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정보

발칸 11개국 22일 일정

*바다향 2014. 12. 13. 02:53

헝가리 2박.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5박. 보스니아. 몬테네그로 3박. 알바니아. 그리스. 마케도니아 1박.

불가리아. 루마니아 2박. 세르비아

 

 

@21박22일 여행일정 & 정보

 

* 4/9일 : 인천공항 출발, 모스크바 경유 * 베오그라드(세르비아)도착. 숙소로 이동.

슬로베니아의 블레드 호수 - 슬로베니아의 작은 마을 블레드는 빼어난 자연 경관을 자랑 한다.

그 중에서도 빙하의 후퇴 후 생성된 블레드 호수는 최대 지름이 2km가 넘으며, 호수 중앙에 자리잡은 섬에 성모승천 교회의

신비로운 경관을 보여주며 마치 동화속 공주가 살고 있을건만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그리고 교회 안의 종을 울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니 꼭 종을 울려 보자.

 

* 자그렙 구 시가지 -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렙의 *대 성당과 성당 앞의 황금빛으로 빛나는 성모 마리아와 네 천사가 있는

 

* 석주 분수대, 반 옐라치치광장에서 라디체바 거리로 올라가는 골목길에 *돌의 문이라고 불리우는 작은 문이 있다.

원래 다섯개의 문이 있었는데 1731년 큰 화재로 다른 문들은 다 타버리고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림이 있는 이 곳만 무사했다고 해서 그 후부터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않는 성모 마리아 재단이 있는 곳이다.

 

* 성 마르코 성당은 마르코브 광장에 는 작은 성당인데 이 성당의 지붕은 크로아티아의 국기이기도 한 타일로 만들었는데 너무

예쁘다. 왼쪽 그림은 크로아티아 문장이고, 오른쪽 그림은 자그레브 시 문장이다.

 

* 라스토케는 작은 플리츠 비체라고 불리우는 크로아티아 전통 마을로 물 위에 집을 지어서 생활하는 이색적인 마을이다.

 

* 플리츠비체 국립공원은 유네스코 세계자연 유산에 지정되어 있는 플리츠비체 공원 산책로는 5개의 코스로 되어 있는데

기차를 타고 제일 윗 쪽으로 올라가서 나무데크를 따라 걸어 내려 오면서 92개의 폭포수와 에메랄드 빛의 크고 작은 호수를

보면서 2시간  이상 트레킹을 할 수 있다.

 

* 벨리키슬랍 폭포는 플리츠비체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 스플리트로 이동해서 아름다운 항구와 구 시가지의 야경감상.

 

오전에 스플리트 구 시가 관광 후 두브로브니크로 이동, 구 시가 근처 숙박.

크로아티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인 스플리트는 로마유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수 천년 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남겨놓은 로마유적과 아름다운 마리안 해변이 어우러진 모습이 운치 있다.

아름다운 아드리아해를 끼고 있어 일년내내 맑은 날씨와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어 11월에도 수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춥지않는 곳으로 휴양지로써 뿐만 아니라 고대와 현대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유럽의 많은 관광객들로부터 사랑받는 곳인데

요즘 꽃 누나라는 TV방송으로 알려지면서 한국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 그레고리우스닌 주교의 청동상은 10세기 크로아티아 출신의 대 주교였는데 크로아티아인들이 라틴어가 아닌 모국어로 미사를 볼 수 있도록 투쟁했던 인물, 1929년에 조각가 '이반 매스트로비치'가 조각한 것으로 높이가 4.5m이다.

엄지 발가락을 만지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속설로 사람들이 많이 만져서 동상의 엄지 발가락이 반들반들하다.

* 마리안 해변은 무역과 관광도시의 스플리트 항구에는 늘 대형 크루즈선박들이 정박해 있다.

