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나 주목을 받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뭔가 신비롭고 알 수 없는 특징으로 다른 느낌을 줍니다.
이는 2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의 말을 들은 이들은 단순히 인간성 외에 여러 부분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예수의 말을 듣고 삶을 목격한 이들은 나사렛의 예수에게 타인들과 다른 뭔가가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에게 존경을 받을 어떤 자격이나 특징이 있다면 그 자신 뿐입니다.
책을 쓰거나, 군대를 이끌거나, 공직을 맡거나, 재산을 소유한 것도 아닙니다.
마을의 수백 마일 내에서 돌아다녔으며 군중들은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과 놀라운 이적에 놀랐습니다.
하지만 예수의 위대함은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본 이들에게 명백하게 나타났습니다.
많은 위인들이 결국 역사책 속으로 사라졌지만 예수는 아직도 수천 의 책들과 수많은 매체에서 벌어지는 논쟁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논쟁은 대개 예수가 자신에 대해 내세운 급진적인 주장, 즉 그의 추종자들과 옹호자들도 놀라게 만든 주장을 중심으로 벌어집니다.
예수에 대해 로마와 유대인 지배층 모두 위협으로 간주하게 만든 것은 다름아닌 예수만의 주장이었습니다
내세울 업적이나 정치적 권력기반이 전혀 없는 아웃사이더였지만 예수는 3년 내에 향후 20세기의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다른 도덕적 및 종교적 지도자들도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나사렛이 고향인 이름없는 목수의 아들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예수는 어떤 점에서 달랐을까요? 단지 위대한 성인이었을까요? 아니면 그 이상의 존재였을까요?
이는 예수가 진정으로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핵심을 묻는 질문입니다. 일
부에서는 예수가 단순히 위대한 도덕 선생이며, 단지 세계 최대 종교의 지도자였다고 믿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존재였다고 믿는 이들도 많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신이 인간의 몸으로 친히 세상을 방문하셨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의 삶과 말을 면밀히 연구한 캠브릿지 대학의 회의론자 교수 C.S. 루이스는 자신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놀라운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예수는 어떤 사람일까요?
많은 이들은 예수가 위대한 도덕 선생이었다고 답할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논쟁거리가 된 인물을 좀 더 깊이있게 살펴보는 작업의 첫 단추로, 예수가 단순히 위대한 도덕 선생이었는지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위대한 도덕 선생일까요?
타 종교에서도 예수가 위대한 도덕 선생이었음을 인정합니다.
인도의 지도자인 마하트마 간디는 예수의 도덕적인 삶과 깊이있는 발언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유대인 학자 요셉 클라우스너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예수는 가장 순수하고 심오한 윤리를 가르쳤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며, 그러한 가르침은 고대 현자들의 도덕적 계율과 격언을 훨씬
뛰어넘는 것입니다."'
예수의 산상수훈은 한 개인의 발언 중에서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가르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평등한 권리“로 알고 있는 내용의 대부분은 예수의 가르침이 낳은 결과입니다.
비기독교인 역사학자 윌 듀란트는 “예수는 ‘평등한 권리‘를 위한 삶을 살았고 끊임없이 투쟁했습니다. 지금였다면 그런 사람은 시베리아로 유배당했을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라는 말은 모든 일반적인 지혜 중에서도 정치적인 관념 일체에 대한 반전이었습니다“라고 예수에 대해 말했습니다.
많은 이들은 간디와 마찬가지로 예수가 단지 고귀한 도덕적 원칙을 가르친 선생이라 생각하고 윤리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과 자신에 대한 주장을 별개로 구분하려 했습니다.
이는 미국의 설립자 중 한 명인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이 택한 방법으로 신약에서 예수의 신성함을 언급한 것으로 보이는 부분을 잘라내고 윤리 및 도덕에 대한 가르침과 관련된 문구는 남겨두었습니다.
그렇게 개조한 신약을 지니고 다닌 제퍼슨은 예수를 사상 최고의 도덕 선생으로 존경했을 지도 모릅니다.
사실 미국 독립 선언서에서 제퍼슨이 쓴 인상깊은 문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별, 인종, 사회적 지위와 무관하게 신에게 너무나 중요하다는 예수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합니다.
독립 선언서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권리를 창조주로부터 받았다는 진실이 자명하다고 선언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제퍼슨은 한 가지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가 신이라는 주장이 거짓이라면 훌륭한 도덕 선생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는 실제로 자신이 신성하다고 주장했을까요?
예수의 주장을 살펴보기 전에 그가 단순히 위대한 종교 지도자였을 가능성을 확인해야 합니다.
위대한 종교 지도자일까요?
놀랍게도 예수는 자신이 종교 지도자라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종교적 정치에 끼어들거나 야심찬 목표를 밀어붙인 적도 없으며 목회 활동 역시 기존의 종교 프레임을 거의 완전히 벗어나서 진행했습니다.
예수를 다른 종교 지도자와 비교해보면 한 가지 놀라운 차이가 나타납니다.
힌두 문화에서 성장한 라비 재커라이어스(Ravi Zacharias)는 세계의 종교를 연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다른 주요 종교의 창시자들 간의 근본적인 차이를 발견했습니다.
“여러 종교를 보면 신도에게 내리는 지시, 즉 삶의 방식이 존재합니다. 조로아스터에게 의존하는 게 아니라 조로아스터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나를 태어나게 한 존재는 부처가 아니며, 우리는 부처의 사성제를 통해 배움을 얻는 것입니다. 마호메트가 나를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코란의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예수는 자신의 가르침을 단순히 전달하거나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가르침 그 자체였습니다.”
재커라이어스의 말에 담긴 진실은 복음서에 나온 예수의 가르침이 단순한 “내게 오라“, “나를 따르거라“, 또는 “내 말을 따르거라“였던 횟수로 입증됩니다.
또한 예수는 자신의 최우선 과제가 죄를 사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혔으며 이는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휴스턴 스미스는 자신의 저서 World’s Great Religions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동시대인들에게 너무나 큰 감명을 준 나머지 유일하게 갖는 의문이 ‘저 분은 어떤 사람인가?’가 아니라 ‘저 분은 무엇인가?’였던 성인은 단 두 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와 부처입니다. 이
두 분이 내린 답은 질문과 정 반대의 것이었습니다.
부처는 자신도 신이 아닌 한 인간이라고 명백하게 말했으며, 마치 후일 자신을 숭배하려는 시도가 있을 거라고 눈치챈 것이나 다름없는 답이었습니다.
반면 예수는 자신의 신성함을 주장했습니다.”
이는 예수가 자신에 대해 어떤 주장을 실제로 했는지 확인하는 다음 단계로 이어지며, 구체적으로는, 예수가 실제로 자신이 신성하다는 말을 했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예수는 신이라고 주장했을까요?
그렇다면 예수가 신이라고 주장했다고 많은 학자들이 확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작가인 존 파이퍼는 신(하나님)만이 유일한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예수가 주장했다는 설명을 합니다.
“…예수의 친구들과 적들은 그의 말과 행동에 몇 번이고 크게 놀랐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길을 걷다가도 몸을 돌려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브라함 이전에 내가 있었노라‘ 또는, ‘나를 보았다면, 내 아버지를 본 것과 다름없다‘ 아니면, 신성모독이라는 비난을 받은 후에는 매우 침착하게 이런 말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사람의 자식은 이 땅에서 죄를 사할 권세가 있다‘ 죽은 자에게는 이 두 마디만 던졌다고 합니다. ‘앞으로 나오라‘ 또는 ‘일어나라‘ 그렇게 말하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바다에 폭풍이 불면 ‘잠잠해져라‘라고 했으며 한 덩어리의 빵을 ‘수천 명이 먹을 빵으로 되어라‘고 말했습니다. 말하는 대로 즉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말을 통해 예수가 의미한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가 단지 모세나 엘리야, 다니엘과 같은 선지자였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복음서를 간단히 살펴보면 예수는 자신이 선지자 이상의 존재라고 주장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자신에 대해 그런 말을 한 선지자는 없었으며, 사실 어떤 선지자도 자신을 신과 동일시하지 않았습니다.
일부에서는 예수가 절대로 “나는 신이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나는 신이다“라는 말 자체를 하지 않았음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예수는 “나는 인간이다” 또는 “나는 선지자다“라고 명백하게 말한 적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는 분명한 인간이었으며, 그 추종자들은 예수를 모세나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로 간주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가 자신이 선지자라는 말을 하지 않으므로 선지자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는 것처럼 “나는 신이다“라는 말 자체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성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예수가 자신에 대해 한 말은 그가 단순한 성인 또는 선지자였다는 생각과 정반대로 배치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는 여러 번 자신이 신의 아들이라 일컬었습니다.
예수가 신의 아들이라는 생각이 과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그룹 U2의 리드싱어인 보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요. 제게는 과한 생각이 아닙니다. 보세요. 세상의 반응은 언제나 이렇습니다. 예수는 위대한 선지자였으며, 매우 흥미로운 사람임에는 분명하고, 엘리야, 마호메트, 부처, 공자 등 다른 위대한 선지자와 비슷한 말들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실 예수는 그러한 생각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직설적으로 말씀하시죠.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 아니다. 나는 내가 선생이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니 선생이라 부르지 말아라. 내가 선지자라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신이 사람의 모습을 한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천만에요. 그냥 선지자로 계셔 주십시오. 선지자로 받아 들일 수 있습니다.”
예수의 주장을 살펴보기 전에, 그가 그러한 주장을 유일신에 대한 유대인의 믿음을 바탕으로 주장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믿음이 강한 유대인이라면 절대로 하나 이상의 신을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자신의 아버지(하나님)에게 이렇게 기도하면서 유일신에 대한 믿음을 보였습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
하지만 이 기도를 하면서 예수는 자신의 아버지와 항상 함께 존재했다는 점도 언급했습니다.
빌립이 예수에게 아버지를 보여달라는 요청을 하자 예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빌립, 나와 그렇게 오래 지냈으면 나를 모르느냐? 나를 본 자라면 아버지를 본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이것이 됩니다.
“예수는 자신이 우주를 만든 히브리인의 신이라고 주장하고 있었을까요?”
예수는 자신이 아브라함과 모세의 신이라고 주장했을까요?
예수는 계속해서 듣는 이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표현으로 자신을 묘사했습니다.
파이퍼에 따르면 예수는 다음과 같은 대담한 발언을 했습니다.
“아브라함 전에 내가 있었노라“[11] 마르다와 그녀 주변에 있던 이들에게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부활이며 생명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산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말로,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나는 ‘진리‘이다" 라는 발언도 했습니다.
이 외에 여러 발언은 신을 위한 거룩한 말씀인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I AM / ego eimi)”보다 나중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발언을 통해 예수는 무엇을 의미했으며,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은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요?
이해를 위해 다시 한 번 상황을 파악해야 합니다.
구약을 보면 모세가 불에 타는 가시덤불에서 신에게 이름을 묻자 신은 이렇게 답합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I AM).” 신은 모세에게 자신이 유일신이며 신만이 시간의 통제를 받지 않고 항상 존재해왔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입니다. 믿을 수 없지만 예수 역시 자신에 대해 이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왜?”가 될 것입니다.
모세 이후로 목회 활동을 하는 유대인이 자신이나 그 누구도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스스로 있는 자“라 주장하자 유대인 지도자들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이를테면 한 번은 지도자들이 왜 자신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지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한 인간인데 자신을 신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오.”
예수가 신의 이름을 사용한 행동이 종교 지도자들을 크게 분노하게 만들었던 것이었습니다.
중요한 점은 구약 학자들도 예수가 하는 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는 자신이 우주의 창조주인 신이라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신성모독이라는 비난을 초래했을 내용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주장일 것입니다.
자신이 신이라는 예수의 주장이 확실하다는 상황을 보다 깊이 이해하려면 그러한 발언 외에도 그에 대한 반응도 확인해야 합니다.
C. S. 루이스는 처음에는 예수를 근거없는 신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신화를 잘 알고 있었던 문학적인 천재인 그 역시 예수가 분명히 실존 인물이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또한 루이스는 예수 관련 증거를 조사하면서 예수가 실존 인물일 뿐 아니라 그 누구와도 다른 사람이라는 점에도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는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 때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시 그 곳에 있던 유대인 중에서 갑자기 자신이 신인 것처럼 말하고 다니는 한 남성이 나타났습니다. 자신이 죄를 사한다고 했으며 항상 그 곳에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종말의 때가 되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루이스에게 예수의 주장은 일반적인 학자나 종교 지도자가 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심오하고 급진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어떤 신이었을까요?
일부에서는 예수가 신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신의 일부분이며, 우리 마음 속에는 신성함의 씨앗이 존재한다는 생각으로는 예수의 말과 행동에 대해 설명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생각은 수정론자적이며 예수의 가르침과 믿음, 그리고 그 사도들이 이해한 예수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예수는 유대인이 이해하는 신, 그리고 구약에서 묘사한 것과 동일한 신이 자신이며 뉴 에이지 운동에서 이해하는 신과는 다르다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나 그 추종자들은 스타워즈를 본 적이 없으므로 신에 대해 언급할 때 우주의 힘를 말한 것도 아닙니다.
