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우리도 사과해야될 나라가 있다

*바다향 2010. 11. 18. 00:43

 

<알포인트>라는 호러 영화인데 배경이 특이하게도 베트남이었다.

‘왜 하필 베트남일까?’라는 의문을 떨치지 못한 채 영화관에 즉흥적으로 들어섰던 기억이 난다.

‘하늘소…하늘소…우리는 다 죽어간다…’ 유령인지 모를 군인의 괴괴한 무전음성이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고 있는데,

영화를 관람한 이후에도 유혹적 호기심을 부추기는 절규에 가까운 그 음성은 해가 바뀌도록 내 귓전을 떠나지 않았다.

<알포인트>는 무섭다기 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씁쓸함을 자아내는 영화였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는지 무척 궁금했고, <알포인트>를 중요하게 다룬 영화전문잡지를 하나 둘 사서 읽어 보기 시작했다.

나는 거기서 낯설고도 불편한 단어를 발견했다. ‘학살’

 

낯설고도 불편한 단어 ‘학살’

 

한국군이 베트남전에 참전했다는 사실은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하는 것에 우리 모두가 분개하듯,

베트남인들도 우리의 베트남전 전사자 추모에 대해 충분히 분개할 수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몰랐다. 한국이 왜 베트남전에 참전했는지,

거기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도대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국군이 학살을 했다고 한다. 

도통 무슨 소리인지 몰라 잡지들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는지 모른다.

학살이라니. 우리도 가해자일 수가 있단 말인가.

한국은 늘 외세에 치이고 살아왔다고 배운 내게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내용이었다.

한국군이 베트남에 가한 폭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베트남 중부 총 5개 성에서 발생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은

비공식적으로 집계된 것만 80여건, 피해자수는 무려 9,000여명에 이른다.

방법 또한 잔인했다.

“곧 있으니 남조선 군인들이 들이닥치더군.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으더니, 총으로 쏘아죽이기도 하고 칼로 찌르기도 했어. 독약을 먹이기도 했지.”

 

호지에우 할아버지(87세․당시 45세)는 한국의 한 언론과(오마이뉴스)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참극을 생생하게 전했다.

호지에우 할아버지가 말한 그날의 참상이 바로 ‘고자이 학살’ 이다.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마을 중앙에 위치한 커다란 위령탑에는

‘1966년 2월 26일 남조선군이 미국의 명령 아래 380명의 무고한 인민을 살해했다’ 는 글귀가 선명하다.

 

한국정부는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저지른 양민학살에 대해 사과는 커녕 공식적인 조사조차 벌인 적이 없다고 한다.

양민학살에 대한 베트남 피해자의 증언은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으나 요지부동이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는 기묘한 형국이 되고 만 것이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지 않은가?

그렇다.

이웃나라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식민지 시절의 만행을 두고 거들떠보지 않고 있는 것과

지금의 상황은 놀라우리만치 흡사하다.

우리가 그 일본의 뻔뻔스러움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곧 있으면 4월 30일이다.

이날은 베트남이 30년 전쟁 끝에 통일을 이룩한 날이다.

올해로 32주년.

그러나 우리에게 아직 베트남전은 끝나지 않았다.

그들의 피맺힌 한을 끝내 외면한다면 일본에 위안부 문제를 당당히 따질 수 있는 우리의 자격은 묘하게 틀어지기 때문이다.

일본 전쟁 책임문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고 있는 일본인 철학자 다카하시 데쓰야의 “한국은 (베트남에게) 뭐했나?” 는 지적은 우리에게 견디기 어려운 ‘일침’이 되고 있다.

일본과 한국의 다른점이라고 보면 적어도 한국은 대통령이 베트남 방문시 미안하다 사죄한다는 말은 한다 ( 故노무현 , 故김대중  전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