중독된 걸음인지..

난 또 멋진길 가보고 싶은 길엔 또 길을 나설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