예수가 신의 개념을 통해 제시한 의미를 재정의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루이스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점은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인디언과 같은 다신교자라면 자신이 신의 일부거나, 신과 함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유대인이었으므로 그런 의미로 신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들의 언어에서 신이란 이 세상 밖의 존재이며 세상을 다른 어떤 것보다 무한히 다르게 만든 존재입니다.
그 개념을 이해하게 되면 예수가 말한 의미가, 간단하게 보자면, 인간의 입술 밖으로 나온 말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를 위대한 선생으로 받아들이는 한편 신으로 부르기 꺼려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신론자로서 우리는 토마스 제퍼슨이 도덕과 윤리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한편 예수의 신성은 부정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더 깊이 파고 들게 되면 예수는 자신이 주장한 존재가 아니라면, 다른 대안을 검토해야 하는데,
그러한 대안 중 어떤 것도 예수를 위대한 도덕 선생으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루이스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저는 지금 사람들이 예수에 대해 하는 말 중에서도 정말 어리석은 말을 못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바로 이 말입니다.
‘저는 예수를 위대한 도덕 선생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신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말입니다.”
루이스는 진실을 찾던 중에 예수의 정체성에 대해서 답은 한 가지 뿐임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는 자신이 주장하는 대로,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이 맞거나, 그 주장이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고 주장이 잘못되었다면 예수는 위대한 도덕 선생이 될 수 없습니다.
고의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자신을 신으로 착각하는 정신 이상자일 것입니다.
예수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나요?
예수에 대해 가장 가혹한 비평을 퍼붓는 이들도 예수가 거짓말쟁이라는 말을 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거짓말쟁이라는 표현은 예수의 고결한 도덕성과 윤리적인 가르침에 맞지 않습니다.
예수가 자신의 주장과 다른 존재라면, 고의적으로 거짓말을 하여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하면서 영향력이 큰 정치적 작품은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1532년에 쓴 ‘군주론‘입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충성심, 믿음, 정직함에 비해 권력, 성공, 이미지, 효율성을 크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작가에 따르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만 있다면 거짓말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가 단지 권력, 명성, 성공을 위해 거짓말을 기반으로 자신의 사역을 수행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사실 예수를 거부했던 유대인들은 예수가 속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거짓말쟁이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부각시키려 했습니다.
이들은 예수에게 질문을 퍼부어 실수를 유도하려 하고 자가당착에 빠뜨리게 만들려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놀라울 정도의 일관성으로 대응했습니다.
우리가 다뤄야 하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예수가 평생을 거짓말쟁이로 살았다면, 그렇게 만든 동기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예수는 신이 거짓과 위선에 반대되는 존재라고 가르쳤으므로, 거짓을 행하여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 그랬을 리는 없습니다.
또한 추종자들을 위해 거짓말을 했을 리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은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예수를 버리는 대신 순교를 택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얻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얻는 것이 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합니다.
사실, 대부분 거짓말의 동기는 자신이 얻는 혜택입니다.
예수가 자신의 정체에 대해 거짓말을 해서 얻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선 가장 분명한 답은 권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가 신이라고 사람들이 믿었다면 예수에게는 엄청난 권력이 주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 황제와 같은 고대 지도자들이 신성함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설명의 문제점은 예수 스스로가 왕좌에 앉을 수 있는 모든 시도를 포기했으며 그 대신 권력을 남용하고 권력을 추구하는 삶을
사는 이들을 꾸짖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예수는 창녀와 나환자와 같이 버림받은 이들에게 손을 내밀었으며, 이들은 영향력이 없느니만도 못한 존재였습니다.
이상하다고 할 수 밖에 없지만, 예수가 행한 모든 행동과 말은 권력과 정반대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권력이 예수의 동기였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십자가를 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는 사도들에게, 십자가가 자신의 운명이고 해야 할 일이라고 여러 차례 말했습니다.
로마의 십자가 위에서 목숨을 잃음으로써 권력을 얻을 수 있을까요?
물론 죽음은 모든 것을 제대로 된 관점으로 맞춰주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순교자들은 자신의 믿음을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알려진 거짓말을 위해 목숨을 바치려 한 순교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예수 자신의 개인적인 영달을 위한 모든 희망도 분명 십자가 위에서 종말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는 단 하나 뿐인 신의 아들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신약 학자인 J. I. 패커는 이 제목이 예수의 신성함을 더욱 부각시킨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업적을 남기기 위해
그렇다면 만약 예수가 개인적인 유익을 위해 거짓을 행하기에는 너무나 고귀한 존재였다고 치면, 그가 내세운 급진적인 주장들은 업적을 남기기 위해 조작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슈퍼스타가 될 수 있다 해도 사람들에게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고 십자가에 못박혀야 한다면 슈퍼스타가 되려는 이들의
열정은 급속히 식어버릴 것입니다.
여기 놀라운 사실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예수가 신의 아들이라는 주장을 굽히기만 했더라면 절대로 비난을 사지 않았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자신이 신이라는 주장과 이를 굽히지 않으려는 의지였습니다.
신뢰성과 역사적 명성을 높이는 것이 예수가 거짓말을 한 동기였다면 가난한 유대인 마을에서 태어난 목수의 아들이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게 될 상황을 예측했을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메시지가 오랫동안 전해질 것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예수의 제자들은 도망갔고 베드로는 그를 부인했습니다.
종교적 업적을 남기기 시작하려는 시도라고 보기에는 부족한 근거가 많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예수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할까요?
학자들은 예수의 도덕성에 결함이 조금이라도 있는지 찾기 위해 그의 말과 삶을 면밀히 조사했습니다.
사실, 정말 열정적인 회의론자마저도 예수의 도덕성과 윤리적 순결함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역사학자 필립 샤프에 따르면 기독교 역사상, 또는 일반적인 역사에서도 예수가 거짓말을 했다는 증거는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논리와 상식,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도대체 어떻게 거짓말을 일삼고 이기적이며 부패한 사람이, 역사상 가장 순수하고 고귀하며 가장 완벽한 진실의 느낌과 현실성을 주는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요?
예수가 거짓말을 했다는 설명은 그가 가르치고 실천했으며 목숨을 바친 모든 것에 역행하는 생각입니다.
대부분 학자에게 이는 말도 되지 않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예수의 주장을 부인하려면 뭔가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예수의 주장이 거짓이라면, 그리고 예수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면, 이제 남은 유일한 설명은 스스로를 속였다는 것이 됩니다.
예수가 스스로 속인 것일까요?
인류에 대한 노력을 인정받아 1952년에 노벨상을 받은 슈바이처 박사는 예수에 대해 자신만의 관점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예수가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정신이상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주장은 틀렸지만, 고의로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예수는 자신이 실제로 메시아라고 믿도록 속은 셈입니다.
루이스 역시 이 설명을 면밀하게 검토했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주장이 거짓이라면, 예수는 미친 사람이었을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루이스의 생각은 자신이 신이라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위대한 도덕 선생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자신이 삶은 달걀이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는 정신이상자이거나, 지옥의 악마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예수의 삶과 말을 연구해 온 많은 학자들은 예수가 극단적일 정도로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인정합니다.
자신의 삶이 영생과 개인적인 회의론으로 가득했지만 유명한 프랑스의 철학자 루소(1712~78)는 예수의 우월한 성격과 심리상태를 이러한 말로 인정했습니다.
“상상 속의 정의로운 사람에 대한 플라톤의 설명은 정확하게 예수의 이미지에 부합합니다. …
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은 철학자의 삶과 죽음이지만, 예수의 삶과 죽음은 신의 삶과 죽음이었습니다.”
U2의 보노는 “미친 놈“이야 말로 예수에 대해 붙일 수 없는 별명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결국 남은 것은 예수가 자신이 주장하는 그런 존재이거나, 아니면 완전히 미친 놈이라는 것입니다. 즉 희대의 살인마였던 찰스 맨슨 정도의 정신이상자라는 뜻입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정신이상자 하나 때문에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발전해 온 시간 동안, 그리고 전 세계 인구 중 절반 이상이 운명이 바뀌고 완전히 뒤바뀐 셈입니다. 그 정도면 정말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거짓말쟁이거나 정신이상자였을까요? 아니면 신의 아들이었을까요?
“훌륭한 도덕 선생“으로 예수를 받아들이긴 했으나 신성함은 부인한 제퍼슨의 생각이 옳을까요?
재미있는 점은 예수의 신자나 적을 모두 포함하여 그의 말을 들은 이들은 모두 예수를 단순한 도덕 선생 이상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를 만난 이들은 크게 증오, 공포, 또는 경배 등 3가지 감정을 느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주장은 우리로 하여금 선택을 하게끔 강요하고 있습니다.
루이스가 말한 바와 같이 예수를 단순히 위대한 종교 지도자 또는 훌륭한 도덕 선생으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루이스와 같이 과거에 회의론자였던 이들도 이런 말을 통해 우리가 마음을 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 사람이 과거, 그리고 현재에 신의 아들이었는지, 아니면 정신이상자이거나 그보다 더 심한 경우였는지 말입니다. 어리석다고 몰아세워 입을 닫게 만들거나, 침을 뱉거나, 악마로 몰아서 죽이거나, 그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주인으로 경배하거나 신으로 모시거나, 선택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가 사람인 위대한 선생이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는 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 스스로도 그런 말은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의도도 품은 적이 없습니다.”
루이스는 자신의 저서인 순전한 기독교에서 예수의 정체성에 대해 살펴본 결과, 예수 자신이 주장한 내용이 정확하게 맞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예수의 삶과 말에 대해 면밀히 검토한 이 천재적인 문학자는 그 전까지 믿고 있던 무신론을 버리고 열렬한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입니까?”
U2의 보노, C.S.루이스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을 방문한 신이 바로 예수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예수는 오늘날 살아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추종자들이 하는 생각도 그렇습니다.
예수는 정말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을까요?
우리 시대에서 가장 큰 질문 중 하나는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입니다.
예수는 단지 뛰어난 사람이었을까요?
아니면 바울, 요한 등 사도들이 믿은 것처럼 인간으로 태어난 신이었을까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단지 믿음만 가지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니면 역사적인 증거가 존재할까요?
일부 회의론자들은 부활에 대한 이야기가 거짓임을 입증하기 위해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무엇을 발견했을까요?
이곳을 클릭하면 지금까지 가장 놀라운 주장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관련된 증거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는 우리가 죽은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까?
예수가 실제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돌아왔다면, 죽은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는 삶의 의미와 우리의 미래에 대해 어떤 말을 했을까요?
신께 이르는 길은 다양하다고 했을까요? 아니면 예수 자신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했을까요?
“왜 예수인가?”에서 놀랄만한 답변을 확인해 보십시오.
예수는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요?
“왜 예수인가?”는 예수가 오늘날 갖는 중요성에 대한 답을 제시합니다.
예수는 이러한 삶과 관련된 중요한 질문들에 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 있는가?” 그리고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예수는 삶과 우리 인간이 지구상에 태어난 목적에 대한
주장을 했으며, 우리는 예수를 부정하거나 무능하다고 비난하기 전에 이러한 주장에 대해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예수는(Why Jesus)”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예수가 왜 이 땅에 왔으며, 예수의 재림이 인간에게 뜻하는 바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는 실존 인물이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는 실존 인물이었을까요?
그리고 기독교는 해리 포터와 같은 가상의 인물을 바탕으로 태어난 허구에 불과할까요?
2천년 가까이 대부분 사람들은 예수를 예외적인 성격과 리더쉽, 그리고 초자연적 능력을 가진 실존 인물로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현재 일부 사람들은 예수가 존재한 적이 없다고도 합니다.
예수의 실존 여부와 관련된 논쟁인 예수 신화론은 예수가 유대 언덕을 걸어 지나간 후 17세기에 시작되었습니다.
American Atheists의 회장인 Ellen Johnson은 이 예수 신화론을 CNN TV 래리 킹 라이브(Larry King Live)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예수가 실존했다는 현실적인 증거는 단 한가지도 없습니다.
예수는 신화적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한 기원과 사망에 대한 이야기를 가진 다른 신들을 통합한 존재입니다.
이에 놀란 진행자는 이렇게 묻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믿지 않나요?”
Johnson은 “예수 그리스도가 존재했음을 알리는 현실적인 증거는 단 한가지도 없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King은 광고를 요청했습니다.
전세계의 시청자들이 궁금증을 품게 되었습니다.
옥스포드의 문학자인 C. S. Lewis 역시 무신론자였던 어린 시절에 예수는 신화이며, 모든 종교는 단순히 인간이 지어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수 년 후 Lewis는 Oxford 기숙사 방의 난로 옆에서 “알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신론자”인 친구와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갑자기 친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복음의 사실성에 대한 증거는 놀랄 정도로 신빙성이 높고, 실제로 있었던 일 같다.”
Lewis는 크게 놀랐습니다.
예수에 대한 실제 증거가 있었다는 친구의 말은 Lewis에게 직접 사실을 알아보라고 재촉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는 예수의 진실에 대한 조사를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라는 저서에 남겼습니다.
