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추억이 머무는 늦가을 간이역
시월은 가고 깊은 가을로 접어드는 11월이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추억과 낭만의 무게도 더해간다.
한국관광공사는 11월에 가볼 만한 여행지로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기차역 5곳을 선정했다.
여행중 주변 풍경이 절경인 곳도 있지만, 그와는 반대로 쓸슬하면서도 그 내면에 배어있는 추억이
아름다운 곳이 있다.
아마도 간이역 여행은 후자의 그런것이 아닐까요?
문화재로 지정된 간이역 - 구둔역
석탄수송의 거점에서 사계절 레포츠의 관문으로 - 고한역
영화‘박하사탕’처럼 순박한 역 - 공전역
일제의 수탈과 해방의 감격을 지켜본 산 증인 - 군산역
도심 속 한복판 추억의 기차역 - 진주역
▲ 삼탄역내
영화 ‘박하사탕’처럼 아련한 느낌, 공전역
충북 제천 공전역은 영화 ‘박하사탕’으로 유명해졌다.
극중 설경구가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절규했던 곳이 바로 이 근처에 있는 진소천 철길이다.
충남 조치원과 제천을 잇는 충북선의 동량∼삼탄∼공전 구간은 접근이 쉽지 않은 오지이자,
‘충북의 동강’이라고 불릴 정도로 굽이도는 강물과 작은 백사장이 절경을 간직하고 있다.
▲ 삼탄역에서 바라 본 삼탄 ⓒ 2007 한국의산천
공전역은 시골 역사 분위기와 가을 정취를 한꺼번에 만끽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곳이다.
인근 박달재에는 박달과 금봉의 애틋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조각공원, 노래비, 서낭당 등이 조성돼 있다.
한국 최초의 신학교가 있었던 배론 성지는 가을 산책길로 으뜸이다.
제천시청 문화관광팀 (043)641-5142
▲ 영화 ‘박하사탕’ 촬영지로 유명한 진소마을 철길. 공전역 근처에 있다. ⓒ 2007 한국의산천
▲ 터널을 빠져나오는 기차 ⓒ 2007. 한국의산천.
열차가 빠르게 달리는 구간이므로 철길에 올라서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영화 시작의 야유회
: 1999년 봄
주인공 김영호가 '가리봉동우회'의
야유회 장소에 느닷없이 나타난다.
영호는 마흔살. 직업은 없다.
젊은 시절의 꿈, 야망, 사랑. 모든 것을 잃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중년.
증권회사에 피 같은 돈 모두 뜯기고, 흡혈귀같은 사채업자한테 모두 빨리고, 동업하던 친구놈한테 사기당하고,
마누라한테 이혼당하고, 자식한테도 버림받고 어렵사리 구한 권총 한정으로 죽어버리려 하는데,
느닷없이 찾아 온 사내 - 광남의 손에 이끌려 첫사랑 순임을 만나게 된다.
박하사탕을 입에 문 영호는 이제 더 이상 그 맛따위로 행복하지 않다.
20년전, 순임과 함께 소풍을 나갔던 곳에 찾아가지만, 20년이란
세월은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 후다.
기찻길 철로 위 - "나 다시 돌아갈래!"- 영호의 알 수 없는 절규는 기적소리에 묻혀 버리고
만다.
영화는 1999년 오늘에서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1994년 여름 :
삶은 아름답다
영호는 서른 다섯의 가구점 사장이다. 자가
아파트에 자가 차량. 겉으로 보기에는 중산층이다.
마누라 홍자는 운전교습 강사와 바람을 피우고, 그는 가구점 직원 미스리와 바람을 피운다.
어느 고기집에서 과거 형사시절 자신이 고문했던 사람과 마주치는 영호.
'삶은 아름답다'라고 중얼거리는 그의 말은 다분히 자조적이다.
집들이를 하던 날, 집사의 기도가 장황하게 이어질 때 그는 밖으로 뛰쳐나가 버린다.
1994년, 어느 여름이었다.
1987년 4월 :
고백
영호는 닳고 닳은 형사. 홍자는 예정일을 얼마
남기지 않은 만삭의 몸이다.
사랑도 열정도 식어버린, 지극히 일상적인 삶에 대한 권태로움으로 지쳐버린 김영호.
그는 홍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군산의 허름한 옥탑방, 카페 여종업원 품에 안긴 그는 순임을 목놓아 부르며 눈물을 터뜨린다.
1984년 가을 :
기도
아직은 서투른 신참내기 형사, 영호.
그는 선배 형사들의 과격한 모습과 자신의 내면에 내재된 폭력성에 의해 점점 변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순수함을 부인하듯이 순임을 거부한다.
마침내 그의 광기가 폭발해버리던 어느날, 그는 자신을 짝사랑해왔던 홍자를 택한다.
1984년의 어느 가을, 순임을 만난지 정확히 5년째 되던 해였다.
