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나는 유럽 지도를 펼쳐 놓고 고민 중이었다.
단 한 나라를 가야 한다면 어디를 가고 싶은가.
지난 슬로바키아 여행 후 유럽에 대한 나의 관심은 동진東進 중이었다.
유럽과 아시아와 중동, 흑해와 카스피해, 3개의 문화와 2개의 바다에 끼인 작은 나라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낯선 이름은 조지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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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한 번도 조지아Georgia를 여행했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루지야라고 불렸던 나라.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독립한 신생국.
8,000년 넘게 전통 방식으로 와인을 만드는 나라.
180만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코카서스 산맥의 남쪽 땅.
터키항공을 타고 이스탄불을 경유하여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 도착할 때까지 내가 손에 쥔 것은 몇 개의 파편적인 지식과
엉성한 추측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조지아의 첫인상은 무척 엉뚱했다.
도착한 첫날 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훤한 현대식 유리 건물 하나가 시선을 끌었다.
좀 전에 첫인사를 나눈 가이드 마야가 ‘뭐하는 곳일까요?’라고 물었다. ‘혹시 경찰서인가요?’라고 되물으니 그러하단다.
비행기 안에서 급하게 넘겨 본 책에 따르면 조지아 어디를 가도 환하게 빛나는 유리 건물은 모두 경찰서라더니 정말 그랬다.
현대화된 경찰서의 화려한 불빛은 역설적이게도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다.
이제 고작 29살이라는 마야는 “여렸을 때만 해도 집 밖을 나서면 살아 돌아올 확률이 반반이었다”고 회상했다.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이후 1991년에 조지아는 독립을 쟁취했지만 뿌리 깊은 부정부패로 경제는 피폐했고 치안도 불안했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조지아의 경찰은 그 어떤 나라의 경찰 조직보다 깨끗하단다.
2003년 장미혁명* 이후 새 정부가 기존의 경찰 조직을 하루아침에 해체해 버리고 수천명의 경찰 전원을 다시 선발하고 교육한 결과다.*
조지아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을 적극 개방하고 주변국과 평화롭게 공존하며 자생력을 키워 가고 있다.
트빌리시 혁명의 광장에 느닷없이 들어서서 논란의 대상이 됐던 래디슨 블루 호텔 이후 도심에서는 메리어트 계열, 홀리데이인 계열의 국제적인 체인 호텔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과 다르게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도 많고 카지노 옆에는 24시간 문을 여는 은행도 있다.
도시마다 자국민의 민원을 처리하는 관공서 건물House of Justice을 최신식으로 건축하며 편의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그루지야는 그만 잊어 달라고.
“그루지야는 러시아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에요. 뚱뚱한 사람, 무뚝뚝한 사람이라는 뜻이죠.” 비하의 뜻이 있었던 것이다.
조지아는 1918년 러시아 제국이 망한 뒤 잠시 조지아 민주 공화국으로 독립했었지만 오래 가지 못하고 1922년 소비에트 연방에
합병됐다. 다시 독립하여 이름을 되찾기까지 70년이 걸렸다.
조지아는 그루지야의 영어식 이름*이고, 사실 조지아인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말은 따로 있다. ‘사카르트벨로საქართველო’다.
어렵지만 외워 둔다면 조지아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 마법의 단어다.
‘코리안’ 대신 ‘한국사람’이라고 말하는 외국인을 만난다고 상상해 보라. 얼마나 기특할지.
*장미혁명Revolution of Roses | 2003년 11월 조지아에서 일어난 무혈혁명. 1995년부터 통치하던 에두아르트 세바르드나제
대통령을 퇴진시키고 시의회 의장이었던 미하일 샤카슈빌리가 조지아의 새로운 지도자가 됐다.
*조지아 경찰 개혁 | 장미혁명으로 집권한 샤카슈빌리 정부는 부패의 대명사였던 경찰 조직을 하루아침에 해체해 버리고, 수천명의
경찰관 전원을 새로 선발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부정행위에 눈을 돌릴 필요가 없을 만큼 월급도 파격적으로 인상했다.
덕분에 경찰은 조지아 처녀들에게 1등 신랑후보감이다.
*조지아 | 그리스어로 ‘농부’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 ‘게오르기오스’나 기독교 성인 게오르기우스(조지)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성 조지와 성 니노는 조지아의 수호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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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ilisi 트빌리시
유럽과 페르시아의 크로스오버
트빌리시는 ‘재즈’다. 러시아 고전주의, 아르누보, 소비에트 양식, 현대 건축물이 공존하며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 도시가 보여 줄 수 있는 ‘다양함’의 극단적인 사례이자모던과 클래식의 과격한 조화를 보여 준다.
경이로운 공존의 도시
“트빌리시는 37번 공격을 당했고 37번 재건된 도시랍니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 나는 곧 쓰러질 듯 낡은 주택과 그 안에서 불쑥 고개를 내미는 노인들의 얼굴을 연민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마야의 한마디는 그 감정을 순간 경외심으로 바꾸어 놓았다.