그렇다면 Lewis의 친구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발견한 증거는 무엇일까요?
고대 역사에 따른 사실
먼저 좀 더 기본적인 질문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허구의 인물과 실제 인물을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요?
이를테면 역사학자들에게 알렉산더 대왕이 실존 인물이라고 납득시킬 수 있는 증거는 무엇이 있을까요?
그리고 그러한 증거가 예수에게도 존재할까요?
알렉산더와 예수 모두 카리스마가 뛰어난 리더들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30대 초에 사망해서 대외적 활동은 길지 않습니다.
예수는 사랑으로 이기는 평화로운 성격으로 알려졌으며, 알렉산더는 반대로 무력으로 통치한 전쟁의 화신으로 알려졌습니다.
B.C.336년에 알렉산더 대왕은 마케도니아의 왕이 되었습니다.
군사적 천재로 잘 생긴 외모와 거만한 성격의 이 리더는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수많은 마을과 도시, 왕국을 휩쓸어 모든 것을 손아귀에 쥐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다고 판단되자 눈물을 흘렸다고도 합니다.
알렉산더에 대한 이야기는 그가 사망한 시점으로부터 300년도 더 전에 쓰여진 고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리고 알렉산더라는 사람을 눈으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알렉산더를 실존 인물이라고 생각하며 알렉산더가 역사에 미친 영향과 고고학을 통해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확증되었다는 것이 그 주요 이유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가 실제 인물이었다면 다음과 같은 분야에서 존재의 증거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 고고학
- 초기 비기독교적 설명
- 초기 기독교적 설명
- 초기 신약 필사본
- 역사적 영향
고고학
시간은 예수와 관련된 많은 미스터리를 묻어버렸으며 이 미스터리들은 최근에서야 밝혀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발견은 18~20세기 중에 발굴된 고대 필사본들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필사본에 대해서는 나중에 살펴보겠습니다.
또한 고고학자들은 신약에 등장한 예수의 이야기와 일치하는 수많은 장소와 유물들도 발견했습니다.
Malcolm Muggeridge는 영국 언론인으로 BBC에서 TV 관련 업무차 이스라엘에 간 동안 그러한 증거를 보기 전까지 예수를 허구로 생각했습니다.
신약의 예수 관련 이야기에 등장한 장소들 관련 보도를 한 후 Muggeridge는 이렇게 썼습니다.
“예수의 탄생, 사역, 십자가에 못박힘 등에 대한 확신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저는 예수라는 한 사람이 정말로 존재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전까지 로마의 총독 본디오 빌라도와 유대의 대제사장인 요셉 가야바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재판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히게 만든 핵심 인물입니다.
회의론자들은 이런 불충분한 증거야말로 예수 신화론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1961년에 고고학자들은 “본디오 빌라도, 유대의 총독”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석회석 벽돌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1990년에는
가야바의 이름이 새겨진 납골 상자도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어떠한 의심도 할 수 없는” 진품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2009년까지는 예수의 고향인 나사렛이 그의 생전에 존재했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었습니다.
Rene Salm과 같은 회의론자들은 1세기 당시 나사렛이 존재했다는 증거가 없음을 기독교의 치명적인 오류라고 생각했습니다.
2006년 Salm은 저서 Myth of Nazareth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자유사상가들이여, 축복하라…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가 드디어 종말을 고할 수도 있다!”
하지만 2009년 12월 21일, 고고학자들은 1세기의 나사렛에서 사용된 점토 조각을 발견했으며,
이 작은 마을이 그리스도의 시대에 존재했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했습니다(참고: “예수는 정말로 나사렛 출신인가?”).
이러한 고고학적 발견이 예수가 그 곳에서 살았음을 증명하지는 못하지만 그의 생애의 복음서들을 뒷받침해 줍니다.
역사학자들은 늘어나는 고고학적 증거들이 예수에 대한 이야기에 반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를 뒷받침해준다고 합니다.
초기 비기독교적 설명
Ellen Johnson과 같은 회의론자들은 예수와 관련하여 “세속사의 부재”야말로 예수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시대에 존재했던 인물과 관련된 증거는 그 누구에 대해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부분 고대 문서들은 전쟁, 화재, 약탈 또는 단순 풍화 등으로 인해 1세기 중에 파괴되었습니다.
로마제국과 관련된 비기독교 문서 대부분을 정리한 E. M. Blaiklock에 따르면
“특히 그리스도 생전과 관련된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하며, 율리어스 시저와 같은 실제 지도자 관련 자료도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황제의 존재를 의심하는 역사학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Darrel Bock에 따르면 예수는 위대한 정치 또는 군사적 지도자도 아니었으므로 “우리가 가진 자료에 예수가 등장한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우면서 중요한 점”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Bock이 말하는 자료는 무엇일까요?
예수를 다룬 초기 역사학자들 중 기독교적인 연관성이 없었던 이는 누구일까요?
먼저 예수의 반대 세력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유대인 역사학자: 예수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이득이 가장 큰 이들이 유대인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야말로 예수를 실존 인물로 간주해왔습니다.
“일부 유대인들의 자료를 보면 예수를 자신들이 반대한 실존 인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의 형제”인 야고보에 대해 다룬 적이 있는 유대인 사학자 Flavius Josephus의 말입니다.
예수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면 Josephus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다소 논쟁거리가 될 만한 다른 말을 들어보면 Josephus는 예수에 대해 보다 광범위한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 당시 예수라는 이름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행동은 선했으며, 도덕적인 이로 알려졌습니다.
유대인 중,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도 많은 이들이 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빌라도는 그에게 십자가에 달리는 형을 선고하여 죽였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제자들은 그에 대한 제자의 신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 제자들에 따르면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린 후 3일 만에 자신들 앞에 나타났고 다시 살아났다고 합니다.
이에 사람들은 예수를 메시아라고 생각했습니다.”
논란거리가 된 발언도 있지만 Josephus의 예수의 존재에 대한 이러한 확인은 많은 학자들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학자 Shlomo Pines은 이러한 글을 남겼습니다.
“기독교를 가장 심하게 반대하는 이들조차 예수가 실존 인물이었다는 점에 의구심을 표한 적이 없습니다.”
세계 역사학자인 Will Durant에 따르면 1세기를 살았던 유대인이나 비유대인 중에서 예수의 존재를 부인한 이는 없다고 합니다.
로마 역사학자 초기 로마 역사학자들은 황제에게 중요한 사건과 인물들에 대한 기록만 남겼습니다.
예수 역시 정치나 군사적으로 로마에 크게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으므로 로마 역사학자 중 예수를 언급한 이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로마 사학자 중에서도 중요한 인물들인 Tacitus와 Suetonius는 예수의 실존을 인정합니다.
Tacitus(서기 55~120)는 초기 로마 역사학자 중 가장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는 이로 Christus(그리스도의 그리스어 표기)가 티베리우스 황제 시대에 살았으며
“본디오 빌라도의 핍박을 받았고 예수의 가르침이 로마까지 전해졌으며 기독교인들은 죄인으로 여김 받아 십자가형을 포함한 여러 방법으로 고문을 받았다” 고 기록했습니다.
Suetonius(서기 69~130)는 “Chrestus”를 선동자로 묘사했습니다.
대부분 학자는 이것이 예수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는 서기 시대에 기독교인들이 네로 황제의 핍박을 받았다고도 기록했습니다.
로마 관료: 기독교인들은 로마 황제(가이사) 대신 예수를 왕으로 받아 들였으므로 로마의 적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로마 황제 2명을 포함하여 다음의 로마 정부 관료들은 그러한 관점에서 서한을 남겼으며, 예수와 초기 기독교의 기원에 대해서도 언급하였습니다.
플리니(Pliny the Younger)는 트라얀 황제 시대의 총독이었습니다.
서기 112년에 플리니는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신으로 숭배하는” 그리스도를 포기하게 만들려는 시도와 관련하여 황제에게 서한을 남겼습니다.
트라얀 황제(서기 56~117)도 예수와 초기 기독교 기원에 대해 언급한 서한을 쓴 바 있습니다.
하드리안 황제(서기 76~136)는 기독교인을 예수를 따르는 자들로 묘사했습니다.
이교도: 일부 초기 이교도 작가들도 2세기 말 이전에 예수 또는 기독교인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였습니다.
Thallus, Phlegon, Mara Bar-Serapion, Lucian of Samosate 등이 이러한 작가들이었습니다.
특히 Thallus의 예수에 대한 언급은 예수가 사망한 후 약 20년 뒤인 서기 52년경에 작성되었습니다.
총 9명에 달하는 초기 비기독교 세속 작가들이 예수가 사망한 후 150년 내에 그를 실존 인물로 묘사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수의 세속 작가들이 예수의 시대에 황제였던 디베료 황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는 점입니다.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들 자료를 고려하게 되면 예수를 언급한 자료의 수는 디베료를 언급한 10명에 비해 42명이나 됩니다.
예수에 대한 역사적 사실:
이러한 초기 비기독교적 자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는 나사렛 출신이었습니다.
예수는 지혜롭고 선한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는 유대인의 왕으로 여겨져 디베료 황제가 통치하던 시대에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가 죽었다고 생각했으며, 그 후 3일이 지나자 죽음에서 돌아왔습니다.
예수의 반대 세력들은 그가 남다른 능력을 보여주었다고 인정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빠르게 늘어났으며, 로마에서도 제자들이 나타났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도덕적인 삶을 살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신으로 경배했습니다.
예수의 삶에 대한 이러한 전반적인 요약 내용은 신약과도 완전히 일치합니다.
Gary Habarmas의 말에 따르면 “비기독교인 자료 중 약 3분의 1이 1세기에 나타났으며, 대부분은 2세기 중반에 나타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Encyclopedia Britannica 에 따르면 “이러한 독립적인 이야기들은 기독교에 반대하는 이들도 예수의 역사적 진실성을 의심하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초기 기독교적 설명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와 관련하여 수천 건의 서한과 설교 및 주석을 남겼습니다.
또한 예수를 언급한 교리들도 그가 십자가에 못박힌 지 5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비성경적 글들은 십자가에 못박힘과 부활을 포함하여 예수에 대한 신약의 내용을 대부분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점은 이러한 기록의 일부 또는 전체 36,000건 이상이 발견되었으며
그 중에서는 1세기에 작성된 것도 있습니다.
이러한 비성서적 기록은 전체 신약 중 몇 구절을 제외한 내용을 재구성할 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이 기록을 작성한 이들은 예수를 실존 인물로 묘사했습니다.
예수 신화론자들은 이러한 기록이 편향된 것이라고 무시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답해야 하는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가 허구의 인물이라면 어떻게 단 수십 년의 그의 삶에 대해 그렇게 수많은 이야기가 쓰여질 수 있을까요?
신약성서
Ellen Johnson과 같은 회의론자들은 신약도 “편향”되어 있으며 예수에 대한 증거로 충분치 못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장 비기독교적인 역사학자들도 고대 신약 필사본을 예수의 존재에 대한 확실한 증거로 간주합니다.
캠브릿지의 역사학자이자 무신론자인 Michael Grant의 경우 신약을 다른 고대 역사에 대한 증거와 동일하게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야 하겠지만, 역사적 자료가 담긴 고대 기록과 동일한 기준을 신약에 적용한다면,
우리는 역사적 존재를 누구도 의심하지 않은 다수의 이교도 인물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더 이상 예수의 존재도 부정할 수 없게 됩니다.
4대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는 예수의 생애와 언행을 묘사한 주요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경우 데오빌로에게 전하는 말로 시작됩니다.
“모든 일을 맨 처음부터 완전히 이해한 나도 데오빌로 각하 당신에게 차례대로 써서 알리는 것을 좋게 생각하였으니”
유명 고고학자인 William Ramsey 경은 원래 누가복음의 예수에 대한 역사적 설명을 거부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최근 그는 이렇게 인정했습니다.
“누가야말로 최고의 사학자입니다… 이 분은 역사상 최고의 사학자들과 함께 존경받아야 합니다… 누가가 남긴 역사는 그 신뢰성에 있어서 최고라 할 수 있습니다.”
알렉산더와 관련된 초기 자료는 그가 사망한 후 300년이 지나서 작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의 삶에 대한 복음서들의 이야기는 실제에 얼마나 근접한 것일까요?
예수를 실제로 본 이들이 그 때까지 살아있었으며, 또는 예수에 대한 전설이 완성되기까지 충분한 시간이 있었을까요?
1830년대에 독일 학자들은 신약이 3세기에 작성되었으며 이는 예수의 사도들이 작성하기에는 너무나 늦은 시기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19, 20세기에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필사본의 사본을 통해 이러한 예수에 대한 이야기들이 3세기보다 훨씬 전에 작성되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William Albright는 신약이 작성된 일자를 “서기 50년에서 서기 75년 사이” 사이라고 추정했으며, 캠브리지의 사학자 John A. T. Robinson의 경우 서기 40~65년 사이로 추정했습니다.
