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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C 회장은 왜 기부중독자가 됐을까

*바다향 2015. 7. 23. 14:31
한국일보: 등록: 2015.07.24 04:40  수정: 2015.07.24 07:47

 

배당금 받으면 모두 기부

선친의 철학ㆍ가르침 따를 뿐

요즘은 다문화가정ㆍ탈북자에 관심

 

최신원 SKC 회장이 서울 을지로 집무실에서 남 모르게 기부만 해오던 '을지로 최신원'이 기부 전도사로 바뀐 사연과 자신만의

기부철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경영이나 나눔이나 결국 똑같다"며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말했다.

배우한기자 bwh3140@ hankookilbo.com  

 

 

SK그룹으로부터 분가 절대 없다 국내 재계서열 3위 SK 가문의 맏형인 최신원(63) SKC 회장은 특이한 경영인이다.

최태원 SK 회장의 사촌형보다 고액 기부자로 더 잘 알려졌다. 그는 스스로 ‘기부 중독자’라고 말한다.

그는 “기부에 중독돼 매년 기부금액이 늘어나고 있다”며 “배당 받은 돈을 모두 기부금으로 내놓는다”고 말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기부할 대상이 너무 많기 때문이란다.

요즘은 다문화가정과 탈북자 어린이들에게 관심을 쏟고 있다.

인터뷰 중에도 10차례 이상 언급할 정도로 그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그것도 모자라 요새는 만나는 사람마다 기부를 권한다.

최 회장은 “경영이나 나눔이나 결국 똑같다”며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왜 그렇게 열심히 기부를 하는 지 23일 최 회장을 서울 을지로 사무실에서 만나 속내를 들어봤다.

_기부를 도대체 얼마나 했나.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에 지난해 기부한 돈이 4억8,000만원이다.

2003년부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한 돈만 모두 27억원 정도 된다.”

 

_한 해도 거르지 않고 기부를 하나.

 

“내가 처음에 기부할 때는 ‘을지로 최신원’으로만 밝혔고 신분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요청으로 얼마 전부터 신분을 밝혔다. 남 모르게 기부를 하는 것도 훌륭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의 동참을 유도하는 게 더 의미 있다고 봐서 신분을 밝히기로 했다.

이후 해마다 여기 저기 20억원 넘게 기부했다. 이번 인터뷰를 하는 이유도 다른 사람이 기사를 읽어 보고 기부를 많이 했으면 하는 희망 때문이다.”

 

_기부는 누가 해야 한다고 보나.

 

“있는 사람이 해야지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나. 그런데 요새는 없는 사람도 한다. 그게 참 감사한 일이다. 모이고 모이면 큰 덩어리가

된다. 경비원인데도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한 사람이 있다. 남편이 먼저 가입하고 부인을 설득해 함께 회원이 된 경우도 있다.”

 

_기부에 중독성이 있다고 보나.

 

“분명히 있다. 돈만 있으면 기부하려고 하는 게 기부 중독이다. 나눔은 모두가 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모두를 행복하게 해 주는 행위다. 겨울철에는 동대문 쪽방촌에서 봉사활동하고 선물전달 한다.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인 지 아는가. 지난해 연탄배달 하고 나서 주민들이

상자에 먹을 것을 담아서 보내왔다. 정말 감명 받았다.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줬더니 감사편지를 보내왔다. 학생들도 어른 되면 받은 만큼 나중에 어려운 사람 돕겠다고 한다. 이러니 기부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요새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인구문제여서 다문화가정과 탈북자 어린이에 특히 관심을 갖고 있다.”

   

_그럼 언제까지 기부할 계획인가.

 

“언제까지 밥 먹을 지 묻는 것과 똑같다. 나눔은 이제 일상이고 습관이 됐다.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쓰는 지가 더 중요하다는 선친(고 최종건 회장)의 철학과 가르침을 따를 뿐이다”

최 회장은 2008년 11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창립10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개인기부자 명단에서 기업인으로는 최고액인 3억3,200만원을 기록해 화제가 됐다.

2008년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 출범 당시 회원은 그를 포함해 6명에 불과했다.

 

그는 대기업 회장 중 처음으로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에 가입했으며 2012년 초대 대표로 선출됐다.

2011년 8월에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5대 회장으로 취임해 경기도 나눔 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 같은 활동에 힘입어 최 회장은 2012년 11월 세계 고액기부자 모임의 한국 대표로 위촉됐으며, 세계공동모금회(UWW)가 발족한 세계리더십위원회 위원이 되기도 했다.