마야는 굳이 숨겨야 할 초라함이 아니라 조지아의 맨얼굴이라고 했다.
수많은 외침과 전쟁을 겪은 1,500년 역사의 고도古都 트빌리시에는 역사의 단층들이 생생했다.
중세시대 카라반사라이*가 남아 있는가 하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얼굴을 한 여인들이 기도에 열중해 있던 교회에서 5분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유럽풍 노천카페와 레스토랑 거리가 있다.
강변에는 이탈리아 건축가 미켈레 데 루치가 디자인한 평화의 다리가 밤마다 1,200여 개의 LED 전구를 빛내며 당당한 랜드마크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 모습을 넓은 화각으로 볼 수 있는 곳이 메테키 교회Metekhi Church 앞 언덕이다.
메테키 교회는 소비에트 시절 감옥, 극장 등으로 사용되었다가 1980년에 이르러서야 교회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었던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병자를 낫게 해 준다는 이야기 때문에 지금도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언덕에 서서 가만히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기마상의 주인공이 1,500년 전 트빌리시로 수도를 옮긴 바흐탕 고르가살리왕King
Vakhtang Gorgasali이다.
어느날 그의 사냥매가 꿩을 잡았으나 두 새가 함께 온천수에 빠져죽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왕은 이 사건으로 트빌리시 천도를
결심했다고...
무려 180만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트빌리시는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다.
그 중심을 므츠바리Mtkvari강(쿠라Kura강이라고도 부른다)이 흐르며 도시를 가르고 있다.
빠른 유속의 강물 때문인지 도시의 느낌도 정적이지 않았다.
항상 교통체증과 주차를 걱정해야 할 만큼 북적였다.
라벤더가 가득 핀 리케 공원Rike Park도 좋지만 2라리만 지불하면 케이블카를 타고 나리칼라 요새Narikala Fortress에 올라가 더
넓게 도시를 조망할 수도 있다.
트빌리시는 소비에트에서 독립한 국가 중 처음으로 지하철을 구축했고 지금도 확장을 계속하고 있다.
교통 체증을 생각하면 여행자에게 가장 좋은 숙소의 위치는 구도심의 호텔이지만, 목 좋은 숙소들은 대부분 러시아 여행객들의
몫이다.
연방 시절의 향수를 곁들인 러시아 여행자들이 코카서스를 넘어 끊임없이 찾아오는 것과 반대로 조지아인들의 러시아 여행은
흔한 일이 아니란다. 비자 발급이 어렵기 때문이다.
가파른 길을 따라 요새에서 내려오면 국립 보태니컬 가든과 폭포수가 흐르는 계곡 그리고 온천지대가 펼쳐진다.
트빌리시는 역대 지배자와 푸시킨* 등 러시아의 저명인사들이 편애한 온천휴양지였다.
원천지역인 아바노투바니Abanotubani 지역에는 지금도 하맘 양식의 온천욕탕들이 성업 중이다.
터키탕을 연상하면 이해가 쉬운데 입욕료는 1만~1만2,000원 사이고, 전세탕으로 빌려도 1시간에 4만원 정도로 저렴하다.
저렴한 트빌리시의 물가를 다시 실감했다.
사실 조지아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300달러 수준이다. 넉넉하지 않지만 초라하거나 편협하지 않다.
마지막 밤에 푸니쿨라를 타고 TV 통신타워가 있는 므타츠민다 공원Mtatsminda Park에 올라갔다.
그곳에서 소비에트 시절부터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푸니쿨라 컴플렉스는 트빌리시 시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조망 장소다.
3층짜리 이 건물에는 레스토랑과 카페, 바 등이 입점해 있다.
조지아를 내어주기 싫었던 러시아인들의 입장이 이해될 만큼 트빌리시는 매력적인 도시였다.
*카라반사라이 | 실크로드를 지나던 대상들의 숙박시설이다.
*푸시킨 | 그는 조지아의 온천을 ‘생애 최고의 온천’이라고 말했다.
생전에 캅카스코카서스의 러시아식 표현를 두 번 여행했고 ‘캅카스의 포로’, ‘카즈베크의 수도원’ 등 관련된 작품들을 다수 남겼다.
트빌리시 구도심을 걷다가 가브리아제 극장 앞에서 그 주인공인 레바즈 가브리아제Revaz Gabriadze 선생을 조우했다.
극장가, 무대연출가, 화가, 조각가이자 조지아 최초의 인형극장을 오픈한 살아 있는 전설이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여든1936년생의 아티스트는 사진 촬영에 흔쾌히 응해 주었지만 인터뷰를 할 만큼의 기력은 없었다.
뒤에 있는 시계탑도 그의 작품이다.
●슬픈 기도는 힘이 세다
조지아 정교회는 슬픔의 교회다. 그래서인지 교회에 들어설 때마다 애잔함이 나를 감싸는 것 같았다.