 

* 두브로브닉은 구 시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크로아티아 최 남단에 위치한 두브로브니크,

1991년 유고내전이 터졌을 때 신 유고 해군이 두브로브니크를 포격한다는 말을 듣고 프랑스 학술원 원장이던 '장 드로메송'이

유럽 선진국들이 유럽문명과 예술의 상징적 도시인 두브로브니크의 포격 하나 막지 못한대서야 말이 되는가 하면서 프랑스 지식인 13명을 이끌고 범선을 타고 포격을 막기위해 두브로브니크로 갔다고 한다.

또 한 '바이런'이 두브로브니크를 '아드리아의 진주'라고 표현,

 

* 플라차 대로의 연분홍색 대리석 바닥이 수 많은 세월의 흔적을 알 수 있게 거울처럼 비치며 반들거린다

 

* 메주고리예는 산과 산 사이의 지역이라는 뜻을 가진 보스니아 & 헤르체고비나의 남부에 위치 해 있는 지도에도 나와 있지않은 작은 마을이었다.

포도농사와 담배농사를 짓는 한적한 농촌이었으나 1981년 성모마리아가 나타났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카톨릭 신도들의 순례지이자 관광지로 널리 알려졌다.

1981년 6월24일 헤르체고비나 지역의 메주고리예 크리니카산 기슭에서 길 잃은 6명의 아이들에게 성모 마리아가 발현 되었다고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바티칸 교황청의 입장은 이에 대해 아직까지 명확한 결론을 유보하고 있다고 한다.

 

* 성 야고보성당은 원래 1892년 ~ 1897년에 지어진 성당인데 이 지역의 지반이 약해 기울기 시작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69년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축 되었다.

 

* 예수님이 일생에 경험한 일을 색깔이 있는 작은 대리석 조각으로 모자이크 해 놓은 성화가 조각된 곳이 다섯군데 있는데

많은 신자들이 이 곳에서 기도를 드린다.

 

* 치유에 예수상은 청동으로 만든 동상인데 무릎 부분에서 신기하게도 눈물처럼 물이 한 방울씩 솟아 나오는데 이것을 성수라하여 아픈 사람의 상처부분에 바르고 기도하면 낫는다고 믿고 많은 사람들이 하얀 천으로 그 물을 닦아서 가져간다.

 

* 모스타르는 다리 하나를 두고 카톨릭과 이슬람이 격렬하게 내 전을 겪었던 모스타르 다리는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 모스타르의 상징이자 보스니아 내 민족간의 화해를 염원하는 징표이다.

네레트바강에 세워진 모스타르 다리는 최초에는 나무로 만든 다리였으나 오스만 제국의 황금기 때 인 1557년 '술탄 슐레이만'

1세에 의해 길이30m, 폭5m, 높이25m의 아치형 석조다리로 개조되었는데 1088개의 하얀돌을 사용하여 9년만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매 년 7월이면 높이 25m인 모스타르 다리 위에서 네레트바강으로 뛰어 내리는 '다이빙 축제'가 열린다.

모스타르 다리와 그 주변 구 시가지는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모스타르 다리에서 이슬람 사원인 메호메드파샤 모스크가 있는 길로 들어서면 강을 따라 50m 정도밖에 되지않은 짧은 거리의

모스타르 중심인 브라체 페지카거리가 나온다.

바닥 전체에 호박돌로 깔려진 골목길을 따라 양쪽으로 기념품 가게들과 식당들이 있다.

 

* 이 곳은 한국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어서 정보가 없지만 보스니아 현지인들이 많이 찾고 유럽의 여행자들이 찾는 깨끗하고

조용한 마을이다

 

* 발칸의 알프스로 불리우는 아름다운 곳 *블랙호수 *타라계곡 *타라 브릿지...

 

* 오스트러그 수도원은 제타계곡 900미터 위에 지어진 수도원은 거의 90도 수직에 가까운 절벽속에 숨어있는듯한 수도원은

몬테네그로에서 가장 중요한 성지로 동방정교회의 1년에 한 번인 '슬라바'는 2박3일 동안 치러는 성인들을 기념하는 가장 큰 축제일인데 이 때에는 일주일 전부터 숙소를 잡으려고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숙소가 모자라서 넓은 마당에도 매트리스와 담요를 덮고 머물면서 기도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현지인의 말에 의하면 '오스트러그'라성인이 직접 손으로 돌을 하나하나 날라다가 지었다고 한다.