미국 아파트 개발ㆍ관리업체인 웨스턴내셔널그룹의 마이클 하이드 대표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세계리더십위원회는 기업가들의 고액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한 모임으로 최 회장은 유일한 아시아 국가 위원이다.

 

최 회장은 만나는 사람마다 아너소사이어티 가입을 권유해 가끔 ‘모금팀장’ 같다는 소리도 듣는다.

축구선수 박지성과 골프선수 최나연도 그의 설득에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_요즘도 아너소사이어티 가입을 위해 만나는 분이 있나.

 

“물론이다. 지금 경기도상공회의소 회장이어서 경기도 각 지역 회장들을 가입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현재 회원이 900명이 좀 안되는데 연말에 1,000명을 돌파할 것 같다. 최근 제주도 음식점 사장이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해 화제다.

제주도에 ‘돈사돈’이라는 고깃집이 있는데 10년 동안 교류한 끝에 가입시켰다.”

 

_1억원은 큰 돈이라 기부하려면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가입을 권유할 때 주로 어떤 방식을 사용하나.

 

“지역에서 돈 벌었으면 그 지역을 위해 쓸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상대방이 이 말을 듣고 고심 끝에 가입했을 때 그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다.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하면 물론 약간의 세제혜택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돈 내놓고 대우 받으려고 하면 절대 안 된다.

솔선수범하고 진정성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보여주기 위한 단발성 기부는 지양해야 한다. 익을수록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

요새 일부 재벌3세들 하는 짓 보면 참 불안하다. 그런 것을 제일 싫어한다.”

  

_경영인보다는 나눔인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어서 부담스러울 것 같다.

 

“(최 회장은 나눔 활동과 관련한 명함이 여러 개 있다.) 경영이나 나눔이나 똑같다. 자기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조직이나

개인이 많이 나눌수록 업무에서도 더욱 큰 성과를 만든다고 본다. 나눔은 이제 별개의 활동이 아니라 적극적인 경영활동의 일부다.”

 

_9월에 기부 활동과 관련해서 의미 있는 국제행사가 서울에서 열린다고 들었다.

 

“세계공동모금회(UWW) 리더십위원회 자선라운드 테이블이 서울에서 열린다. (그는 리더십위원회 회원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이 행사를 제안해 아시아에서는 처음 열리게 됐다. 31개국 70여명 대표가 참석해 국제 글로벌 이슈에 대한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기부문화 확산에 대해 논의한다. (그는 또 다문화가정 아이들과 같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9월에 이 아이들도 초청했다.”

 

_사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특사 방침으로 사촌동생인 최태원 SK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의 사면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웃으면서) 그 질문을 꼭 할 줄 알았다.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이 60% 이상 수감생활을 했다. 안에서 정말 모범적으로 수감생활하고 봉사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사촌동생이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이제 어느 정도 벌을 받았다고 본다. 깊이 반성하고 있으니 한 번만 더 베풀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경제가 어려우니 두 사람이 나오면 어느 정도 경제 회복에 보탬이 되는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

 

_예전부터 SK와 갈라설 것이라는 얘기가 끊이지 않고 나왔다. 실제로 SK그룹에서 분가할 생각은 없는가.

 

“그럴 일은 절대로 없다. SK그룹은 하나다. 안에서 같이 협력해서 가야한다. 최태원 회장의 장점과 최재원 부회장의 장점, 나의 장점을 잘 살려서 연계 효과를 발휘해야 한다. 죽을 때 재산 다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니고, 굳이 분가해야 할 이유가 없다. 분가 이야기는 앞으로 꺼내지도 마라. 서로가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게 미덕 아니겠나.”

 

_최태원 회장 형제와 우애 있게 지내왔나.

 

“나도 마음 먹었으면 싸울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고 최종건 회장)한테 지겨울 정도로 교육받은 게 형제끼리 절대 싸우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형제는 우애 있게 지내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요새 일부 재벌들이 승계 문제가 정리가 되지 않아 골치를 썩이는데 SK그룹은 그럴 일이 없다. 이는 형제간에 신뢰와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재벌가의 갈등 원인은 결국 돈이다. 재산이 별로 없는 경우에도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있지만 돈이 많으면 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욕심을 버리면 되지 않는 일이 없다.”

 

최연진 산업부장 wolfpack@hankookilbo.com

강철원 기자 strong@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