역사를 알수록, 사람들을 알아 갈수록 더 그랬다. 6세기에 건립된 안치스하티 성당Anchiskhati Church은 마치 시간이 멈춘 장소
같았다.
장례식을 치르듯 비통한 표정의 여인들은 긴 시간 동안 서서 기도를 바치곤 했다.
인간의 죄를 대신해 고통 받았던 예수의 삶에 신앙의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보통 기쁘게 경축하는 부활절조차도 이들은 가장 경건하게 보내야 하는 날이다.
작은 촛불과 최소한의 조명으로 간신히 어둠을 물리치고 있는 교회 내부에는 그 흔한 성상 하나 없고, 쉬어 갈 의자 하나도 없다.
오로지 성화Icon, 아이콘만을 사용하고 서서 예배를 드린다.
작은 촛불 하나로 마음속에 불을 켜두는 사람들. 그들의 슬픈 기도는 그 어떤 기도보다 경건했고, 간절했다.
●조지안 레스토랑
그냥 지나치면 안 되는 방앗간
찌스크빌리Tsiskvili
찌스크빌리, 이름 그대로 트빌리시 최초의 물레방앗간으로 1988년 문을 열었다가 2002년부터 레스토랑으로 운영되고 있다.
므츠바리 강변에 위치한 많은 고급 레스토랑 중에서도 분위기, 음식, 서비스, 전통 공연 등 모든 면에서 최고라는 찬사를 듣는
곳이다.
실제로 트빌리시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여러 경연대회에서 수상을 한 곳이다.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내장으로 속을 채운 소시지나 족발 요리 등도 입맛에 잘 맞는다.
찌스크빌리는 부지가 넓어서 야외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정원과 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2층 공간의 레스토랑, 그리고 대형
연회장과 8개의 독립된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경에 신경을 많이 쓴 정원과 강으로 흘러내리는 폭포수, 승강기를 대신하는 미니 푸니쿨라 등도 운영하고 있으며 방앗간 시절
사용했던 소품들도 전시하고 있다.
드레스 코드가 있으니 지나친 캐주얼 차림은 피하는 것이 좋다.
Beliashvili St. Right Cots of River Mtkvari, Tbilisi, Georgia +995 32 253 07 97 www.info-tbilisi.com/tsiskvili
조지아 전통 공연 | 찌스크빌리에서 처음 접한 조지아 전통 댄스는 힘이 넘쳤다.
토슈즈 없이도 여자들은 발레보다 우아한 동작을 선보였고, 남자들의 회전동작은 빠르면서도 정확했다.
고대부터 전해진 조지아 폴리포니Polyphony, 다성음악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조지아인들은 일할 때 뿐 아니라 질병을 치료할 때도 민요를 불렀다.
19세기 요리법을 복원하는
바르바레스탄 레스토랑Barbarestan
이 레스토랑은 우연히 벼룩시장에서 발견한 요리책 한 권에서 시작됐다.
19세기에 바바레Barbare Jorjadze라는 귀족 가문의 여성이 작성한 이 책을 바탕으로 복원한 조지안 전통 요리들을 테이블에서
만날 수 있다.
요리법뿐 아니라 ‘끓인 버터’처럼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재료들까지 수소문해 어렵게 구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오픈한 지 5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정통 조지안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이미 입소문이 났다.
이 어려운 작업을 해내고 있는 셰프 레빈Levan Kokiashvili씨는 지난 5월 조지아를 대표하는 요리사로 한국의 요리행사에 초청
받기도 했다.
식사 공간으로도 사용되는 지하의 꺄브에는 소량만 생산되어 조지아 내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프리미엄 와인들이 전시되어 있고,
구입도 할 수 있다.
D. Aghmashenebeli Ave. 132, Tbilisi 0112, Georgia +995 322 94 37 79
조지아 음식의 탄탄한 기본기
브레드하우스Bread House Tbilisi 올드타운에서 므츠바리강 너머 메테키 교회를 바라보며 조지안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
2층짜리 벽돌 건물 내부에는 격식 있는 모임을 위한 단체석이 있으며 저녁에는 야외 좌석에서 와인을 즐기기에도 좋다.
브레드하우스라는 이름답게 화덕에서 직접 빵을 구워 내는 과정도 볼 수 있다.
7 Gorgasali st. Tbilisi Georgia +995 32 30 30 30
코카서스의 숨겨진 왕국 조지아Georgia②크베브리 와인, 조지아의 태양을 마시다
●Qvevri Wine 크베브리 와인
조지아의 태양을 마시다
가슴이 콩닥거렸다. 8,000년 동안 같은 방식*으로 와인을 만들고 있는 나라.