어떻게 이 가파른 절벽에 이런 수도원을 지었는지 아직도 미스터리라고 한다. 몬테네그로의 가장 유명한 동방정교회 순례지로

벨로파블리치 평야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 패라스트의 인공섬 '레이디 오브 락교회'는 아드리아해에서 유일한 인공섬으로 어부들이 돌을 던져서 만들었다고도 하고

침몰한 배 위에 만들었다고도 전해진. 성당의 천정에는 성모마리아의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유화가 68점이나 된다고 한다.

기적이나 은총에 감사하며 바친 증표들이 빼곡히 채원진 은 판들이 2,000개나 된다고 하며 주로 배 모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어부들이 풍랑에서 기적이나 은총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또는 안전 항해나 군함들의 승리를 기원하는 절절한 소망의 은판들이다. 출입문의 부조물이 배를 떠받치고 있는것은 이 섬이

어부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어부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다.

 

* 조지 베네딕토 수도원은 자연섬으로 개방하지 않는다.

이 섬은 한 때 패라스트를 점령했던 프랑스 군인이 포격중 사랑하는 연인이 죽자 죽을 때까지 이 곳에서 수도사로 살았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 코토르의 구 시가, *시계탑에 있는 날개달린 사자, 베네치아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베네치아의 상징인 사자의 부조물이다.

 

* 처형대 *트리푼성당은 코토로의 상징이고 구 시가의 상징이다. 숫자 809는 처음 완공한 해이고 숫자 2009는 지진 후

재건한 해, 출입구 위에 황금으로 만든 성인상, 코토로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지는 성 트리푼을 기리기 위해 지은 성당.

 

* 코토로 성곽 올라가서 일몰감상하기.

 

*스베티 스테판은 15세기 12가족의 어부들이 모여살던 곳으로 돌담길과 좁은길 그리고 꼭대기에 작은 교회가 하나 있다.

1800년대에는 400여명까지 살았던 이 작은 섬은 1970~1990년까지 유명한 사람들이 즐겨찾은 휴양지로 변모했지만

티토가 사망한 후 유고슬로비아의 연방이 해체되고 잊혀져가는 곳이 되어 버렸다.

2007년 몬테네그로 정부는 국제 입찰을 통해 세계적인 호텔 체인인 아만리조트에서 리모델링을 해 섬 전체가 하나의 호텔로

운영되고 있다. 이 곳은 호텔 투숙객 외에는 출입할 수 없다.

 

* 지로카스터르는 드리노강(Drino River) 위쪽의 산자락에 자리잡은 로카스트라(Gjirokastra)는 빼어난 아름다움이 녹아있는 마을이다. 13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발전하는 도시의 모습이었지만 1417년 터키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쇠퇴 길로 접어든다. 그러다가 17세기 자수품, 비단, 오늘날까지도 유명한 흰색 치즈 등의 특산물 매매가 성행하면서 다시 번성하기 시작했다. 마을 중심부에 있는 바자 모스크(Bazaar Mosque) 위편에는 메메드후 ABC 기념관(Memedheu ABC Monument)이 있는데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알바니아 교육의 문예부흥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마을에는 14세기에 건축된 성채가 있는데 현재는 군사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엔버 혹사(Enver Hoxha)가 어린시절 살던 집은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는 민족 박물관(Ethnographic Museum)으로 바뀌었고, 유서 깊은 터키식 목욕탕은 마을 아래쪽에 있다.

 

*지로카스터르 성

 

 

메테오라(미티오라)는 그리스 중부 테살리아 지역에 있는 6곳의 정교 수도원을 지칭하는데,

하늘로 높이 솟은 돌기둥 위에 세워졌다.