1980년
5월 : 면회
영호는 전방부대의 신병. 긴급출동하는
영호는 트럭에서 순임의 모습을 보게된다.
자신을 면회왔다가 헛걸음치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녀의 작은 모습.
영호는 그녀를 소리쳐 부르고 싶지만,
다른 장병들의 휘파람 소리와 요란한 트럭 소리에 묻혀 그저 그녀를 떠나보내고 만다.
1980년 5월의 어느
날이었다.
영화 끝 무렵의 소풍
: 1979년 가을
영화의 끝. 구로공단 야학에 다니는
10여명이 소풍을 나왔다. 그 무리속에 갓 스무살의 영호와 순임도 보인다.
둘은 서로 좋아하기 시작한 듯하다.
젊음과 아름다운 사랑. 순수한 행복감에 잔뜩 젖어있는 두 사람.
눈부신 햇살아래서 영호는 순임이 건네준 박하사탕 하나가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1979년 어느 가을. 이렇게 영화는 마지막에 와서 다시 시작한다.
이 영화는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가는 영화입니다.
▲ 진소마을에 서있는 영화포스터 예전 영화관 앞에 걸려있는 70년대 손으로 그린 영화 간판 같은 느낌이 든다.
ⓒ 2007 한국의산천
1999 이창동 감독
작품 박하사탕 촬영지 백운면 애련리 진소마을.
38번 국도를 따라 충주시 산척면을 지나 다리재 터널을 지나면 백운가는길 갈색표지판 보이면
우회전. 표지판을
따라 쭉가면 철길 도착. 이곳은 삼탄- 공전 구간에 위치하며 공전역에 가깝다.
▲ 진소마을에 있는 영화 기념 촬영비 ⓒ 2007 한국의산천
시놉시스
첫사랑의 기억으로 2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역순 구조의 영화.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동업자에게 배신당한 중년 사내 영호는 무기력과 절망의 극한에 다다른다.
어렵사리 총을 손에 넣고 자살을 하려는 순간, 그는 광남이란 사내의 갑작스런 방문을 받고,
그에게 이끌려 첫사랑의 여인 순임을 만난다.
영호는 아내의 불륜을 목격하고 바람 피우는 가구점 사장, 폭력적 광기에 물드는 형사, 5월 광주에 나선 군인,
그리고 첫사랑을 경험하는 여린 청년으로 되돌아간다.
<박하사탕>은 이창동 감독이
<초록물고기> 이전부터 구상해온 작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금기의 꿈’을 통해, 관객에게 ‘시간의 현재성’을 전하려 했다.
그것은 ‘과거엔 귀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은, 하얗고 깨끗한 박하사탕’의 알싸한 맛과도 닮아 있다.
수석 프로그래머 이용관 교수는 “영화제의 문을 열기에 모자람이 없는, 진취적 성향이 강한 영화”라고 평한다.
[시네21 참고]
▲ 영호와 순임이 야유회 왔던 백사장이 펼쳐진 진소천 ⓒ 2007. 한국의산천.
구로공단 야학에 다니는 10여명이 소풍을 나왔다. 그 무리속에 갓 스무살의 영호와 순임도 보인다.
둘은 서로 좋아하기 시작한 듯하다.
젊음과 아름다운 사랑. 순수한 행복감에 잔뜩 젖어있는 두 사람.
눈부신
햇살아래서 영호는 순임이 건네준 박하사탕 하나가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1979년 어느 가을. 이렇게
영화는 마지막에 와서 다시 시작한다.
▲ 시네 21에서 참고 ⓒ 2007 한국의산천
'박하사탕'은 시간을 거꾸로 올라가며,
결코 호감은 안 가지만 냉큼 외면하기도 힘든 이 사내의 20년에 걸친 사연을 들려주는 영화다.
소설 쓰다가 '초록물고기'(1997)로 뒤늦게 데뷔한 이창동 감독은 두 번째 영화에서 한 사내의 20년사를
일곱 토막으로 나누어 시간의 역순으로 배열하는 독특한 구성을 시도했다.
관객은 거꾸로 가는 기차에 태워져 김영호라는 사내의 개인사를 한 모퉁이씩 들리도록 안내된다.
시간을 거슬러올라가는 이유를 감독은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박하사탕의 색깔과 맛 같은 첫사랑의
순수한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서”라고 했다.
박하사탕 같은 첫사랑 시절로 가는 시간여행이라면, 꽤 상큼한 관광이 될 거라고 기대함직하지만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놀이의 흥을 깨는 주정꾼의 행패로 시작하는 도입부부터 심상치 않지만,
이 여행이 한 남자의 20년사일 뿐 아니라 미봉된 역사적 상처의 기록이란 걸 알아차리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김영호라는 주인공부터 그의 20년에 귀 기울이고 싶을 만큼의 매력이 언뜻 눈에 띄지 않는
어정쩡한 인물이다.