선사시대의 와인은 도대체 어떤 빛깔이고, 어떤 맛인지 궁금해 조지아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통 방식으로 생산된 페즌트 티어스 와이너리의 레드 와인들
숭배에 가까운 와인 예찬
수도 트빌리시를 벗어나 2시간 반 만에 와인재배지역으로 유명한 조지아 동부의 카헤티Kakheti에 도착했다.
해발 1,900m 고지를 넘어 카헤티로 가는 동안 내내 경치에 흥분하느라 도착할 때 즈음에는 허기가 절정에 달해 있었다.
나파레울리Napareuli에 있는 트윈스 와인 셀러에 도착하니 대형 크베브리Qvevri, 항아리가 먼저 시선을 끌었다.
와인을 숙성시키는 용기인 크베브리 내부를 경험할 수 있도록 확대하여 만든 것이다.
와인의 역사를 8,000년 이상으로 추정하는 이유도 조지아에서 발견된 크베브리 토기 유물의 연대가 그 당시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조지아 와인을 만났다.
작은 유리병 몇 개에 담겨 나온 레드와인, 화이트와인에 손을 대려 하자 가이드 마야가 단호하게 제지했다.
술자리에 두 사람 이상만 모여도 건배제안자Toastmaster인‘타마다Tamada’*가 있어야 한다더니, 스스로 타마다로 나선 모양이다.
건배에도 순서가 있다.
가장 먼저 신께 감사하고, 두 번째는 평화를 기원하고, 세 번째는 가정을 위해 건배하는 식인데, 웨딩 등의 기쁜 일에는 이 건배가
26번씩 이어지고, 슬픈 일 때문에 모였다면 18번 정도로 횟수가 좀 줄어든다고 했다.
술을 즐기되, 취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도 조지아 술문화의 불문율이다.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고 싶다면 타마다에게 말해 일종의 벌주를 마셔야 하는데 이때 사용하는 잔이 바로 염소뿔로 만든 칸씨Khantsi다. 끝이 뾰족하므로 세워지지 않고 반드시 원샷을 해야 하는 잔이다.
조지아의 어디를 가도 기념품점에서 이 잔을 발견할 수 있다.
마야의 조지아 와인 예찬은 점심시간 내내 이어졌다.
“사실 와인 때문에 조지아는 너무 느려요. 하지만 와인은 신이 주신 것이죠. 우리는 언어뿐 아니라 와인으로도 감정을 나눠요.”
그래서 와인양조자의 심리상태가 와인에 그대로 반영된다고 믿는다.
만약 어떤 와인을 마시고 화가 났다면 양조자가 행복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기분이 좋아졌다면 그가 행복한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도 전해진다.
어느날 하느님이 민족마다 나라를 세울 적합한 땅을 나눠 주기로 결정하고 소집령을 내렸단다. 하지만 조지아 민족들은 와인을
마시느라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 지각에 화가 난 신이 이유를 묻자 조지아 민족은 ‘와인을 마시며 하느님에 대해 길게 이야기
하느라 늦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이야기에 마음이 누그러진 하느님은 조지아에게 아주 작은 땅을 분할해 주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 땅은 하느님이 자신을 위해 남겨두었던 몫으로, 천국과 가장 흡사한 땅이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와인의 발상지인 조지아에서 와인은 신이 내린 선물이자 숭배의 대상이고,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다.
오죽하면 소비에트 시절 러시아인들이 조지아 정교회를 탄압하는 것뿐 아니라 포도나무까지 잘라 버렸겠는가.
트윈스 와인 셀러의 와인 라벨에는 이런 말이 써 있다. “크베브리를 여는 순간은 태양이 떠오르는 것과 같다”고.
그래서 와인 맛이 어땠냐고? 마셔 본 모든 조지아 와인이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 와인을 마시는 동안 우리는 대체로 행복하고
흥겨워졌었다. 처음 와인이 만들어졌던 시대, 문명 이전에 누렸던 원초적인 행복에 가까워지는 듯했다.
물론 마실수록 그 맛에 익숙해진 영향도 있을 것이고 조지아의 와인에 녹아든 사람들의 성품에 반해 버린 탓도 있을 것이다.
조지아 와인은 무뚝뚝해 보이지만 강직하고 속정 깊은 이곳 사람을 분명히 닮았다.
*조지아 전통 와인 제조법 | 놀라운 점은 조지아 와인이 지금도 아무런 인공 첨가물 없이 8,000년 전의 방법으로 생산된다는 것이다. 포도를 토기에 넣고 뚜껑을 덮어 밀랍으로 밀봉한 뒤 6개월 정도 숙성시킨 뒤 개봉한다.
크베브리 와인의 생명은 박테리아 관리에 있다.
그를 위해서 세척 과정에서 체리나무껍질로 만든 수세미만 사용하고, 와인을 떠내는 도구로는 표주박만을 사용한다.
*조지아 와인 품종 | 조지아에는 560가지 이상의 다양한 와인 품종이 있다.