이러한 시간대가 의미하는 것은 예수를 본 증인들이 살아 있었으며 예수와 관련된 전설이나 허구가 완성되기 훨씬 전이라는 뜻입니다.
C. S. Lewis는 복음서들을 읽어본 후 이렇게 적었습니다.
“문학 사학자로서 나는 복음서들이 허구가 아니라는 점을 100%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 관련 전설은 많이 읽어봤으며 복음서와 전설은 다르다는 점을 매우 명확하게 확신할 수 있습니다.”
신약 필사본의 수는 엄청납니다.
부분 또는 전체 필사본의 경우 24,000 건 이상이 존재하며 이는 다른 어떤 고대 문서보다 월등히 많은 양입니다.
다른 어떤 종교적 또는 세속적인 고대 인물도 예수 그리스도만큼 많은 문서가 뒷받침해주지 못합니다.
역사학자 Paul Johnson은 이런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이를테면 Tacitus와 같은 인물은 단 하나의 중세 필사본에만 등장하지만 초기 신약 필사본의 양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역사적 영향
허구는 역사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역사학자 Thomas Carlyle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계의 역사는 위대한 인물에 대한 전기라 할 수 있습니다.”
국가의 기반이나 유산을 신화적인 인물이나 신으로 내세우는 국가나 정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평균적인 로마 시민은 예수가 사망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예수가 미친 영향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는 군대를 지휘한 적이 없습니다. 책을 쓰거나 법을 바꾼 적도 없습니다.
유대인 지도자들과 로마의 황제들은 예수와 관련된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었으며, 성공할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은 고대 로마의 유적 뿐입니다.
황제의 강력한 군대와 로마 제국의 강력한 힘도 모두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오늘날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요?
그가 지금까지 남긴 영향력은 무엇일까요?
- 역사상 예수보다 더 많은 책에 쓰인 인물은 없습니다.여러 나라에서는 예수의 말을 정부의 기반으로 활용했습니다.
- Durant의 말을 빌리자면 “그리스도의 승리야말로 민주주의의 시작이었습니다.”
- 예수의 산상 수훈은 윤리와 도덕에 있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습니다.
- 학교, 병원, 그리고 인권 단체들이 그의 이름으로 설립되었습니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다트머스, 콜롬비아, 옥스포드를 비롯한 100개 이상의 유명 대학들이 그의 제자들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 서양 문화권에서 여성의 지위가 상승한 것도 예수가 근원입니다 (예수 시대의 여성들은 예수의 가르침이 퍼지기 전까지 열등한 존재이자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습니다).
모든 인간의 생명이 중요하다는 예수의 가르침 덕분에 영국과 미국에서는 노예제도가 사라졌습니다.
놀라운 점은 대중(공생애) 사역으로 3년 만에 이러한 모든 일들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니다.
유명한 세계 역사학자 H. G. Wells에게 역사상 가장 큰 유산을 남긴 이가 누구인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러한 기준이라면 예수야말로 최고입니다.”
예일대의 역사학자 Jaroslav Pelikan은 예수에 대해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예수에 대해 누가 개인적으로 어떤 생각을 하거나 믿음을 갖더라도 나사렛의 예수가 거의 20세기 동안 서양 문화권을 지배해 온 인물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가 태어나면서 인류의 달력 대부분이 시작되었고, 예수의 이름에 의해 수백만 명이 그에게 저주를 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수백만 명이 기도를 합니다.”
예수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러한 허구가 어떻게 이 정도로 역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는지에 의문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전설 속의 신들이 인간의 환상과 욕망을 대신 실현해주는 슈퍼히어로들로 묘사되는 한편 복음서들은 예수를 겸손하고 인애를 겸비하고 순전한 도덕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추종자들은 예수에 대해 목숨이라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실존 인물이라고 말합니다.
비기독교 과학자인 Albert Einstein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복음서들을 읽다 보면 예수가 실존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단어 하나 하나에 예수의 성격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어떤 전설이나 신화도 그만큼 생생하지 못합니다… 예수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점과 그의 말이 아름다웠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이러한 전설에서 표절했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예수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주장은 유튜브에서 공개된 영화인 시대정신(Zeitgeist)에서도 제기되었으며,
이 영화를 만든 Peter Joseph은 대담하게도 이런 주장을 내세웠습니다.
사실 예수는 허구적인 인물이며, 여러 유신론적 종교를 비롯한 기독교는 그 시대의 사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 묘사된 예수와 신화 속의 신들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분명합니다.
복음서에서 드러난 실제의 예수와 비교할 때 신화의 신들은 이러한 환상 속의 요소를 가진 비현실적 신들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 미트라는 바위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 호루스는 매의 머리를 가진 것으로 묘사됩니다.
- 바커스, 헤라클레스를 비롯한 여러 신들은 페가수스라는 말을 타고 천국에서 날아왔다고 합니다.
- 오시리스의 아내인 이시스는 그를 살해한 후 시신을 14조각으로 자른 후에 다시 모아서 부활시켰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에서는 이러한 신화를 바탕으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일까요?
예수의 추종자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며, 예수의 부활이 사실이라는 주장에 대해 목숨이라도 걸 수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예수의 부활과 유사하게 부활한 신에 대한 이야기들은 예수의 부활이 알려진 후 최소 100년 후에 처음으로 알려졌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호루스, 오시리스, 미트라 등의 신이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이야기는 원래 신화에 없었으며, 복음서에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진 후에 추가된 것입니다.
룬드 대학 교수인 T. N. D. Mettinger는 “현대 학자들은 부활한 신들이 기독교보다 나중에 등장했다는 점에 거의 공통적으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이 신들은 모두 1세기 이후에 등장했습니다.”
대부분 역사학자들도 이러한 신화의 신들과 예수 그리스도 간에 진정한 유사점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C. S. Lewis의 생각은 영생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관련된 공통적인 주제는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Lewis는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 3부작의 저자인 J. R. R. Tolkien과 나눈 대화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Tollkien은 “예수에 대한 이야기”는 “진정한 신화일 뿐이고 실제 일어난 사건과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신약성서 연구학자인 F. F. Bruce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일부 작가들은 ‘예수 신화론’을 활용할 수도 있겠지만, 역사적인 증거를 기반으로 활용하지는 않습니다. 편견이 없는 역사학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역사적 진실성은 줄리어스 시저의 역사적 진실성 만큼이나 자명합니다. ‘예수 신화’론을 퍼뜨리는 것은 역사학자들이 아닙니다.”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역사학자들은 예수를 실존 인물로 보고 있을까요?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알렉산더 대왕과 예수 그리스도는 모두 실존 인물입니다.
하지만 예수에 대한 필사본 증거는 알렉산더와 관련된 역사적 기록보다 훨씬 위대하고 수백 년 이상 예수의 삶에 근접해 있습니다.
게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영향은 알렉산더가 미친 영향을 크게 뛰어넘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예수의 실존 여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증거를 제시합니다.
고고학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발견은 복음서에 나온 인물과 장소를 계속해서 증명해 주고 있으며,
가장 최근에는 본디오 빌라도와 가야바가 1세기에 나사렛에 존재했다는 증거도 발견된 바 있습니다.
예수의 존재를 기록한 역사적 문서는 수천 건이 넘습니다.
예수가 떠나고 150년이 지나지 않아 기독교 신자가 아닌 9명을 포함하여 42명에 달하는 작가들이 예수를 언급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일한 시기에 디베료 황제를 언급한 세속 작가의 수는 9명이고, 줄리어스 시저의 정복을 언급한 작가는 5명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두 황제의 존재를 부인하는 역사학자는 없습니다.
종교 관련 여부와 무관하게 역사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다른 어떤 인물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인정합니다.
위대한 세계 역사학자인 Will Durant는 예수 신화론을 조사한 후, 다른 신화 속의 신들과 달리 예수가 실존 인물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역사학자 Paul Johnson은 진지한 학자라면 예수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말합니다.
무신론자인 역사학자 Michael Grant도 “정리하자면, 현대의 비판 방식으로는 예수 신화론을 뒷받침할 수 없습니다. 최고의 학자들이 몇 번이고 예수 신화론을 반박해왔습니다."
비기독교 역사학자인 H. G. Wells는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에 대해 가장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이야말로 누구도 지어낼 수 없는 진실입니다.
예수는 정말로 죽은 후에 부활한 것인가요?
예수 그리스도를 실제로 본 이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난 것을 믿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어떤 신화나 종교도 그렇게 열정적인 믿음을 가진 추종자들을 갖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단지 믿음만 가지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니면 역사적인 증거가 존재할까요?
일부 회의론자들은 부활에 대한 이야기가 거짓임을 입증하기 위해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무엇을 발견했을까요?
복음서의 이야기는 사실일까요?
신약의 복음서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증언일까요? 아니면 세월이 흐르면서 변했을 가능성도 있을까요?
우리는 단지 신약에 등장한 예수의 이야기를 믿으면 되는 걸까요? 아니면 진정으로 믿을 만한 증거가 존재할까요?
최근 ABC 뉴스 진행자 피터 제닝스는 이스라엘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특별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The Search for Jesus”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통해 그는 신약 속 예수가 역사적 신빙성이 있는 존재인지 묻습니다.
제닝스는 드폴 대학 교수인 존 도미니크 크로산과 그의 동료이자 지저스 세미나(Jesus Seminar) 출신 교수 3명, 그리고 2명의 성경 학자로부터 복음 속 이야기에 대한 견해를 듣습니다 (지저스 세미나[Jesus Seminar]는 그동안 기록된 예수의 말과 행동에 대해 토론하고
복음서 속 이야기에 대한 신뢰성의 정도를 빨간색, 분홍색, 회색 또는 검은색 구슬로 투표하는 학자들의 모임입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놀라운 논평들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전국에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에서 크로산 박사는 예수의 발언 중 80% 이상에 대해 의심을 표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신성하다는 예수의 주장과 예수의 기적 및 부활도 부정했습니다.
제닝스는 분명히 크로산이 묘사한 예수의 이미지에 흥미를 가진 듯 했습니다.
진정한 성경의 역사를 찾아 나서는 것은 언제나 뉴스거리이며 그러한 이유로 해마다 뉴스위크나 타임지 등에서도 마리아, 예수, 모세, 아브라함 등에 대해 커버스토리를 다루기도 합니다. 아니면, 올해에는 “최초 공개, 13번째 제자 밥의 이야기”라는 기사가 여기저기서 다루어질 지도 모릅니다.
이는 연예 기사나 다름없으며 그에 대한 조사도 끝없이 진행되겠지만, 뚜렷한 결과가 나온다면 소재거리가 사라지는 것이나 다름없으므로 결과도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또는, ‘서바이버‘ 프로그램의 에피소드처럼 서로 완전히 다른 관점을 섞어 명확한 내용을 보여주는 대신 답이 나올 희망이 없어 보일 정도로 복잡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닝스의 보도는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 한 가지를 중점적으로 다루었습니다.
크로산은 예수에 대한 진짜 이야기가 다른 구전으로 만들어졌으며 제자들이 죽고 나서야 제대로 기록되었다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서의 이야기는 대부분 믿기 어려우며 실제 예수의 모습을 정확히 나타내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진정한 예수의 모습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할까요?
번역이 문제였을까요?
그렇다면 증거는 어떨까요? 2가지 간단한 문제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신약 원본은 언제 작성되었을까요? 그리고 누가 작성했을까요?
이 질문의 중요성은 명백합니다.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예수를 본 이들이 사망한 후 작성된 것이라면 그 정확성은 누구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신약이 작성된 시점이 제자들이 생존할 때라면 그 진위를 가릴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가짜 신약에 대해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어이, 그건 내가 쓰지 않았다고.”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등도 예수를 비난할 목적으로 던지는 질문 등에 대해 답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약을 쓴 이들은 예수에 대한 실제 증언을 적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베드로는 한 서신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모시는 주인인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그의 부활에 대해 말한 것은 거짓으로 꾸민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두 눈으로 그가 장엄하게 빛나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베드로후서 1:16 NLT)
신약 대부분은 사도 바울이 젊은 교인들에게 보낸 13건의 서한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바울의 서한은 40~60년(서기 12~33년 )으로 되어 있으며,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입니다.
윌 듀란트는 바울의 서한이 갖는 역사적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기독교적 증거는 성 바울이 작성한 서한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존재나 바울이 베드로,
야고보, 요한, 바울 등과 여러 번 만났다는 사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이는 없었으며, 바울은 이들이 예수를 실제로 알고 있었다는 점을 부러워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일까요?
여러 책, 잡지, TV 프로그램, 다큐멘터리를 통해 지저스 세미나에서는 복음서가 무명의 작가들에 의해 서기 130~150년 사이에 작성되었다는 것을 암시했습니다.
이 시기가 정확하다면 예수가 사망한 시점으로부터 약 100년간의 시간이 공백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예수가 서기 30~33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본 사람들도 모두 사망했으므로 복음서는 무명의 거짓 저자들이 썼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에 대한 복음 속 이야기가 쓰여진 시점에 대해 어떤 증거가 있을까요?
