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대표하는 으뜸 바다음식을 꼽으라면 누가 뭐라 해도 '굴'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부산 가덕도에서부터 한려해상과 다도해를 거쳐 서해의 백령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해역에서 서식한다.
게다가 회, 국, 전, 구이, 젓갈 등 어떤 종류의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바다음식의 팔방미인이다. 그런데 굴의 매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오래전 전남 함평의 갯마을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그때도 엊그제 입춘 한파처럼 몹시 추웠다.
바닷물이 들자 갯벌로 들어간 어머니들이 뭍으로 나왔다. 그리고 순서대로 캔 굴의 무게를 잰 뒤 이를 노트에 적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주민들은 ㎏마다 일정액을 공동기금으로 적립했다.
이렇게 모은 돈은 노인잔치, 화전놀이, 이장 활동비 등에 썼다.
경남 거제나 통영 등 대규모 굴 양식장에선 생각할 수 없는 풍경이다.
이쯤 되면 돌에 붙은 굴(석화)이 갯마을 버팀목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충남 태안에서 본 인상적인 모습도 생각난다.
개목리 마을어장의 걸대에 빼곡하게 굴이 걸려 있었다.
조차가 심해 물이 들면 잠기고 빠지면 노출되는 전형적인 서해안 굴 양식장이었다.
겨울이면 남녀노소 마을주민들이 모여 해안가에 굴막을 지어놓고 굴을 깠다.
그때 필자가 찾았던 굴막에는 달아서 반질반질해진 할머니 조새(굴 채취 어구), 할머니 곁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손자며느리 조새, 그리고 살림꾼 며느리 조새 등 '삼대 조새'가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아쉽게 그 마을의 굴밭은 허베이호 기름 유출 사고로 사라졌다. 더 이상 굴막에서처럼 달달한 굴은 맛볼 수 없게 됐다.
당시 손자며느리가 통영산 굴로 지은 굴밥을 그릇에 가득 담아 주었다.
거제나 통영의 굴은 알이 굵어 굴밥을 해도 쌀과 굴 알갱이가 잘 어울렸다.
대신 태안이나 서산의 굴은 어리굴젓에 적합했다.
조차가 큰 서해안의 굴은 물이 빠지면 입을 꼭 닫고 몇 시간을 굶으며 다음 물때를 기다린다.
그래서 알갱이는 작지만 육질이 쫄깃하고 식감이 좋다.
반대로 거제나 통영의 굴은 24시간 먹이를 섭취할 수 있어 알이 굵다.
굴이 산란하는 5월에서 8월 사이에는 독성이 강해진다.
외국에서도 철자에 'R'자가 없는 달인 오월, 유월, 칠월, 팔월엔 굴을 먹지 않는다.
이 시기에 굴을 먹으면 탈이 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노로바이러스' 때문이다.
설 전후 시기가 가장 안전하고 살도 통통하게 올라 맛이 좋다.
인류의 등장은 굴 요리의 시작과 궤를 같이한다.
부산 동삼동과 여수 안도, 해남 군곡리, 태안 안면도, 안산 오이도 등의 해안을 따라 발견되는 조개무지(패총)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것이 굴껍질이다. 선사시대부터 굴을 먹었다는 증거다.
고려시대 '청산별곡'의 '살어리 살어리랏다, 바라래 살어리랏다. 나마자기 구조개랑 먹고, 바라래 살어리랏다'라는 가사에 나오는 '구조개'는 '굴과 조개'를 말한다.
조선 중기에 허균의 '도문대작'을 비롯해 '음식디미방', '규합총서', '증보산림경제' 등 요리책에도 굴을 날로 먹는 방법이 소개돼 있다.
오늘날처럼 냉장 보관시설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굴은 소금으로 갈무리해 젓갈로 보관했다.
그중 진상용으로 고흥의 진석화젓과 서산의 어리굴젓이 유명했다.
모두 석화라고 하는 자연산 굴로 만든 젓갈이다. 진석화젓은 굴의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삭힌다.
'眞石花' 즉 진짜 굴젓이라는 말이다. 2~3년은 족히 묵혀 굴의 형태가 완전히 사라지고 누런 액체만 남은 젓이다.
반대로 어리굴젓은 소금을 적게 넣고 고춧가루와 버무린다.
배추나 상추를 얼간해서 먹듯 싱싱한 굴을 금방 간을 해서 고춧가루에 버무려 먹는 것이다.
'어리다'는 말이 담고 있는 의미다. 서로 으뜸이라고 내세울 필요도 없다.
요리법이 다르니 우열을 가리는 것이 어리석다.
정월 초하루 차례를 지내자마자 충남 바닷가로 향했다.
굴 밭이라면 백령도에서 거제도까지 두루 쏘다녔지만 제대로 된 굴 맛을 보지는 못했다.
이곳저곳을 수소문하다 찾은 곳이 보령의 천북 굴단지였다.
도착해보니 수십 곳의 굴 요리 전문집들이 줄지어 있다. 주차장에는 차들이 가득했다.
서울에서 가깝고, 안면도 등 매력 만점의 여행지들이 많은데다 꽃게, 대하, 새조개, 갱개미(간재미), 낙지, 키조개, 개조개 등 바다음식까지 풍성하니 뭘 더 바라겠는가.