3km마다 기후가 달라진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미세기후 때문에 같은 품종이라도 재배 지역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레드 와인 품종 사페라비Saperavi는 드라이한 편이다.
와인을 가열해 만든 전통 증류수로는 차차Chacha도 유명하다. 45~85도로 독하다.
*타마다Tamada | 타마다는 연회의 주최자가 아니다. 위트와 센스가 넘치고 잘 생기고 모두의 호감을 사는 인물이어야 한다.
오직 타마다만이 건배를 제의할 수 있으니 언변이 좋아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트빌리시 구도심 거리에서 술잔을 들고 있는 타마다 동상이 있는데, 결코 잘 생긴 얼굴은 아니다.
●조지안 와이너리
크베브리 와인에 대한 모든 것
트윈스 와인 셀러Twins Wine Cellar
지아Gia와 겔라Gala, 두 쌍둥이 형제가 1994년 나파레울리Napareuli에 설립한 현대적인 와이너리. 대형 크베브리를 제작하여
와인 항아리 내부를 체험하게 하는 등 조지아 전통 와인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107개의 크베브리를 보유해 연간 30만병 이상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으며 식사와 숙박도 제공한다.
방문자들은 포도 수확이나 와인 담그기 체험도 가능하다.
시간이 없다면 야외 테라스에서 포도밭을 바라보며 즐기는 여유로운 오찬을 추천한다.
Telavi District 2211 Napareuli, Georgia +995 32 242 40 42 www.facebook.com/TwinsWineCellar (페이스북)
전통음악에서 와인까지
꿩의 눈물Pheasant’s Tears
페즌트 티어스는 시그나기에서 가장 유명한 와이너리 겸 레스토랑이다.
조지아인이 아니라 외국인이 운영하는 조지아 와이너리로도 유명하다.
미국인 화가인 존은 15년 전 실수로 구입한 조지아 민속음악 CD에 반해 이 나라를 처음 방문했고, 이제는 음악뿐 아니라 와인에도
푹 빠져 시그나기에 정착해 살고 있다.
300년 낡은 가옥을 개조한 레스토랑은 운치가 가득하다. 유창한 영어로 조지아 와인의 역사나 판매 중인 와인의 맛을 설명해 주는
것도 장점. 이름은 ‘최고의 와인만이 꿩에게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다’는 조지아 전설에서 따온 것이다.
18 Baratashvili Street. Sighnaghi, Georgia 4200 +995 899 53 44 84 www.pheasantstears.com
세계가 인정한 치누리 와인
라고스 와인Lago’s Wine
요즘 국제적으로 좋은 품평을 얻고 있는 라고스 와인은 수백년간 와인을 생산해 온 가문의 대를 이어 30년 전부터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는 라고씨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든 작품들이다.
연간 생산량이 5,000여 병밖에 되지 않아서 런던의 최고급 호텔인 리츠 호텔 등에만 소량 납품된다.
대표 와인은 카틀리 지역에서 생산되는 치누리 품종으로 만든 화이트와인이다.
식당 옆 건물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크베브리들을 볼 수 있는데 오래된 것은 300년이 넘었다.
점심 식사를 시작하려고 하자 라고의 아내가 나서서 염소뿔잔에 와인을 채우고 러브샷을 권한다.
라고스 와이너리는 사실 한시절 취해서 놀기에 딱 좋은 소박한 전원주택이다.
Chardakhi, Mtskheta 3318, Georgia +995 593 35 24 26
조지아 최고最古의 와이너리
치난달리 뮤지엄Tsinanali Museum
조지아 와인을 병에 담아 운반하게 된 역사는 길지 않다.
러시아에서 서양식 병입법을 배워서 조지아 와인을 운송할 수 있게 기여한 사람이 바로 알렉산더 챠브챠바드제Alexander Chavc
havadze, 1786~1846년다.
1835년에 만든 그의 집은 1947년부터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당시 귀족의 화려한 생활모습과 함께 조지아 예술가들의 예술작품, 와인
관련 유물들을 보여 주고 있다.
조지아 최초로 유럽형 조경을 도입한 그의 정원에는 미로 한가운데 소원쪽지를 매달아 놓은 소망나무도 있다.
지하 와인 저장고에는 1839년에 생산된 사페라비 와인을 포함해 1만6,500여 병의 와인이 저장되어 있으며 테이스팅도 가능하다.
Tsinandali village, Georgia 성인 5GEL 와인 테이스팅 7GEL 10:00~19:00(내부촬영 금지)
코카서스의 숨겨진 왕국 조지아Georgia③시그나기, 므츠헤타
●나의 사랑스러운 도피처, 시그나기Sighnaghi
조지아 정부가 ‘사랑의 도시’라고 홍보하는 곳이다.