대부분 학자들은 복음서가 1세기 중에 제자들이 작성했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여러 이유를 들고 있는데 본 기사에서 나중에 살펴볼 예정입니다.
다만 이들의 결론을 입증할 수 있는 다음의 3가지 주요한 증거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신약과 그 주제 및 문구를 인용한 마르시온(Marcion) 및 발렌티누스(Valentinus) 학파와 같은 이단자들의 초기 문서 (“Mona Lisa’s Smirk” 참고)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 이그나티우스(Ignatius), 폴리카프(Polycarp) 등과 같은 수많은 초기 기독교 문서
탄소측정연대가 서기 117년경까지 올라가는 복음 사본
성경 고고학자인 윌리엄 올브라이트는 자신의 연구를 근거로 신약의 내용은 모두 제자들이 대부분 생존했을 때 작성되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오늘날 신약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평을 고려할 때 우리는 이미 신약 중 어떤 책도 서기 130~150년 사이 시점으로부터 2세대나 앞서는 서기 80년경 이후에 작성되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른 기록을 보면 올브라이트는 신약 전체의 작성 시점을 “서기 50~75년 사이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습니다.
회의론자로 유명한 존 A. T. 로빈슨의 경우 신약이 쓰여진 시기를 가장 보수적인 학자들보다 더 빠르게 추정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저서인 “Redating the New Testament“에서 로빈슨은 신약의 내용 중 대부분은 서기 40~65년 사이에 작성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죽은 후 7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 신약이 쓰여졌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예수를 증언할 수 있는 이들이나 예수의 적들이 즉시 역사적인 오류를 지적하며 일어날 것입니다.
이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약이 완성된 과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사본의 수
신도들은 제자들이 작성한 원본을 소중히 모셨습니다.
교회에서는 이 원본들을 연구하고 공유했으며 마치 보물처럼 깊숙한 곳에 보관했습니다.
하지만 로마 정부의 탄압과 2천여년의 세월이 흘러 열역학 제 2법칙으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제 원본 중에서 무엇이 남아 있을까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필사본 원본은 모두 소실되었습니다(다만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아직도 혹시나 하나라도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바램에 고고학 관련 프로그램인 Antiques Roadshow를 열렬히 시청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신약 외에도 비슷한 고대 문서들이 이러한 운명을 겪어 소실되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지금이라도 연구할 만한 사본이 있다면 필사본 원본이 없다는 점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신약의 고대 사본은 과연 존재할까요? 그리고 존재한다면 원본과 얼마나 근접해 있을까요?
교회의 수가 급증하면서 교회 지도자의 감독 하에 작성된 사본의 수도 급증했습니다.
양피지나 파피루스지에 한 글자씩 조심스럽게 적은 사본들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학자들은 그렇게 남겨진 사본들을 연구하여 (또는 사본의 사본, 아니면 사본의 사본의 사본 정도가 될지도 모릅니다) 내용을 검증하고 원본에 대해 최대한 가까운 시점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고대 문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본문 비평이라는 방법을 개발하여 오디세이와 같은 고대 작품과 다른 고대 문서를 비교하여 정확성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군사 역사학자인 찰스 샌더스는 3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진 테스트 방법으로 본문 비평을 더욱 보완했는데
이는 사본의 사실성을 검증할 뿐 아니라 작자의 신뢰성까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 테스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고서 검증법
2. 내부 증거 테스트
3. 외부 증거 테스트[7]
이러한 테스트를 신약의 필사본에 적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 지 살펴보겠습니다.
고서 검증법
이 방법은 한 문서가 작성된 동일한 시대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이 사용됩니다.
원본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본이 존재하는가?
원본과 가장 초기의 사본 사이에 시간차가 얼마나 존재하는가?
원본 문서가 그 시대의 고대 역사와 비교하여 얼마나 사실적인가?
이를테면 신약 필사본에 대해 사본이 2~3개만 존재한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샘플링을 해도 너무 양이 적어서 정확성을 판단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반면에 사본이 수백개, 수천개라면 전달 과정에서 발생한 내용상 오류를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약은 다른 고대 문서와 비교할 때 사본의 수와 원본과 사본 간의 시간차가 어떠할까요? 오
늘날 그리스어로 작성된 신약의 필사본은 5천건이 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타 언어 번역본까지 포함하면 엄청나게도 2만 4천여건이 되며, 작성 시기는 2~4세기입니다.
성경을 제외하고 가장 잘 보관된 고대 문서라 할 수 있는 호머의 일리아드의 경우에는 사본이 643건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대부분 고대 문서는 현존하는 사본이 그보다도 훨씬 적습니다(대개 10건 이하).
신약 학자인 브루스 메츠거는 이러한 의견을 밝혔습니다.
“이러한 사본의 수에 비해 신약의 본문 비평은 그 풍성함이 비할 바가 못 됩니다.”
원본과의 시간차
이러한 사본의 수 외에도 원본이 작성된 시점과 사본이 만들어진 시점 간의 시간차 역시 중요합니다.
수천년 동안 이야기가 어떻게 바뀌어 전해졌는지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 시간이 수백년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독일의 비평가인 바우어(Ferdinand Christian Baur)(1792~1860)는 요한복음이 서기 160년경까지 작성되지 않았으며 그러므로 요한이
썼을리가 없다고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요한의 글에 대한 사실성에 문제가 발생할 뿐 아니라 전체 신약의 사실성에도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신약의 파피루스 조각이 이집트에서 발견되었을 당시, 그 중에는 요한복음의 조각도 있었으며 (구체적으로는 P52, 요한[John] 18:31~33) 그 작성 시점은 요한이 원본을 쓴 후 약 25년 이후로 추정됩니다.
메츠거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로빈슨 크루소가 모래사장에서 단 하나의 발자국을 발견한 다음 두 발을 가진 다른 인간이 같은 섬에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과 마찬가지로, P52[발견된 조각에 붙인 이름]는 일반적으로 문서가 작성되는 소아시아의 에베소와 같은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나일강 인근의 마을에서 2세기 중반에 제 4의 복음서가 존재 및 사용되었음을 입증합니다.”
수많은 노력 끝에 고고학계에서는 원본 작성 후 150년 후까지 추정되는 신약 사본들을 발굴해냈습니다.
대부분 고대 문서는 400년에서 많게는 1,400년의 시간차가 존재합니다. 이
를테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Poetics)”은 기원 전 343년 경에 쓰여졌지만 그 사본 중 가장 오래된 것도 작성 시점이 서기 1100년에 불과하며 단 5개의 사본만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플라톤이 철학자가 아니라 사실은 소방관이었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조사에 나설 사람은 없습니다.
사실 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이라고 불리는 거의 완전한 성경의 사본은 제자들의 원본이 작성된 후 단 250년에서 300년 사이 후에 작성되었습니다.
신약의 가장 완전하고 오래된 사본은 시내 사본(시내 사본)이라고 불리며 대영 박물관에 보관되고 있습니다.
그 작성 시기는 바티칸 사본과 마찬가지로 4세기 경으로 추정됩니다.
기독교 역사 초기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은 다른 성경 사본과 마찬가지로 내용상 서로 큰 차이가 없으며, 원본의 이야기를 추정할 수 있는 좋은 힌트라 할 수 있습니다.
비평가 존 A. T. 로빈슨도 이를 이렇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사본이 풍부하고 무엇보다 원본과 가장 오래된 현존 사본 간의 좁은 시간차를 고려할 때 전세계 고대 문서 중 가장 증빙이 확실한 문서라 할 수 있습니다.”
법학 교수인 본 워윅 몽고메리도 이런 말로 힘을 보태었습니다.
“신약의 최종적인 사본에 대해 의심을 품는다는 것은 다른 모든 고대 문서와 문학 작품들의 사실성에도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과 동일합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고대 문서도 신약처럼 뚜렷하게 검증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점은 이것입니다.
신약이 실제 사건과 매우 근접하게 작성되고 사람들이 돌려서 보았다면 거기에 나온 예수에 대한 언급 역시 정확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외부적인 증거 외에도 신뢰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며, 학자들의 경우 내부적인 증거를 통해 신뢰성을 증명하기도 합니다.
시내 사본의 발견
1844년에 독일의 학자인 콘스탄틴 티셴도르프는 신약의 필사본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는 우연히 시내산의 성 카타리나 수도원에 있는 도서관에서 오래된 종이가 가득한 바구니를 발견했습니다.
이 독일 학자는 충격과 기쁨에 휩싸였습니다. 그렇게 오래된 그리스어 필사본은 처음 보았기 때문입니다.
티셴도르프는 도서관 관리인에게 이 바구니에 대해 물어보았고, 이 종이를 땔감으로 쓰려 했다는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이미 두 바구니나 되는 문서들이 불에 타 사라졌습니다.
티셴도르프의 열정적인 모습에 수도사들은 겁을 먹었고 다른 사본을 숨기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발견한 43장의 문서는 가져가도록 허락했습니다.
15년 후 티셴도르프는 시내산의 사원으로 돌아갔는데 이번에는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더 2세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사원에서 머무르는 동안 한 수도사가 티셴도르프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가 천으로 싸서 물잔과 접시와 함께 찬장에 보관되고 있었던
필사본 뭉치를 내밀었습니다.
티셴도르프는 곧바로 이 뭉치가 예전에 본 필사본의 일부임을 알아챘습니다.
사원에서는 이 사본을 그리스 교회의 수호자인 러시아 황제에게 증정하는 데 동의했습니다.
1933에 소련 연방은 10만 파운드를 받고 이 사본을 대영 박물관에 팔았습니다.
시내 사본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완전한 신약 사본으로, 그 중요성도 가장 높습니다.
일부에서는 시내 사본에 대해 콘스탄티누스 1세가 4세기 초에 유세비우스 교황에게 작성하도록 맡긴 50개의 성경 사본 중 하나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시내 사본은 신약의 정확성을 증명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내부 증거 테스트
훌륭한 탐정과 같이 역사학자들은 내부 증거를 통해 신뢰성을 증명합니다.
이러한 증거는 작가들이 문서를 남긴 의도와 확인 가능한 세부 사항 및 그 밖의 내용을 밝히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학자들이 신뢰성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한 핵심적인 내부 증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증인들이 남긴 보고서의 일관성
이름, 지역명, 사건의 세부 사항
개인 또는 소규모 집단에 발송된 서한
저자들에게 난처한 내용
중요성이 낮거나 역효과를 낳는 내용의 존재 여부
관련 자료의 존재 여부
프라이데이 나이트 라이츠(Friday Night Lights)라는 영화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 영화는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고 하지만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여러 영화와 마찬가지로 보는 이들은
“정말 저랬을까?” 하는 질문을 품게 됩니다.
그렇다면 역사적 신뢰성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한가지 힌트는 중요성이 낮은 내용의 존재 여부입니다.
영화 중간에 한 등장인물이,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어머니가 뇌종양에 걸렸다는 전화를 받는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 사건은 줄거리와 아무 상관이 없으며, 이후에도 다시 언급되지 않습니다.
중요성이 낮은 이 사건에 대해, 실제로 발생했으며, 영화 감독은 역사적 정확성을 유지하려 이 사건을 끼워넣었다는 점 외에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같은 영화에서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극의 흐름을 따라 우리는 퍼미안 팬더스 미식 축구팀이 주 챔피언십을 따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이들은 승리하지 못하며, 이는 극 자체에 역효과를 가져오는 느낌을 주지만 관객은 실제로 퍼미안 팬더스 팀이 패배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역효과를 가져오는 내용의 존재 역시 역사적 정확성을 나타내는 증거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실제 지역과 휴스톤 아스트로돔(Houston Astrodome)과 같이 익숙한 랜드마크를 사용하여 관객은 영화를 사실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요소는 확증이나 위조가 너무나 쉽기 때문입니다.
이는 내부적 증거를 통해 한 문서에 대한 역사적 정확성을 입증하거나 반증하는 몇 가지 사례에 불과합니다.
이제 신약의 역사적 정확성을 나타내는 내부적 증거를 살펴보겠습니다.
일관성
위조된 문서라면 목격자의 증언이 없거나 일관성이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서에 드러난 명백한 모순은 복음서에도 오류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반면에 각 복음서의 내용이 완전히 동일하다면 공모의 혐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공모자들이 계획의 세부적인 부분을 맞추기로 합의하는 것이나 다름없게 됩니다.
일관성이 너무 강해도 너무 부족한 경우처럼 의심을 사게 됩니다.
범죄나 사고를 목격한 증인들은 일반적으로 큰 줄기는 옳게 보지만 그 관점은 각기 달라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4개의 복음서 역시 예수의 삶을 각기 다른 관점에서 다루게 됩니다.
하지만 관점과 무관하게 성경 학자들은 복음서의 이야기들에서 나타나는 일관성과 예수 및 그 가르침을 명확히 전달한다는 점,
그리고 상호 보완적인 내용에 놀라워하고 있습니다.
세부 사항
역사학자들은 문서에 나타난 세부적인 내용을 통해 신뢰성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문서가 상세할수록 좋아합니다.
바울의 서한을 보면 매우 상세하게 작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서의 내용 역시 세부적인 내용이 아주 많습니다.
