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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때 만들어진 '한글 돋움체' 금속활자 인공지능으로 복원"

*바다향 2020. 10. 7. 23:13

정재영·최강선 교수팀 발표
"석보상절·월인천강지곡 이용해
중복 글자 하나로 맞춰 3D스캔"
'4만1000여자' 활자수 집계 성과

 

<월인천강지곡>(위 사진)과 <석보상절>. 세종은 천(·) 지(ㅡ) 인(ㅣ)의 원리와 발성기관의 모양에 따라 창제했다. 점(·)과 선(ㅡㅣ)으로만 한글을 만들었으므로 붓글씨 시대였던 당대에 돋움체(고딕체)를 창안할 수 있었다. 한국기술교육대 연구팀은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 간행 당시 사용했을 한글 금속활자를 복원했다. 한국기술교육대 연구팀 제공·한국학중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석보상절>(보물 제523호)은 1447년(세종 29년) 세종이 수양대군(1417~1468)을 시켜 편찬하고 훈민정음으로 번역한 석가모니의 일대기이다.

죽은 부인(소헌왕후·1395~1446)의 명복을 빌기 위한 편찬사업이었다.

세종은 이 <석보상절>을 읽고 찬불가 583곡을 훈민정음으로 손수 지었다.

<월인천강지곡>(국보 제320호)이다.

 

세종은 1434년(세종 16년) 개발한 갑인자(한자 활자)와 함께 이 두 책을 위해 특별히 주조한 한글 금속활자를 조판해서 간행했다. 하지만 이때 주조한 한글 활자는 전해지는 것이 없다.

그런데 570여년 전 세종대왕이 주조한 최초의 한글 금속활자를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분석·복원하는 기법이 처음 시도됐다.

 

정재영·최강선 한국기술교육대 연구팀은 “4개월 동안 인공지능 기술로 활자본으로 남아있는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분석한 뒤 세종 당시 한글 금속활자를 복원하는 과정을 개발했다”고 7일 밝혔다.

정재영·최강선 교수팀은 8일 충북 청주 고인쇄박물관이 개최한 ‘세종의 마음을 찍다’ 특별전 개막에 맞춰 박물관에서 열리는 토크 콘서트에서 개발 내용을 발표하고 3D 기술로 복원한 한글 금속활자 8자(‘월’ ‘인’ ‘천’ ‘강’ ‘지’ ‘곡’ ‘니’ ‘텬’)를 공개한다.

 

연구팀이 대상으로 삼은 데이터는 <석보상절> 13권(126쪽)과 19권(85쪽·이상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월인천강지곡 권상>(142쪽·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이다.

연구팀은 그중 11개쪽(<석보상절>)과 18개쪽(<월인천강지곡>)을 골라 컴퓨터 조작을 통해 1만3310개와 9504개의 학습데이터로 증폭시킨 뒤 이를 딥러닝 자료로 썼다.

최강선 교수는 “이후 90% 이상 겹치는 글자를 동일활자로 추정한 뒤 하나의 활자로 맞추고 이를 3D스캔으로 복원했다”고 소개했다.

 

정재영 교수는 “특히 세종이 붓글씨만이 존재했던 당대에 ‘돋움체(고딕체)’ 한글을 창안한 것에 새삼 감탄했다”고 전한다. 이른바 ‘돋움체’는 ‘획의 삐침이 없는 글씨체’를 뜻한다.

‘고딕체’라고도 하는 이 글씨체는 서양에서 그 기원과 관련해서 여러가지 설들이 있지만 18~19세기 사이에 유행한 글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보다 300~400년 전 조선 세종이 다양한 획과 굵기로 쓰는 한자 붓글씨 사회에서 점과 선만을 이용한 ‘돋움체’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이다.

정재영 교수는 그것을 훈민정음 창제 원리와 연결짓는다.

 

즉 세종은 첫음(자음)은 발성기관의 모양을 본떴고, 가운뎃소리(모음)는 하늘(·)과 땅(ㅡ), 사람(ㅣ)을 뜻하는 천(·)지(ㅡ)인(ㅣ)을 바탕으로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발성기관과 자연의 섭리를 담은 천지인을 떠올려 가장 간단한 점(·)과 선(ㅡㅣ)만으로 표현냈는데, 어떻게 흘림이나 삐침을 허용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간단하지만 심오한 뜻을 품고 있는 ‘돋움체’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으로 복원해본 훈민정음 창제 초기의 한글활자. 1447년(세종 29년) 무렵 한자 활자(갑인자)와 함께 막 창제한 한글의 동활자로 찍어낸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토대로 복원해봤다. | 한국기술교육대 연구팀 제공

 

정 교수는 또 “인공지능을 통해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 등의 각 1권에 쓰인 활자수를 집계한 결과도 의미심장하다”고 전했다.

즉 인공지능이 계산한 두 책의 글자수는 1만1874자(<월인천강지곡> 권상)와 1만7402자(<석보상절> 권13), 1만1974자(<석보상절> 권19) 등이었다.

 

특히 <월인천강지곡>의 경우 ‘큰 글자(大字)’가 9988자로 계산됐다.

<월인천강지곡>은 ‘큰 글자’의 한글을 먼저 배치하고 그다음에 그 한글 글자에 관련된 한자를 ‘작은 글자(小字)’의 한자로 토를 다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월인천강지곡>에 나오는 ‘큰 글자’ 9988자는 모두 한글일 수밖에 없다.

물론 그중 중복되는 글자가 있어서 주조된 한글 활자가 정확히 얼마만큼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현대국어에서도 표현될 수 있는 한글 글자가 2350~1만1172자라 한다.

한문은 최소 5만자가 넘는다.

그렇다면 지금은 쓰이지 않는 고어(古語)와 한자를 섞어 써야 했던 초창기 세종 시대에는 얼마나 많은 수의 한글과 한자 활자가 필요했을까.

 

정재영 교수는 “새롭게 창제된 한글 활자와 한자 활자를 주조하는 세종대왕과 활자개발 실무자인 이천(1376~1451) 등의 분투를 느낄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