실제로 정말 작아서 인구 3,000명에 불과한 시그나기는 18세기에 에레클 2세Erekle Ⅱ의 명령으로 축조된 4km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성벽을 따라 산책에 나서면 해발 800m에 위치한 마을 아래로 알라자니 계곡Alazani Valley 너머로 펼쳐진 코카서스 산맥의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성벽에는 원래 23개의 타워가 있었고, 각각 인근 마을의 이름을 따서 페르시아 등이 침략해 왔을 때 피난처로 제공되었다고 한다.
시그나기란 이름도 터키어로 피난처를 뜻하는 시그낙Sığnak이란 단어에서 왔다.
그런 포용력 때문에 사랑의 도시인가 했더니, 시그나기는 누구나 쉽게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도시, 말하자면 조지아의 라스베이거스
인 셈이다.
새벽 3시에도 주례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싸고 풍부한 와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방인의 첫 눈에도 시그나기는 한동안 머물러 살아 보고 싶은 사랑스러운 동네였다.
골목마다 17~19세기에 축조된 전통가옥을 개조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와 전망 좋은 레스토랑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이면 골목에 나와 앉아 양털로 짠 모자와 양말 등을 판매하는 할머니도, 말을 한번 타 보라며 호객하는
동네 청년까지 그 이름을 다 알게 되고, 어쩌면 결혼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도시가 바로 시그나기다.
●Mtskheta 므츠헤타
역사와 종교가 합류하는 곳
조지아의 역사는 무수히 합류와 분류를 거듭하지만 결국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강물을 닮았다.
고갈되지 않을 수 있었던 정신의 샘은 조지아 정교회였고, 므츠헤타는 그 오래된 샘터다.
왕들의 무덤 위에서
‘잠깐만요!’ 사진가의 외침에 차가 섰다. 굳이 설명해 주지 않아도 ‘여기다!’는 감이 온 모양이다.
그 길의 끝에 즈바리 수도원Jvari Monastery이 서 있었다. 저절로 카메라에 손이 갔다.
걸음을 재촉해 주차된 차들과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을 지나 언덕을 올라갔지만 얼른 수도원 안으로 들어가지지 않았던 것은
예상치 못했던 아랫마을의 풍경 때문이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므츠바리 마을이 거기에 있었다. 또 한 번 카메라에 손이 갔다.
3,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도시는 므츠바리Mtkvari와 아라크비Aragvi, 두 개의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를 잡았다.
그 사실을 증명하려는 듯 두 줄기의 강물은 색이 확연히 달랐다.
이베리아Iberia 왕국BC3세기~AD5세기의 수도였으며 고대 무역로가 지나갔던 흔적들도 종종 유물로 발견된다.
5세기에 조지아의 수도는 트빌리시로 이전됐지만 므츠헤타는 여전히 조지아 정교회의 수도다.
마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건물이 대주교좌 성당이자 조지아 정교회 본산인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Svetitskhoveli Catherdral이다.
조지아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것은 AD 337년의 일이다.
로마의 기독교 공인313년 시기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때다.
당시 카파도키아의 왕실 공주였던 성녀 니노의 활발한 포교 활동 덕분이었다.
즈바리 수도원이 여느 교회와 다른 점은 중앙부에 서 있는 거대한 나무 십자가다.
당시 왕이었던 미리안Mirian은 원래 이교도 사원이 서 있던 마을 밖 언덕 위에 거대한 십자가를 세웠다.
기독교의 승리를 상징하는 일이었다.
그 인근에 작은 교회가 세워진 것이 545년, 십자가 위로 큰 성당이 지어진 것이 586~604년 사이의 일이다.
즈바리Jvari는 십자가라는 뜻. 1,500년이라는 세월을 견뎌 온 덕에 2004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지만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아서 한때는 위기에 처한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십자가는 복제품이지만 바위로 된 받침대는 당시의 것 그대로다.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이 조지아 최고의 성지인 이유는 예수의 튜닉Tunic*이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튜닉과 함께 묻혔다는 시도니아의 무덤이 성당 내부에 있고, 제대 가까운 쪽에는 에레클레 2세를 포함해 역대 왕들의 무덤이 있다.
이곳에서 대관식을 치루며 처음 왕관을 썼던 왕들은 연어처럼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서 영원히 잠들었다.
예언자 엘리야의 망토, 12제자 중 안드레아의 유골도 이곳에 묻혀 있다고 전해진다.
조지아 최대의 성지순례 장소답게 어김없이 전례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단체 관람객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었다.
현재의 십자가 돔 건물은 11세기에 재건된 것이지만 내부에는 5세기 바실리카의 기둥들이 남아 있어서 유구한 역사를 보여 준다.
또한 오스만투르크 군대가 침입했을 때 수도사들이 몰래 숨어 있었다는 벽 사이의 비밀 공간이나 탈출 통로로 사용했던 터널 등도
볼 수 있다.
덧칠을 벗겨내고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프레스코화 중에는 천국과 지옥의 위치가 뒤바뀌어 있는 등 의미가 잘 파악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 오랜 수수께끼다.