이를테면 누가복음과 누가의 사도행전의 수신인인 데오빌로라는 각하였는데 그는 당시 유명한 인물이었음은 분명합니다.
제자들이 이러한 내용을 꾸며냈다면, 꾸며낸 이름, 장소 및 사건은 제자들의 적인 유대인과 로마 관료들이 바로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이는 1세기의 워터게이트 사건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약의 세부사항들은 대부분 각기 사실임이 증명되었습니다.
이를테면 고대 역사학자인 콜린 헤머는 “사도행전의 마지막 16개 장에서 84개의 사실이 고고학 연구를 통해 확인“었다고 합니다.
최근 몇 세기 동안 회의론적인 성경 학자들은 누가가 복음서를 썼다는 사실과 그 시점에 대해 공격했는데 그 이유는 누가복음이 신원
미상의 작가에 의해 2세기 중에 쓰여졌다는 것입니다.
고고학자 윌리엄 램시 경은 이들의 생각이 옳다고 판단하고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연구를 한 결과 램시 경은 생각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그
는 이렇게 인정했습니다. “누가야말로 최고의 사학자입니다… …이 분은 역사상 최고의 사학자들과 함께 존경받아야 합니다… …
누가가 남긴 역사는 그 신뢰성에 있어서 최고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바울의 전도 여행과 그가 방문한 곳, 만난 사람들, 전달한 메시지, 그리고 그가 받은 핍박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그 모든 내용이 위조되었을 수 있을까요? 로마 역사학자인 A. N. 셔윈화이트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제자들의 행동에 대한 역사적 진실성은 넘칠 정도입니다. …그 기본적인 진실성을 부인하려는 시도는 더 이상 아닙니다. 로마 역사학자들은 오랫동안 이를 당연시해왔습니다.
복음서의 이야기에서부터 바울의 서한에 이르기까지 신약의 작가들은 세부적인 내용의 모든 것을 공개했으며
당시 생존한 이들의 이름까지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그 이름 중 적어도 30개 이상을 확인하였습니다.
소집단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서한
위조된 내용 중 대부분은 본 기사와 같이 일반적이고 공개된 내용에서 나온 것입니다
(분명히 암시장에는 이미 수없이 많은 위조 문서가 돌아다니고 있을 것입니다).
역사 전문가인 루이스 고트샤크는 소집단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작성된 개인적인 서한은 신뢰성이 높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신약은 어떠한 범주에 속할까요?
신약 중 일부는 분명히 여러 사람들을 대상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하지만 신약 중에서도 많은 부분은 소집단의 사람들과 개인을 대상으로 한 개인적인 서한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적어도 이러한 내용은 위조된 것으로 간주되지 않을 것입니다.
난처한 내용
많은 작가들은 자신에게 누가 될 수 있는 내용을 다루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역사학자들은 저자들을 난처하게 만드는 내용이 담긴 문서에 대해 신뢰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신약의 저자들은 자신들을 어떻게 묘사했을까요?
놀랍게도 신약의 저자들은 자신들에 대해 우둔하고 겁이 많으며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이라고 적었습니다.
이를테면 베드로가 예수를 3번이나 부인했으며 제자들 중 누가 가장 위대하냐는 논쟁을 한 사실이 있습니다.
두 사건 모두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초기 교회에서는 제자들에 대한 존경심이 매우 중요했으므로 이러한 내용이 포함되었다는 점은 제자들 스스로가 진실을 말하고 있지
않다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윌 듀란트는 문명 이야기(The Story of Civilization)에서 제자들에 대해 다룬 적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세상을 개조하려 하는 유형과 거리가 한참 멀었습니다. 복음서는 이들의 성격에 대해 현실적으로 차별화했으며 이들의 잘못도 정직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역효과를 낳거나 중요성이 낮은 내용
복음서에서는 예수의 빈 무덤을 한 여성이 발견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여성의 증언은 거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법정에서도 증거로 제시할 수도 없었습니다.
예수의 어머니와 가족들은 예수가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가 남긴 마지막 말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리고 신약에 적힌 일련의 사건들 역시 작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사실적으로 전달하려는 것 외에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역효과를 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관련 자료의 존재 여부
이방인 선교, 은사, 세례, 리더십 등 1세기 기독교에서 발생한 주요 문제 중에서 예수가 직접 언급한 것으로 알려진 사건이 거의 없다는 점은 모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또는 논리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의 추종자들이 단지 기독교를 성장시킬 목적으로 내용을 꾸며내고 있었다면 왜 이들이 예수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위조하지 않았는지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한 가지 예를 보면, 사도 바울은 특정한 문제에 대해 단호하게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바가 없소.”
외부 증거 테스트
문서의 신뢰성을 증명할 수 있는 3번째이자 마지막 방법은 외부 증거 테스트로 이러한 질문을 던집니다.
“신약 외의 역사적 기록들을 통해서도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비기독교인 역사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어떤 말을 하고 있을까요?
“전반적으로 최소한 17건의 비기독교 문헌 기록에 예수의 삶, 가르침, 죽음 부활과 관련된 세부사항 50개 이상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는 같은 시기에 대한 역사적 자료가 매우 부족함을 고려할 때 매우 놀라운 점입니다.
예수는 같은 시대의 인물인 카이사르의 정복보다 더 많은 문헌에서 다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신약의 세부사항에 대한 확인이 예수가 죽은 후 20~150년 사이, 즉 고대 역사기록학의 기준으로 볼 때 상당히 이른 시기에 이루어졌으므로 더욱 놀랍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약의 신뢰성은 36,000 건이 넘는 성경 외의 문서(첫 3세기 동안 교회 지도자들이 한 말)를 통해 더욱 높아지며 이 문서들은 신약의 마지막 기록 이후 10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작성되었습니다.
신약 사본 전체가 유실되었다면 몇 개 구절이 빠지더라도 이러한 다른 서한에서 다시 그 내용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보스턴 대학 교수인 하워드 클락 키는 이러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신약 외 출처를 조사해본 결과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에 대한 지식, 즉 그의 역사적인 존재, 비범한 능력, 추종자들의 헌신, 예수가 죽은 후에도 멈추지 않은 예수에 대한 추종, 그리고 기독교가 1세기 후반에 로마에 전파되었다는 점 등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외부 증거 확인은 이렇게 기타 확인에서 제공하는 증거를 바탕으로 더욱 확신을 줍니다.
일부 극단적인 회의론자들의 억측에도 불구하고 신약에서 실제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한 내용은 거의 누구도 흠집을 낼 수 없습니다.
일부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저스 세미나와 같은 전문가들의 모임에서는 종교적인 믿음과 무관하게 오늘날 우리가 읽는 신약의
내용이 예수의 삶과 사건을 모두 충실히 기록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맥매스터 신학 대학(McMaster Divinity College)의 통번역 교수 클락 피낙의 이 말이 요점을 잘 정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대 문서 중에서 이 정도로 훌륭한 문서 및 역사적 증언은 없습니다. …정직한 이라면 이러한 문서를 비난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역사적 신뢰성에 대한 회의론은 비이성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정말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을까요?
우리 시대에서 가장 큰 질문 중 하나는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입니다.
예수는 단지 뛰어난 사람이었을까요?
아니면 바울, 요한 등 사도들이 믿은 것처럼 인간으로 태어난 신이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본 적이 있는 이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후 부활했을 때 실제로 육체가 살아난 것을 믿는 것처럼 행동하고 말합니다.
이들이 잘못되었다면 기독교의 근간은 거짓이라는 말이 됩니다.
이들이 옳다면, 그러한 기적은 예수가 신과 그 자신, 그리고 우리에 대해 말한 모든 발언을 증명하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단지 믿음만 가지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니면 역사적인 증거가 존재할까요? 일부 회의론자들은 부활에 대한 이야기가 거짓임을 입증하기 위해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무엇을 발견했을까요?
이곳을 클릭하면 지금까지 가장 놀라운 주장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관련된 증거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는 우리가 죽은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까?
예수가 실제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돌아왔다면, 죽은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는 삶의 의미와 우리의 미래에 대해 어떤 말을 했을까요? 신께 이르는 길은 다양하다고 했을까요?
아니면 예수 자신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했을까요? “왜 예수인가?”에서 놀랄만한 답변을 확인해 보십시오.
이곳을 클릭하면 “왜 예수인가?”를 읽고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한 말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는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요?
“왜 예수인가?”는 예수가 오늘날 갖는 중요성에 대한 답을 제시합니다.
예수는 이러한 삶과 관련된 중요한 질문들에 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 있는가?” 그리고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일부에서는 과거의 성당과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도 그
러한 질문에 답을 제시할 수 없으며, 예수는 우리가 혼돈의 세상을 살아가도록 남겨두고 떠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는 살아 있는 동안에 우리의 삶과 삶의 의미에 대해 말했으며 이러한 주장은 예수에 대해 무정하고 무능하다고 비난하기 전에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글은 왜 예수가 이 땅에 왔는지에 대한 의문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는 죽은 후에 부활한 것인가요?
우리는 모두 죽은 후에 어떻게 될 지 궁금해합니다.
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떠나면, 우리도 세상을 떠난 후에 그를 다시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
죽고 나면 그렇게 멋진 재회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아니면 죽음은 모든 의식이 종말하는 것일 뿐일까요?
예수는 우리가 죽은 후에도 삶이 끝나지 않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런 놀라운 주장을 했습니다.
“내가 부활이며 삶이다. 나를 믿는 자는 다른 이들처럼 죽더라도, 다시 살게 될 것이다.”
예수와 가까이 지냈던 증인들에 따르면 당시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후 3일간 땅 속에 묻혀 있다가 죽은 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거의 2000년이란 시간동안 희망을 가진 이유가 이러한 믿음 때문입니다.
하지만 죽음 후에도 희망이 전혀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신론자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은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고 나면 몸은 썩겠지만, 내 정신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러셀은 예수의 말을 믿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의 추종자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땅에 묻힌 후에 살아있는 모습으로 자신들 앞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예수를 직접 보았을 뿐 아니라, 식사도 같이 하고, 몸에 손을 대보기도 했으며 40일을 함께 보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과장된 이야기일까요? 아니면 확실한 증거가 존재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기독교의 근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가 정말로 죽은 자들 사이에서 살아 온 것이라면, 자신에 대한 주장, 삶의 의미와 죽음 후의 운명에 대한 말이 모두 사실이 되는 셈입니다.
예수가 정말로 죽은 자들 사이에서 살아 온 것이라면,
예수 외에는 삶의 의미와 죽음 후에 우리를 기다리는 것에 대한 답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반면에, 예수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면 기독교의 근본은 거짓이 되는 셈입니다.
신학자 R.C. 스프라울은 이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부활에 대한 주장은 기독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스도가 신의 힘으로 죽은 자들 사이에서 일어났다면, 다른 어떤 종교 지도자들도 갖지 못한 자격을 증명한 것입니다.
부처도 죽었습니다. 마호메트도 죽었습니다. 모세도 죽었습니다. 공자도 죽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살아있습니다.
여러 회의론자들은 부활이 거짓임을 증명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런 회의론자들 중 한 명인 존 맥다웰은 부활의 증거를 찾는 데에만 700시간 넘게 노력했습니다.
맥다웰은 부활의 중요성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인간의 마음에 대해 가해진 가장 사악하고 비열하며 비정한 거짓이거나, 역사상 가장 환상적인 사실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후일 맥다웰은 자신이 쓴 고전 “판단이 필요한 새로운 증거(The New Evidence That Demands A Verdict)”에 자신이 발견한 내용을 적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부활은 환상적인 사실일까요? 아니면 사악한 거짓일까요?
그 답을 얻으려면 역사상의 증거를 살펴보고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예수의 부활을 조사한 회의론자들이 직접 발견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냉소주의자들과 회의론자들
안타깝게도 모든 사람들이 증거를 공정하게 평가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버트런드 러셀은 예수에 대한 자신의 관점이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다”고 인정했습니다.
역사학자 조셉 캠벨은 자신의 PBS TV 프로그램에서 어떤 증거도 언급하지 않고 예수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지저스 세미나(Jesus Seminar)의 존 도미닉 크로상과 같은 다른 학자들도 캠벨과 동의합니다.
이러한 회의론자 중에서 자신의 관점에 대해 증거를 제시하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진정한 회의론자는 냉소주의자들과 반대로 증거에 관심을 갖습니다.
“회의론자란 무엇인가?(What is a Skeptic?)”라는 회의론 전문 잡지에서는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렸습니다. “회의론이라 함은… 이성을 모든 생각에 적용하는 것이며, 그 예외가 되는 “성스러운 소”라는 개념은 절대 허용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회의론자들은 어떤 현상이 실제이거나 어떤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에 대해 조사를 하지 않습니다. “회의론자”라는 말은 즉, 반드시 설득력있는 증거가 제시되어야만 믿는다는 뜻입니다.”
러셀이나 크로상과 같은 회의론자와 달리 진정한 회의론자 중에서는 예수의 부활에 대해 조사를 실시한 경우가 적지 않으며,
이제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질문일 수 있는 이 조사의 내용과, 증거를 분석한 방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는 정말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을까요?