계단도 있으나 케이블을 이용해 보급물이나 사람을 옮길 때가 많다고 한다.

1981년 제임스 본드의 영화 'For Your Eyes only'의 클라이맥스 추격 장면에 성 트리니티 수도원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그 외에 '7인의 독수리'라든지 '십계'의 촬영지 이기도 한 유명한 관광지이다.

'메테오스'란 원래 그리스어로 "바다에 떠 있는, 공중에 떠 있는'이라는 뜻을 지닌 형용사이다.

한 현대어 '메테오로'는 "운석, 하늘에서 떨어진 물체' 또는 '번개와 비 등의 대기 현상'이라는 뜻의 명사이다.

 

'어느 날, 아주 화가 난 제우스신이 천계에서 던진 암석이 남겨졌다'는 전설도 있다.

'풍화와 물에 의한 침식에 의해 남겨졌다'는 자연현상이라는 설이 있는 그리스 정교의 수도원들이다.

메테오라 수도원은 아테네에서 400km 떨어진 마케도니아 산악지대에 있는 신비스러운 공중 수도원이다.

보다 높은 곳에 올라 기도에 힘쓰던 수도사들의 흔적들이 엿 보인다.

뾰쪽하게 솟아오른 바위 촉 끝에 세워진 교회를 보는것도 현기증이 난다.

가장 높은 곳은 해발500여 미터, 밧줄을 타고 오르내리다 떨어져 죽는일도 있었지만 기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사람만 오르내린것이 아니라 지어진 건물의 벽돌 한 장 한 장도 밧줄로 올렸다.

그러니 14세기 초, 첫 수도원이 지어지는데 33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렇게 수 백년의 세월이 흐른 은둔자의 수도원 메테오라에 외지인의 방문을 허용할 수 있도록 계단이 놓여진 것은 불과 수 십년 전이다. 신비스러움이 1988년 유네스코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했고,

'타임즈'는 2010년 5월 세계불가사의의 10대 건축물에 메테오라를 4위로 올렸다.

주로 그랜드 메테오라 수도원, 발람 수도원, 루사노이 수도원, 성 트리니티 수도원들을 많이 방문한다.

 

* 마케도니아의 오흐리드 호수로 이동, 숙박.

 

 

 

 

* 오흐리드 호수는 마지막 빙하가 끝난 직후인 4백만년 전에 형성된 오흐리드 호수는 특이하게도 50%가 지상과 지하에 있는

수 많은 샘물에서 솟아오르는 물이고 나머지는 강에서 흘러들어 온다고 한다.

1년 내내 얼음이 얼지않고 호수의 물이 맑고 깨끗해 물속 깊은 곳까지 들여다 보인다.

오흐리드 호수는 빙하기에도얼지않았기 때문에 고대 어류들지금도 살고 있다고 한다.

화석으로 발견된 17kg이나 되는 전설적인 송어도 아직 이 곳에 살고 있다고 하며

오염이 되지않고 있는 깨끗하고 맑은 물 때문에 수세기 동안 이 곳 주민들이 질병의 두려움 없이 호수의 물을 마실 수있었다고

하니 바다가 없는 마케도니아에 내려준 또 다른 형태의 축복인거 같다.

 

* 릴스키마나스틸 릴라의 수도원은 마을에서 떨어진 산 속에 있는 불가리아 최대의 수도원이다.

은 산 속의 은둔 수도지에서 대수도원으로 릴라 산 속의 릴스키마나스틸에 위치해, 어수선한 현대 사회와는 동떨어져 있는

릴라의 수도원은 붉게 빛나는 지붕을 얹은 건물이 주위의 자연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수도원의 기원은 '이반 릴스키'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반은 당시 사람들의 정신적 퇴폐에 환멸을 느끼고 릴라 산 속의 동굴에서 숨어 지내는 수사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에 대한 존경심이 사람들 사이에 점차 퍼져 나갔다. 14세기 초 대지진으로 당시의 건물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건물을 재건한 사람은 이 지방의 귀족 '프레리요 드라고보'라였다.