전해지는 모든 전설이 이해되거나 증명되지는 않지만, 왕들의 무덤 위에 서서 대대로 기도했던 모든 기원 덕에 교회는 무너지지 않았고, 조지아도 그러했던 것이 아닐까.
조지아 최대의 성지 옆에는 조지아 최대 규모(?)의 기념품 골목이 형성되어 있었다. 가격도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카페도 베이커리도, 숍도 예쁘다. 오직 한 사람, 공작새를 데리고 나와 기념사진 촬영을 강요하더니 한 장에 무려 5라리라며 뒤통수를
쳤던 아저씨만 밉상이었다.
*예수 튜닉과 기둥 | 튜닉Tunic은 소매가 없는 헐렁한 옷으로 로마시대에 속옷 겸 외투로도 널리 입었던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예수가 사형된 후 엘리야라는 남자가 예수의 튜닉을 구해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 튜닉을 전해 받은 여동생 시도니아는 너무 기쁜 나머지 그 자리에서 죽었고 손에서 튜닉이 떨어지지 않아 함께 묻어 주었다.
이후 그 무덤에서 거대한 나무가 자라났다.
시간이 지나 므츠헤타에 온 성녀 니노는 이교도의 사원이 있던 자리에 교회를 세우기로 결정하고 무덤의 나무를 잘라 7개의 기둥을
만들자, 기둥이 공중에 떠오르기도 하고 좋은 향기를 품으며 사람들을 치유케 하는 성유를 뿜기도 하는 등 기적이 일어났다.
지금 교회의 이름이 된 스베티츠호벨리는 ‘살아 있는 기둥’이라는 뜻이다.
코카서스의 숨겨진 왕국 조지아Georgia④스테판츠민다, 프로메테우스의 독수리가 찜한 땅
●Stepantsminda 스테판츠민다
프로메테우스의 독수리가 찜한 땅
종교 활동이 탄압받았던 소비에트 시절에도 스테판츠민다의 교회만큼은 피해가 없었다.
그 누구도 감히 손댈 수 없을 만큼 성스럽고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이었다.
희망의 등대에 오르다
캅카스, 카프카스, 카우카스, 코카시아는 다 같은 장소를 일컫는 말들이다.
가장 익숙한 이름은 코카서스Caucasus라는 영어식 표현일 것이다.
전설과 신화의 산이라 불리는 코카서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고도가 높아지는 만큼 창밖의 풍경도 다시 겨울로 변해 가고 있었다.
조지아와 러시아를 잇는 군사도로를 따라 달리는 것이니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해발 2,000m가 넘는 고개를 넘는 일은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헬리스키로 유명한 구다우리Gudauri를 지나서 러시아와의 국경이 멀지 않음을 알려 준 것은 조지아-소비에트의 우정을 기념해
만들었다는 모자이크 전망대였다.
모자이크 그림의 절반은 러시아, 나머지 절반은 조지아의 상징들을 담고 있다는데 실제 두 나라의 관계는 좋지 않다.
두 나라뿐 아니라 코카서스 3국과 터키의 관계는 모두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슬람 국가인 터키와 아제르바이잔, 정교회를 믿는 조지아와 아르메니안사도교회Armenian Apostolic Church를 믿는 아르메니아가
서로 국경을 포갠 채 영토 분쟁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조지아 정부의 주 수입원은 첫 번째가 운송, 두 번째는 관광, 세 번째가 보르조미 탄산수나 와인일 정도로 운송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많다.
주변국들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얻고 있는 어부지리다.
서로 우호적인 터키와 아제르바이잔, 러시아와 아르메니아 사이의 물자 수송이 오로지 조지아를 우회해야만 가능하기 때문.
정치적, 종교적 섬이 되어 버린 코카서스 남쪽 소국들의 슬픈 현재다.
실제로 도로 위에는 승용차보다 트럭이 더 많았다. 휴게소는 쾌적하고 휴게소 편의점이 도심의 마트만큼 크다.
해발 2,400m의 즈바리 패스Jvari Pass*를 절정으로 길은 다시 머리를 숙이더니 드디어 목적지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스테판츠민다Stepantsminda*에 도착하자 어스름이 가장 먼저 마중을 나왔다.
마을의 동쪽 언덕에 자리잡은 룸스 호텔은 최고의 전망을 선사했다.
해발 5,000m 설산을 배경으로 2,200m의 봉우리 위에 세워진 교회를 1,700m의 마을에서 바라보는 감동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스테판츠민다는 고립된 산골 마을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치규율이 필요했기에 각 지역마다 지도자를 선발해서 죄벌을 다스렸다고 한다.
폭설이 내리면 고립되기 일쑤라 집과 집 사이에 굴을 파서 이동했는데, 죄인들은 벌로 눈 터널 만들기에 동원됐다고 한다.
지금 스테판츠민다는 코카서스에 오르고자 하는 트레커들의 베이스캠프다.
몇 시간부터 며칠까지 코스는 다양하다.