자기 예언
예수는 죽기 전에 제자들에게 자신이 배신당하게 되며 십자가에 못박히고 그로부터 3일 후에 살아 돌아온다고 말했습니다.
계획 치고는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요? 무슨 이유였을까요?
예수는 청중의 요구에 따라 공연을 하는 엔터테이너가 아니었으며, 그 대신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자신이 진정한 메시아였음을
증명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성서학자 윌버 스미스는 예수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힌 후 3일 만에 살아나 죽은 자들 사이에서 돌아온다는 말을 했을 당시 예수가 만약 자신이 살아날 것임을 확신하지 못한 상태에서 모든 제자들의 헌신을 더 오래 기대했다면 이는 바보나 했음직한 말을 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인류 역사상 어떤 종교 지도자도 감히 그런 말을 한 경우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는 이미 명확하게 제자들에게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이 말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대로 사기가 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는 앞서 가는 것입니다. 예수는 (진짜 죽었다면) 살아나기 전에 어떻게 죽었을까요?
끔찍한 죽음, 그리고. . . ?
브레이브하트(Braveheart), 로드 워리어(Road Warrior) 등으로 유명한 배우 멜 깁슨이 주연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를 보았다면 예수의 마지막 생전이 어땠는지 알 수 있습니다.
눈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차라리 영화를 촬영할 때 카메라에 빨간 필터를 대고 찍는 게 나았을 정도로) 영화의 못 보신 장면이 있었다면, 신약의 아무 복음서에서 뒤쪽을 펼치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는 예언한 대로 제자 중 한 명인 가롯 유다에게 배신당했고 체포되었습니다.
로마 총독인 본디오 빌라도가 주재한 모의 재판에서 예수는 반역죄와 십자가에 못박히는 형을 선고받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에 예수는 로마식으로 끈이 9개 달린 채찍으로 처참히 맞는데 이 채찍에는 뼈와 쇳조각이 달려있어 맞는 사람의 살을 찢을 정도입니다.
몇 번이고 주먹과 발로 맞고 심지어 침까지 맞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로마의 집행관은 나무망치로 무거운 쇠못을 예수의 손목과 발에 박습니다.
마지막으로 땅에 구멍을 파고, 절도죄로 잡힌 도둑들이 매달린 십자가 사이에 예수의 십자가를 넣었습니다.
예수는 이 상태로 약 6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오후 3시, 즉 유월절에 양을 제물로 바치는 그 시간에(뭔가 너무 상징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는 아람어로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고 숨을 마쳤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땅이 흔들렸습니다.
그위 권세와 생명의 기쁨에 빠져 있던 사람들은 암울한 깊은 어둠 속에서 꿈이 깨졌습니다.
전 영국 대법관인 헤일셤 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십자가의 비극은 그들이 슬픔에 잠겨 있고, 완전히 도덕적이며, 금욕적면서 어두운 인물을 십자가에 매달았다는 점이 아닙니다.
이들이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은 바로 젊고, 생명력이 넘치며 기쁨이 가득한 청년, 바로 생명 그 자체의 구주였으며, 온전한 기쁨을 찾아 사람들이 따랐던 정말로 사람을 끌어 당기는 존재였다는 것이 비극입니다.”
빌라도는 십자가에 박혔던 예수의 몸을 땅에 묻기 전에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로마 병사가 예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습니다. 피와 물이 섞여 흘러나오는 모습을 통해 예수가 죽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죽은 자는 보통 피를 흘리지 않지만 인간의 심방은 멈춘 후에 피를 저장해 두며 바깥쪽에 있는 주머니는 수심낭이라 불리며 혈청이 담겨있습니다.”
예수가 죽은 것으로 확인되자 그의 몸은 십자가에서 내려져 아리마데의 요샙의 무덤에 묻혔습니다.
옆에 있던 로마 병사들이 무덤을 봉인했으며 24시간 감시했습니다.
그 동안 예수의 제자들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J. P. 모어랜드 박사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는 모습을 보고 제자들이 얼마나 절망하고 혼동에 빠졌는지 이렇게 설명합니다.
“제자들은 예수가 신이 보낸 존재임을 더 이상 믿지 못했습니다. 또한 이들은 하나님이라면 메시아가 목숨을 잃게 두지 않을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예수 운동이 완전히 끝난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로마와 유대인 지도자들이 승리했거나, 적어도 그렇게 보였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의 운동이 멈춘 것이 아니었으며, 기독교도 오늘날 세계 최대의 종교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몸이 십자가에서 내려져 무덤에 묻힌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뉴욕 타임즈 기사에서 피터 스타인펠즈는 예수가 죽고 3일이 지난 후에 일어난 놀라운 사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처형된 후 그 추종자들은 혼란스러워하고 겁먹은 모습에서 갑작스런 변화를 겪었으며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살아있는 예수와 앞으로 나타날 왕국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했고, 결국 이들은 왕국을 변화시켰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진 것만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일이었을까요?”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사실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하는 질문입니다.
예수의 부활로 알려진 사건에 대해서 타당한 설명은 다음의 다섯 가지가 있으며, 모두 신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 “부활” 자체가 음모였습니다.
• 제자들은 환영을 보았습니다.
•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허구입니다.
• 실제 사건입니다.
어떤 것이 가장 정확한 지 한 가지씩 짚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는 진짜 죽었을까요?
“말리는 완전히 죽은 것이었으며,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Christmas Carol)은 이렇게 시작하지만 디킨스는 곧 벌어질 일의 초자연적인 성격에 대해 독자가 오해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기 TV 프로그램인 CSI의 등장인물이 부활에 대해 조사한다면 증거를 짜맞추기 전에, 실제로 시체가 존재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간혹 시체인 줄 알았던 사망자가 영안실에서 몸을 움직이고 결국 살아났다는 뉴스도 보도됩니다.
그런 일이 예수에게도 일어난 것일까요?
일각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음에도 생명을 유지했으며 무덤 속의 차갑고 습한 공기 덕분에 살아난 것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론은 의학적 증거와는 맞지 않습니다.
미국 의학 협회(American Medical Association)의 회보에서는 소위 말하는 “기절 이론”이 말도 안되는 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역사 및 의학적 증거에서는 예수가 죽었음이 명백합니다. 예수의 오른쪽 갈비뼈 사이를 찌른 창은 오른쪽 폐을 뚫었을 뿐 아니라 심낭과 심장도 뚫었기 때문에 예수가 죽은 것이 확실합니다.”
하지만 이 이론에 대해서도 200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회의론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다른 의견을 들어 볼 필요는 있습니다.
예수가 살았던 시대의 비기독교 역사학자가 만든 보고서에서 그러한 의견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의 죽음을 언급한 비기독교 역사학자는 3명이 있습니다.
먼저 루시안(c.120 – c.180)은 예수에 대해 십자가에 못박힌 궤변가(철학자)라고 불렀습니다.
요세푸스(c.37 – c.100)는 “이 때 현자인 예수가 나타났는데 그는 놀라운 행동을 한 사람이었다. 빌라도가 그를 십자가에 못박았을 때
우리 중에 이끄는 자들은 예수를 비난했으며, 그를 사랑한 자들은 계속해서 그를 사랑하였다”라고 적었습니다.
타키투스(c. 56 – c.120)는 “그의 이름이 유래한 크리스튀스(Christus)는 우리의 총독인 본디오 빌라도의 손에 극심한 고통을 받았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이는 마치 고문서 기록실에서, 1세기의 어느 화창한 봄날에 ‘예루살렘 포스트 정도의 이름을 가진 신문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사망했다고 1면 기사 처리한 걸 발견하는 느낌입니다. 상당히 잘 찾아낸 결과물이며, 마무리도 잘 된 듯 합니다.
사실 기독교인이나 로마인 또는 유대인이 남긴 역사 기록 중에서 예수의 죽음 또는 땅에 묻혔던 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경우는 없습니다.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회의론자인 학자들도 예수가 죽었다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유명한 회의론자인 제임스 테이버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수가 로마 정부의 십자가형으로 처형당했음을 고려한다면 예수의 사망에 대해 의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회의론적으로 악명높은 지저스 세미나의 공동 설립자인 존 도미닉 크로상 역시 예수가 실제로 살았으며 사망했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았다는 점은 어떠한 역사학자의 말과 같이 확실합니다."
역사적 및 의학적 증거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앞서 말한 다섯가지 중 첫번째는 잊어도 무방할 듯 합니다.
예수는 분명히 죽은 것이며, “이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빈 무덤의 문제
진정한 사학자라면 예수가 십자가에서 끌어내려졌을 때 이미 죽었다는 점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학자들은 예수의 몸이 어떻게 무덤에서 사라질 수 있는지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영국의 언론인인 프랭크 모리슨 박사는 처음에는 부활이 거짓이거나 사기라고 생각하고 이를 증명하는 책을 쓰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유명해지긴 했지만 모리슨 박사의 의도와는 다른 이유였습니다.
모리슨은 먼저 빈 무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이 무덤은 산헤드린 공의회에 속한 의원인 아리마데의 요셉의 무덤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공의회 의원의 자리는 마치 록 스타와 다름없었습니다.
공의회 의원이 누구인지는 다들 알고 있습니다. 요셉 역시 실존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유대인 지도자들이 부활을 부인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거짓이라고 공격했을 것입니다.
또한 요셉의 무덤은 잘 알려진 곳에 있었을 것이며 찾기도 쉬웠을 것이므로, 예수가 “묘지에서 사라졌다”는 주장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모리슨은 “빈 무덤설”이 거짓임에도 왜 예수의 적들이 이를 허용했는지 의아했습니다.
예수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면 그 즉시 모든 이야기가 틀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상으로 예수의 적들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예수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갔다고 비난했다는 것이며, 이는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합니다.
웨스턴 미시건 대학의 고대사 교수인 폴 마이어 박사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모든 증거를 면밀하고 공정하게 검토했다면, 예수가 묻힌 무덤이 사실 부활절의 첫 날 아침부터 비어있었다는 결론도 정당화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어떠한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이 이야기는 허구가 됩니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이들은 제자들이 시체를 훔쳤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무덤은 잘 훈련된 4명에서 16명 사이의 로마 병사들이 24시간 지키고 있었습니다.
조쉬 맥도웰은 이 병사들이 일반적인 군인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 경비병들이 잠들거나 근무지를 이탈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실제로 그랬음을 나타내는 역사적 근거가 다수 있습니다. 이 병사들은 옷이 벗겨졌으며, 이 옷을 태운 불에 산 채로 화형당하거나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못박혔습니다. 이 경비병들은 훈련이 잘 되어 있었으며 어떤 원인으로든 실패를 두려워했습니다.”
누구라도 이 경비병들 몰래 2톤이나 되는 묘비를 옮기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묘비는 치워졌고, 예수의 시체는 사라졌습니다.
예수의 몸이 어디서든 발견될 것이었다면 그 적들은 즉시 부활이 거짓이라고 공격했을 것입니다.
캘리포니아 법정 변호사 협회(California Trial Lawyers Association)에서 회장을 맡았던 바 있는 톰 앤더슨은 이 주장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습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사건이니만큼 단 한 명의 역사학자나 증인 또는 반대주의자라도 그리스도의 몸을 보았다고 기록하는 게 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 부활에 대한 증언과 관련된 역사의 침묵은 너무나 조용합니다.
그리하여 실제적인 증거가 없으며, 이 알려진 이의 무덤이 비어버린 상태에서, 모리슨은 예수의 시체가 어떤 방식으로든 무덤에서 사라졌다는 증거를 확실하다고 인정했습니다.
묘지 도굴?
모리슨은 계속해서 예수의 추종자들이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았을 지 동기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부활이라는 건 시체를 도둑맞은 사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부활한 예수를 보았다는 이야기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역
사학자 폴 존슨은 자신의 저서 “유대인의 역사(A History of the Jews)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의 죽음을 둘러싼 상황이 아니라, 예수가 부활했다는 이야기에 대해 갈수록 많은 이들이, 그것도 아주 강하게 믿었다는 사실입니다.”
무덤은 정말로 비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체가 없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예수의 추종자들이 깜짝 놀랐을까요?
(게다가 자신들이 정말로 시체를 훔쳤을 경우에도) 예수의 추종자들에게는 뭔가 놀라운 일이 일어났고,
이들은 슬퍼하거나 몸을 숨기지 않고 살아있는 예수를 보았다는 주장을 두려움없이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각 증인의 말에 따르면 예수가 갑자기 추종자들의 눈앞에 실제로 나타났으며, 여자들이 먼저 보았다고 합니다.
모리슨은 왜 공모자들이 여성을 음모의 중심으로 만들었는지 궁금했습니다.
1세기 당시 여성은 권리나 개성 등은 생각할 수도 없는 열악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리슨은 이 음모가 성공하려면 공모자들이 여성이 아닌 남성이 예수를 먼저 보았다고 묘사해야 했다고 추리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도 여성들이 예수를 먼저 만졌고, 대화를 나누었으며 빈 무덤도 먼저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이후 증인들의 말에 따르면 제자들도 모두 예수를 10번 이상, 각기 다른 상황에서 보았다고 합니다.