그는 이 성지에 외적의 공격이나 자연 재해를 견딜 수 있을 만큼 견고한 성채를 건설했다.

당시의 건물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1335년에 건설된 프레리요 탑뿐인데,

이 탑은 높이가 25m나 되고 옥상이 흉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많은 공벽(벽돌벽이나 돌벽 등을 안정시키기 위해 벽에서 돌출시켜 기둥 모양으로 만든 벽체의 일부)을 갖추고 있어서 지금도 외관에 위엄이 서려 있다.

 

중세에 불가리아 군주들은 릴라의 수도원에 특권을 많이 부여했다.

14세기 말부터는 오스만투르크의 군주가 불가리아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었지만, 그들 역시 특권을 인정해 세금을 면제해 주었다. 그러나 17~18세기에 걸쳐 오스만투르크 제국 내란의 여파로, 수도원은 여러 차례 습격과 약탈을 당했으며,

1833년에는 큰 화재로 거의 잿더미가 되었다.

그러나 바로 1년 뒤에는 돌과 목재, 회반죽 등의 재료가 운반되고 재건의 망치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32,000㎡의 지에 수사용 독방 300개, 프레스코화로 장식된 예배실 4개, 도서관, 손님용 방, 수도원 관리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 성당에서는 유럽과 아시아 양쪽 문화를 수용한 다채로운 장식을 볼 수 있다.

회랑의 벽면과 천장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는 19세기 불가리아의 종교화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중세에 건설된 성당은 재건 과정에서 철거되었지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동물이 조각된 나무 문이나 수도원장의 의자,

그리고 프레스코화도 부분적을 남아 있어, 현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 소피아 여신상

 

 

* 세인트 페트카 지하교회는 터키 지배시대에 그들의 눈을 속이기 위하여 반 지하 교회를 지어 예배를 보았다.

 

* 게오르기 교회는 쉐라톤 호텔과 대통령궁 사이에 있으며 교회 뒷 쪽에는 로마시대의 목욕탕이 있는 유적지가 있다.

 

* 르디카 유적은 비쟌틴 시대에 소피아의 지명, 3세기 경에 로마인들에 의하여 강력한 성벽이 건립,

현재는 일부분 지하도를 건너면서 구경할 수 있지만 많은 부분이 현대 건물아래 매몰되어 있다.

 

* 알렉산더 네브스키 교회는 1878년에 러시아 해방군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은 네오 비쟌틴 식의 발칸반도 동방정교의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교회.

 

* 차르베체 요새는 벨리코 투르노보는 제2차 불가리아 왕국(1185~1396년)의 수도였고 슬라브문화의 중심지로 불가리아의 아테네라고 불리었다.

후에 터키 오스만제국의 침략으로 왕국은 멸망하였고 더군다나 1911년 대지진으로 유물들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그나마 성터가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의 인민궁전은 세계에서 미국 국방성(펜타곤) 다음으로 단일 건물로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건물,

건물은 가로가 274m, 세로가 245m, 높이가 86m, 1,100개의 방, 수정 3,500톤으로 만든 480개의 샹들리에와 1,409개의 천정용 전구, 20만 제곱미터의 양모 카페트와 금과 은으로 만든 벨벳으로 장식한 화려한 궁전.

 

* 리스성은 루마니아의 카를1세가 8년동안 공들여서 지은 여름별궁,

펠리스성은 목재와 석재, 벽돌, 대리석을 이용해서 독일 르네상스식으로 지어졌다.

그리고 독일, 터키등 여러나라들의 유명한 건축가들이 참여해서 이 성을 지었다고 한다.

내부는 크고 작은 160개의 방으로 루어져 있으며 진귀한 보물과 골동품들을 볼 수 있다.

유럽 미술가들의 작품 2,000여점이 소장되어 있고 무기의 방에는 각종 다양한 무기들이 4,000여점 전시되어 있다.