그의 직업은 공원-군인-형사-가구상을 거치는데, 역사의 전모를 몸으로 보여주기엔 너무 주변적이고,
역사의 상처를 관념으로나마 끌어안기엔 지식의 용량이 부족하다.
이를테면 그는 평생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를 서성이며 살았다.
이 중간자적 설정이야말로, 가해자에 대한 윤리적 고발장을 내미는 사회성 영화나, 보잘것없는 체험을
자의식 과잉의 수사로 분칠한 회고담 장르와 일찌감치 결별하는 기점이다.
역사의 화염은 때로 너무 광포해 슬쩍 스치기만 해도 치유불능의 내상을 남긴다. '
박하사탕'은 미친 역사의 주변에 멍하게 서 있다 영혼이 녹아버린 한 착한 사내의 신음과 고열의 고백록
이자, 온전한 영혼을 향한 가슴 저미는 연서다. [시네 21 참고]
문화재로 지정된 간이역, 구둔역
문화재로 지정된 간이역, 구둔역
양평 구둔역은 하루 세 번 기차가 선다.
10여 년 전만 해도 경동시장으로 나물 팔러 가던 어르신, 통학하던 학생들로 붐비던 곳이고
임진왜란 때에는 전략적 요충지로 9개의 진지가 구축되었던 곳이지만 지금은 사람 얼굴 구경하기 힘들다.
덕분에 간이역 특유의 고즈넉함이 느껴진다.
▲ 구둔역의 고즈넉한 철길 풍경.
구둔역은 현재 문화재청이 선정한 ‘등록문화재 제296호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건축미가 뛰어나고 서정성이 높은 곳이니 문화재로 지정된 구둔역은 이용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하지만 중앙선 복선화 공사가 완료되면 그마저도 어렵게 된다.
구둔역 지척에는 1925년 문을 열어 한결같은 맛을 지켜온 지평막걸리 술도가가 있고 한국의 토종 물
고기를 모아놓은 경기도 민물고기연구소와 수령 천년의 은행나무가 멋진 용문사가 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와 꽃으로 마음을 씻으라는 세미원이 볼만하다.
▲ 군산역 주변 풍경.
일제 수탈과 해방의 산 증인, 군산역
1912년 전주∼군산을 잇는 군산선이 개통되면서 군산역은 현대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호남평야 곡식이 일본으로 공출되는 수탈의 현장을 지켜보았고,
해방 이후에는 여객과 화물을 운송하며 지역경제의 기반이 됐다.
다음달 내흥동에 군산신역이 들어서고 군산선이 장항선과 연결되면 군산역은 화물열차의 종착역으로만
가끔 쓰일 예정이다.
인근 페이퍼코리아선은 전국적인 명소다. 신문용지 제조사 페이퍼코리아와 군산역을 연결한 2.5㎞ 철길이다.
낡고 오래된 살림집들 사이로 기차가 위태롭게 지나가는데, 이 장면을 보러 많은 여행객이 이곳을 찾는다.
군산시청 관광진흥과 (063)450-4554
석탄 거점서 휴양지 관문으로 고한역
위 치 :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고한역은 우리나라의 대표 산업철도인 태백선의 19개 기차역 중 하나이다.
1966년 1월 태백선의 지선인 고한선의 개통과 동시에 문을 열고 오랫동안 무연탄 수송의 중요거점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석탄산업합리화정책으로 인해 대부분의 탄광들이 폐업한 뒤로 고한역에서는 더 이상 석탄가루가
날리지 않는다.
하지만 2000년 10월 정선군 고한읍에 국내 최초의 내국인 전용카지노가 개장한 이후에는 고한역에서 기차를
이용하는 외지 관광객들의 수가 부쩍 늘었다.
하이원스키장이 개장한 2006년 스키시즌에는 서울, 부산, 동대구역 등에서 고한역까지 스키전용열차가
운행되기도 했다.
그리고 정선군 제일의 고찰이자 5대 적멸보궁 중 하나인 정암사,
봄부터 가을까지 산상화원을 이루는 만항재와 함백산도 모두 고한역 인근에 위치한다.
한때 석탄수송의 중요거점이었던 고한역은 이제 사계절 레포츠와 관광의 관문으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문의전화 : 고한역 033)591-7788
도심 속 추억의 기차역, 진주역
경남 진주 시내 진주교를 건너 남강과 진주성을 등지고 차로 조금만 가면 오른편에 진주역이 서 있다.
바로 옆은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 서 있고 차들이 분주히 움직이지만, 진주역 앞에는 시간이 멈춘 듯
한가로움이 느껴진다.
진주역사의 지붕과 승강장은 옛 모습 그대로다.
진주역은 사진촬영 명소이기도 하다.
사진작가나 동호인들이 출사지로 자주 찾는다.
인근에는 이 지역 최대 호수인 진양호가 있다.
석양을 바라보며 즐기는 호반 드라이브가 환상적이다.
진주역 역무과 (055)753-7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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