설 연휴를 맞아 귀성객과 관광객 등이 집집마다 몇 팀씩 앉아 있었다.
저렇게 많이 소비되는 굴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주인 관상을 보며 이집저집 기웃거리다 복씨 성을 가진 안주인의 상술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녀는 자연산으로 보이는 작은 알굴을 내밀며 맛을 보라고 유혹했다.
굴의 원산지를 묻자 거제, 통영, 여수, 완도에서 올라온 굴이라고 했다.
그리고 힘주어 '시화호굴'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곳 바다는 오염되었다는 것이다.
200여년 전 쓰인 '규합총서'(1809년)는 남양(南陽)에서 나는 '석화'를 팔도 특산물의 하나로 꼽았다.
굴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말이다. 남양은 경기 화성 일대를 일컬으니 시화호를 포함한다.
지금 그곳 바다는 반월, 남동, 시화 공단 등 공업단지와 대도시로 바뀌었다.
1억~2억년 전부터 식량으로 사용했던 굴은 불과 몇백년 만에 먹을 수 없게 됐다.
누굴 탓하겠는가. 바다를 깨끗하게 해주는 굴과 조개의 서식지를 모두 파괴했으니.
굴물회와 굴밥을 시켰더니 인심 좋은 안주인이 굴구이와 생굴을 덤으로 내왔다.
불꽃이 몇 차례 석쇠 위로 오르내리자 굴이 노릇노릇 익기 시작했다.
10여년 전 섣달 그믐날 기억이 떠올랐다. 내 생애 가장 맛이 있는 굴구이를 그때 먹었다.
전남 고흥 내로마을에서 세찬을 마련하기 위해 꼬막을 캐기로 한 날이었다.
먼저 온 주민들이 모닥불을 지폈고, 뒤따라온 몇 아낙들은 갯가에서 굴을 주워왔다.
익숙한 솜씨로 불길 위로 주워온 굴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잠시 후 부지깽이로 하나씩 긁어내더니 호미로 굴을 까먹기 시작했다.
그때 모닥불 주위에 앉아서 받아먹던 짭조름한 굴이 얼마나 맛이 있던지.
글 사진 전남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joonkim@jeri.re.kr
[어떻게 먹을까]
껍질에 노란 기운 돌면 바로 꺼내 먹어야 제맛
→요리법
굴구이는 먹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너무 잘 구워지면 굴껍질 안에 달착지근한 국물이 모두 밭아 굴이 팍팍하고, 너무 익지 않으면 톡 쏘는 알싸한 맛이 강하다.
껍질에 노란 기운이 돌고 칼이 들어갈 만큼 벌어졌을 때 지체 없이 꺼내 먹어야 한다.
아울러 한꺼번에 센 불에 굽기보다 불의 세기에 따라 조금씩 익혀 먹는 게 좋다.
보통 초장을 찍어 먹는데 겨자를 곁들여도 좋다.
굴밥은 쌀을 씻어 솥에 넣고 한소끔 끓인 다음 생굴을 넣고 뜸을 들인다.
이때 사용하는 굴은 알이 굵은 남해안의 거제나 통영산 굴이 제격이다.
쌀밥에 없는 무기질(철, 구리, 칼슘 등)이나 비타민A가 풍부해 영양식으로도 좋다.
천북의 굴단지에서 맛볼 수 있는 새로운 맛은 '굴물회'다.
배, 오이, 식초 등 일반 물회를 만들 때 식재료와 다르지 않다.
굴을 소금물에 씻은 다음 식초를 좀 뿌려주면 알이 단단해지고 맛도 좋아진다.
이렇게 해서 만든 굴물회는 얼큰하고 새콤하며 달콤하다.
생굴, 굴구이, 굴국밥, 매생이굴, 굴전, 굴칼국수 등도 맛볼 수 있다.
굴구이는 네 사람이 3만원 정도면 충분하다.
굴밥 등에 어울리는 큰 굴은 거제나 통영 등 남해안 양식장에서 전국의 70% 이상을 공급한다.
이동거리나 유통기간을 고려해 생굴보다는 익힘 요리를 추천한다.
생굴을 원한다면 산지와 가까운 어시장에서 작은 굴을 찾는 것이 좋다.
큰 굴도 산지에서라면 겨울철에 날로 먹을 수 있다.
→음식궁합
굴은 무, 배추, 두부와 잘 어울린다. 굴국을 끓일 때 두부와 부추를 넣고 끓이면 좋다.
무와 굴을 넣고 김장양념으로 버무려 만든 '무굴무침'도 시원하고 달콤하다.
무 대신 배추 잎을 굵은 소금으로 간을 해서 굴과 양념을 버무려 먹어도 좋다.
→고르는 방법
굴은 껍데기도 좌우가 있다. 바위에 붙어 있는 것이 왼쪽 껍데기이고 붙지 않는 곳이 오른쪽이다. 우
각이 열고 닫히면서 호흡하고 먹이활동을 하는 것이다. 구울 때 입을 여는 것도 우각이다.
좋은 굴은 껍데기가 꽉 다물어진 굴을 골라야 한다.
→맛집
선창굴수산 041-641-2092 충남 보령군 천북면 장은리 천북굴단지,
향토집 055-645-4808 경남 통영시 무전동,
향토집 062-278-1330 전남 목포시 옥암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