증인들은 예수가 손과 발을 보여주고 만져보라고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또한 식사도 함께 하고 이후 한 번은 500명이 넘는 추종자들 앞에 살아있는 모습을 나타냈다고도 합니다.
법학자인 존 워릭 몽고메리는 “서기 56년 당시 [사도 바울은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아난 예수를 보았으며 그들 중 대부분이 살아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6ff.) 초기 기독교인들이 그러한 이야기를 지어내서, 예수의 시체를 가지고 간단하게 반박할 수 있는 이들 사이에 퍼뜨렸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성서학자 가이슬러와 튜렉도 이에 동의합니다.
“부활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왜 사도 바울은 증인으로 추정되는 명단을 제시했을까요? 그런 노골적인 거짓말로는 고린도서를 읽은 이들로부터 완전히 신뢰를 잃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과 다른 제자들이 예수가 가이사랴에 모인 군중에게 설명했습니다.
우리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행적을 보고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생명을 앗아갔지만 하나님은 3일 후 예수님께 다시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바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함께 음식을 먹고 마신 사람들입니다. (사도행전 10:39-41)
영국 성서학자 마이클 그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가 부활했음은 고대의 어떤 사건만큼이나 사실임이 입증된 일입니다. 부활이 실제라는 점에 대해서 합리적인 의심이란 불가능합니다.”
일관성
증인들의 말이 모리슨의 회의론에 대해 충분한 답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그 역시 제자들의 행동에 혼란을 느꼈습니다.
역사학자, 심리학자, 회의론자 모두를 혼란에 빠뜨린 역사적 사실은 그 전까지 11명의 겁쟁이에 불과하던 이들이 갑자기 모욕과 고문, 죽음까지 이기는 의지를 보였다는 점입니다.
예수의 제자들 중에서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순교자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단지 거짓말을 하려고 몸을 바쳐서 그런 희생을 감수했을까요?
911 테러를 감행한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은 자신이 믿기만 한다면 잘못된 믿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습니다.
하지만 거짓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위해 순교하려는 의지는 광기라 할 수 있습니다.
폴 리틀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사실이라 믿는 것을 위해, 비록 그것이 실제로는 거짓이라 할 지라도, 목숨을 바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거짓임을 알고 있는 것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는 않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주인이 살아있다는 진정한 믿음을 끝까지 유지하는 식으로 행동했습니다.
제자들이 거짓으로 밝혀진 사실을 위해 목숨을 바치려 한 이유를 적절하게 설명한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모두 예수의 부활에 대해 거짓말을 하기로 공모했다고 하더라도 돈이나 명예를 위해 굴복하지 않고 수십년을 지내는 게 가능했을까요?
모어랜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개인적 영달을 위해 거짓을 말하는 자는 오래 가지 못하며, 특히 고난은 이익이 줄어들 때 더욱 그렇습니다.”
닉슨 대통령 재직 시 워터게이트 스캔들에 연루되었던 척 콜슨은 여러 사람이 오랫동안 거짓말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저는 부활이 사실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는 워터게이트를 통해 배운 사실입니다. 어떻게 깨달았냐고요? 12명의 사람들이 예수가 죽었다가 살아 오는 모습을 보았다고 증언했고, 이 주장을 40년 동안 단 한 번도 부인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그들 모두 그 때문에 매를 맞고 고문 당했으며 돌에 맞았고 감옥에도 갔습니다. 사실이 아니었다면 견디지 못했을 겁니다. 워터게이트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12명의 사람들이 연루된 사건이었지만, 이들은 단 3주도 거짓말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열 두 제자가 40년 동안 거짓말을 계속 할 수 있었겠습니까? 절대 불가능합니다.”
이 남녀들의 모든 것을 변화시킨 어떤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모
리슨은 이 점에 대해서는 인정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단순히 설명할 수 없는 사실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 사실은 바로… 이 제자들에게서 강한 확신이 왔다는 것이며, 그 확신은 예수가 무덤에서 살아서 나왔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변화입니다.”
제자들은 환영이라도 본 것일까요?
사람들은 아직도 뚱뚱하고 머리가 하얗게 센 엘비스 프레슬리가 던킨 도너츠 매장으로 달려들어가는 모습을 본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난 밤에 외계인들이 뭔가 실험을 하고 있던 우주선에 끌려갔다는 생각도 합니다.
간혹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과 관점으로만 사건을 “바라볼” 수 있는데 문제는 이 사건이 실제로 벌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제자들이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너무나 심란한 나머지 예수가 살아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너무 강해져서 환영을 보았다고 주장합니다. 가능한 일일까요?
미국 기독상담자협회장을 역임했던 심리학자 게리 콜린스는 환영으로 인해 제자들의 행동이 급격하게 변할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콜린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환영은 개인적인 변화입니다. 그 특성상 한 번에 단 한 사람만이 특정한 환영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환영은 없습니다.”
심리학자 토마스 J. 소어번에 따르면 환영은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마음의 안정성을 가진 5백명의 사람들이 시각, 청각, 감각 등 다양한 느낌을 경험하고 그러한 경험이 결국 환영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절대적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환영에 대한 심리학적으로 간절함이 너무나 강해서 마음에서 환영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초기 교회의 주요 지도자였던 야고보와 바울 두 사람 모두 부활한 예수를 만나는 기쁨에 대한 기대나 바람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만났다는 주장을 너무가 강력하게 내세웠습니다.
사실 사도 바울의 경우 기독교에 대한 초기 탄압을 주도했기에 그의 변화는 예수가 부활하여 그에게 나타났다는 그 자신의 증언이 없으면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환영 이론도 그다지 답이 되지 못하는 듯 합니다. 부활을 부정할 수 있는 다른 설명이 있을까요?
거짓에서 전설로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일부 회의론자들은 부활에 대한 이야기가 한 두 사람의 거짓말 또는 부활한 예수를 보았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발전했다고 주장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전설은 여러 사람에게 회자되면서 미화되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가능한 시나리오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이론에는 3가지 큰 문제가 있습니다.
• 먼저, 전설은 이를 부인할 수 있는 여러 증인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고대 로마 그리스의 역사학자인 A. N. 셔윈-화이트는 부활에 대한 소식이 전설로 진전되기에는 너무 빨리 퍼졌다고 주장합니다.
• 두 번째로 전설은 구전으로 발전하게 되며 입증이 가능한 현대 역사 문서와는 무관합니다.
하지만 복음서들은 부활이 있은 후 30년 내에 작성되었습니다.
• 세 번째로 전설 이론은 빈 무덤이라는 사실 또는 예수가 살아 있었다는 역사적으로 입증된 제자들의 신념으로는 설명이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전설 이론은 이 놀라운 주장을 부인하기 위한 다른 시도들보다 그다지 가능성이 높지 않은 듯 합니다.
또한 예수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로 인해 실제로 역사가 바뀌었으며 그러한 변화는 로마 제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부활이라는 전설은 그 짧은 시간 내에 그렇게 거대한 역사적인 영향을 미칠 수가 있었을까요?
기독교는 어떻게 승리하였는가?
모리슨은 “어떻게 그런 작은 움직임이 로마 제국뿐 아니라 유대인 조직의 치밀한 통제를 넘어설 수 있었는 지”에 대해 당혹스러워했습니다.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어떻게 승리했을까요?
모리슨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20년도 되지 않아 이 갈릴리 농부들의 주장은 유대 교회를 무너뜨렸으며… 로마 제국의 평화를 위협하기 시작한 것은 50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말을 다 했음에도 가장 큰 의문이 남아있습니다. 기독교는 도대체 어떻게 승리한 것일까요?”
모든 점을 감안하고, 부활이 사실이 아니었다면 기독교는 예수가 죽은 십자가 위에서, 제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도망갔을 때 무너졌어야 합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기독교를 확고히 했습니다.
J. N. D. 앤더슨은 이렇게 썼습니다.
“한 무리의 패배한 겁쟁이들이 하루는 윗층 방에서 벌벌 떨다가 단 며칠 만에 어떠한 탄압도 막을 수 없는 집단으로 재탄생했으며,
이러한 변화를 말도 안되는 조작 외에는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은 심리학적으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
놀라운 결론
전설, 환영, 부검상 오류 등은 모두 제외되었으며, 빈 무덤에 대한 확실한 증거, 예수의 부활을 본 상당수의 증인,
그리고 예수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설명할 수 없는 변화와 세상에 미친 영향 등을 알게 된 모리슨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자신의 선입견이 잘못되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모리슨은 다른 책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제목은 이렇습니다.
누가 돌을 움직였는가?(Who Moved the Stone?)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새롭게 내린 결론을 정리했습니다.
모리슨은 사건의 진실이 명백하게 나타날 때까지 단순히 일련의 증거를 하나씩 좇아왔습니다.
그가 놀란 점은 이 증거들로 인해 부활에 대해 믿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전까지 회의론자였던 모리슨은 이 책의 첫 장인 “쓰이기를 거부한 책(The Book That Refused to Be Written)”에서 어떻게 해서 이 증거들이 자신에게 예수의 부활이 역사적 사건이었다는 확신을 안겨주었는지 설명합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잘 알려진 길을 따라 숲을 지나려 하다 예상치 못한 곳에 도달한 것과 비슷합니다.”
모리슨 외 다른 이들도 비슷한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회의론자들도 예수의 부활에 대한 증거를 조사한 결과 인간 역사상 가장 놀라운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존재조차 의심했던 C. S. 루이스의 경우 예수의 부활에 대한 증거에 설득당한 경우입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우주 역사상 완벽하게 새로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리스도는 죽음을 이겨냈습니다. 항상 잠겨있던 문이 정말 처음으로 강제로 열린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증거를 인정한 다른 회의론자들의 경우도 살펴보겠습니다.
놀라서 할 말을 잃은 교수
부활이 단순한 전설이라고 생각했으나 모리슨처럼 생각을 바꾼 이들 중에는 세계 최고의 법학자인 사이몬 그린리프 박사도 있습니다. 그린리프는 하버드 법대를 키워낸 인물입니다.
그는 3권으로 된 법학의 걸작이자 “법 관련 서적 중에서 단연 독보적인 작품”으로 알려진 증거의 법칙에 대한 논문(A Treatise on the Law of Evidence)을 쓰기도 했습니다.
현대 미국의 재판제도는 아직도 그린리프가 구성한 증거의 규칙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린리프 교수는 하버드 재직 시절 학생들에게 예수의 부활은 단순한 전설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무신론자인 그는 기적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 중 3명이 그의 증거의 규칙을 부활에 적용해 보라는 반론을 던졌습니다.
수없이 재촉을 받은 후에야 그린리프 교수는 학생들의 도전을 받아들이고 증거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역사적 사실에 자신의 명석한 두뇌를 사용한 그는 부활이 거짓임을 증명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린리프 교수가 역사 기록을 깊이 파고 들어갈수록 예수가 실제로 무덤에서 살아 나갔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의 강력함에 할 말을 잃을 뿐이었습니다.
그린리프의 회의론은 인간의 역사를 뒤바꾼 사건에 의해 무너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는 예수가 죽은 후 얼마 되지 않아 벌어진 일련의 극적인 변화를 설명할 수 없었으며, 그 중에서도 제자들의 행동이 변한 점은 가장 혼란스러웠습니다.
한두명도 아니고, 제자들 모두가 예수의 부활을 주장했던 것입니다.
자신이 만든 증거의 규칙을 사실에 적용한 그린리프 교수는 결국 결론을 내렸습니다.
놀랍게도 입장을 뒤바꾼 교수는 예수의 부활이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직후 일어난 사건들을 말해 주는 가장 좋은 설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명석한 법학자이자 이전까지 무신론자였던 그에게도 부활한 예수를 직접 보지 않았다면 제자들이 부활에 대한 자신들의 신념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린리프 교수는 자신의 저서인 전도사의 증언 (The Testimony of the Evangelists)에서 자신의 마음을 바꾸게 만든 증거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린리프 교수는 책의 결론에서 부활에 대한 진실을 찾는 이라면 공정한 자세로 증거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그는 그러한 증거에 너무나 깊은 인상을 받은 나머지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편견이 없고 법정에서처럼 정직하게 증거를 검토한 사람이라면 자신과 같은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으로 부활했다는 결론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한 가지 의문을 남깁니다.
예수가 죽음을 이겨냈다는 사실이 나와 무슨 상관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이야말로 신약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예수는 우리가 죽은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까?
예수가 실제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돌아왔다면, 죽은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는 삶의 의미와 우리의 미래에 대해 어떤 말을 했을까요? 신께 이르는 길은 다양하다고 했을까요?
아니면 예수 자신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했을까요?
이곳을 클릭하면 “왜 예수인가?”를 읽고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한 말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는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요?
이곳을 클릭하시면 예수가 다음 삶의 의미에 대해 내린 중요한 질문의 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 곳에 있는가?”
“나는 죽은 후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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