유럽 최초로 완전 전기로 조명이 밝혀지는 성으로 별도로 전력 발전소가 있고, 최초로 중앙난방을 하는 성.

재 루마니아 국보 1호로 지정되어 있다.

 

* 후네도아라 성(훈야드성(Hunyad Castle)은 루마니아의 중서부 후네도아라(Hunedoara)에 있는 작은 계곡으로 분리된 분지에 지어진 성으로 1307년 헝가리(현재 루마니아)의 찰스에 의해 건설 되었다.

아마 이탈리아의 건축가에 의해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건물은 315년에 완공 되었으며 그 후 화재로 손실된 성을 존 후냐디가 1446년부터 1453년 사이에 복원하였다.

복원된 성은 주로 고딕 양식에 르네상스 건축 양식 요소가 가미 되었으며 높고 강력한 방어탑을 건설하고 실외 장식과 도개교를 설치하였으며 색 지붕과 탑, 수 많은 창문 석재 조각으로 장식한 발코니가 있는 크고 인상적인 건물이다.

 

* 골목길이 예쁜 중세의 도시 시비우는 지붕위의 눈처럼 생긴 창은 채광용, 환풍용 창이라고 한다.

루마니아의 가옥은 다락공간이 있어서 주식인 옥수수같은 농산물이나 먹거리를 두는 공간이 있어서 이렇게 작은 창이 필요했나 보다. 참으로 재미있는 모습이다.

 

* 아스트라 야외 민속박물관은 시비우에서 약 3km 떨어진 둠부라바 숲에 99,174ha 규모로 조성되었다.

루마니아에서 가장 큰 야외 박물관으로 숲과 2개의 인공호수를 배경으로 전통 건물들을 배치해 루마니아 전통마을을 재현 해

놓았다. 1963년에 만들기 시작해 1989년에 완성하였다.

루마니아 서민들의 산업화 이 전 생활모습을 보여주는것을 목적으로 하여 00여채의 건물에 1만6,000여점의 여러가지 용도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 칼레메그단 요새는 도심 서북쪽, 사바강과 도나우강(다뉴브강)의 합류점인 두물머리에 자리한 역사적인 장소인 칼레메그단

요새는 베오그라드의 상징이기도 하며 주민들의 쉼터로 사랑받고 있는 장소,

성벽 바로옆의 테니스 코트, 농구 코트, 탁구대등 이 곳을 관광지로 꾸밀 목적이었다면 운동시설을 설치하지 않았겠지만

시민들을 위한 공간들을 유적지 안에 설치 해 놓고 누구든지 운동할 수 있게 개방해 놓은것이 인상적이다.

칼레 메그단의 '칼레'는 터키오로 '성'이라는 뜻이며 '메그단'은 '전쟁터'라는 뜻,

이름에 걸맞게 야외 군사 박물관에는 세계대전 당시 쓰였던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 빅토르 동상은 전쟁승리 기념탑으로 사바강을 향해 서 있다.

오른손에는 칼과 왼손에는 비둘기를 들고 서 있는 이 동상은 세르비아가 터키에서 독립한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원래는 베오그라드 시내 중심에 세워져 제막식을 가졌으나 벌거벗은 동상의 모습을 시내 한 복판에 세워놓은 것이 볼상 사납다는 시민들의 여론 때문에 이 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 하일로 크네즈 거리는 우리나라의 명동같은 거리로 명품가게들과 카페들이 있다.

* 표(?) 카페는 1923년 문을 연 베오그라드에서 가장 오래 된 선술집으로 처음에는 알기 쉽도록 '사보르나 교회 앞 카페'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술집 간판에 교회이름을 넣은것에 대하여 교회측에서 반대를 하자 마땅한 이름이 생각나지않아 임시로 '?'로 붙여놓았는데 '?'라는 이름 때문에 영업이 더 잘되어 계속 '?' 물음표 카페로 남아있게 되었다고 한다.

세계대전 중에도 영업을 한 카페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