산을 싫어해도 꼭 올라가야 하는 곳이 하나 있다면 게르게티 마을에 세워진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Gergeti Trinity Church다.
누가 2,170m 고지에 교회를 세울 생각을 했을까. 범인은 독수리였다.
고립된 지형 탓에 14세기에 이르러서야 기독교가 이 산골짜기에 전해졌다.
교회 부지는 독수리에게 쇠고기를 물려 주고 날아가 도착하는 장소로 결정했다.
그만큼 고립되고, 그만큼 안전한 장소였다. 침략시에 중요한 종교 유물을 이곳에 숨겨 놓기도 했었다.
새에게는 가뿐한 거리였겠지만 사람들에게는 2시간 가까이 걸리는 트레킹 코스, 혹은 30분간의 오프로드 주행이 필요하다.
마을의 모습은 안개에 가려 사라진 지 오래. 이미 천상에 오른 느낌이다.
사방에 둘러쳐진 코카서스의 산들은 하나하나가 신이다. 그중 가장 높은 봉우리가 바로 5,047m 높이의 카즈베기*다.
인간에게 불을 전해 준 벌로 독수리에게 심장을 쪼이게 된 프로메테우스의 전설이 이 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밤이면 재생되는 심장 때문에 형벌은 영원히 이어질 것 같았지만 독수리는 결국 헤라클라스에 의해 사살당했다고 한다.
밤이 되자 조명을 켠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는 마치 크리스마스 교회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빛은 마치 등대처럼 보였다. 모든 길 잃은 사람들을 향한 희망의 방향등처럼 보였다.
그날 밤 나는 규칙적인 심장의 박동 소리를 들으며 오랜만에 잘 잤던 것 같다.
다시 트빌리시로 돌아가는 길은 아쉬움이 길게 꼬리를 물었다.
코카서스의 설경이 아른아른,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잠시 만나 정든 여행지가 그럴진대, 피난민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스페판츠민다에서 코카서스 산맥을 따라 동쪽으로 가면 2개의 조지아-러시아 분쟁지가 있다.
조지아는 2008년 러시아와의 전투 이후 압하지야Abkhazia 자치공화국과 남오세티아South Ossetia 자치공화국의 독립을 두고
러시아와 갈등을 겪고 있다.
그로 인해 살 곳을 잃은 사람들이 이주한 대규모 피난민촌이 카즈베기를 오가는 길에 있다.
똑같은 모양의 집 수천 채가 바둑판처럼 늘어서 있었다.
최고 시설의 난민촌이라고 자랑할 만큼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지만 실향민의 가슴은 늘 허전할 수밖에. 이곳에도 여전히 희망의
등대가 필요하다.
* 즈바리 패스 | 예카테리나 대제가 러시아-그루지야 군사도로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 가장 높은 2,400m 지점에 십자가를
세웠기에 즈바리(십자가) 패스라고 불린다.
* 스테판츠민다 | 오랫동안 카즈베기Kazbegi라고 불렸던 마을은 ‘성 스테판’을 뜻하는 스테판츠민다로 이름을 바꿨다.
이곳에 은둔처를 두었던 조지아 정교회 신부의 이름을 딴 것인데, 지금은 그 위로 군사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 카즈베기 | 므킨바르츠베리Mkinvartsveri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빙하’를 뜻한다. 조지아에서 3번째로 높은 산이자 코카서스
산맥에서도 7번째로 높은 산이다.
코카서스의 숨겨진 왕국 조지아Georgia⑤보르조미, 차르가 사랑한 오아시스
●Borjomi 보르조미
차르가 사랑한 오아시스
몸에 좋다는 말에 조지아에 도착한 이후 내내 보르조미 탄산수를 고집했는데 막상, 그 원천이 샘솟는 보르조미에 도착하자
난감해졌다. 탄산수를 단 한 모금도 삼킬 수 없었다.
조지아식 잘 먹고 잘 사는 법
보르조미 탄산수는 조지아 최고의 효자 수출품목이다.
천연염기 성분 때문에 짭쪼롬한 맛이, 익숙한 탄산수와는 다른 느낌이지만 적응하면 꽤 매력적이다.
그리고 드디어 그 원천지인 보르조미에 도착했다.
지하 10km 밑에서 끌어올린다는 오리지널 보르조미 온천수를 맛볼 수 있다는 샘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건 상상했던 그 물이 아니었다.
60%가 넘는다는 미네랄 함량 때문인지 혀가 얼얼할 정도로 맛이 강하다. 삼키지 못하고 뱉었다.
이토록 혀에 쓴 것을 보니 정말 몸에 좋기는 좋은가 보다.
1,500년 이상 샘솟고 있는 보르조미 탄산수의 치유 효과는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검증되어 왔는데 이를 처음으로 대량 생산해
수출한 것은 200년 넘게 러시아 제국을 통치했던 로마노프 왕조1613~1917년의 후손들이었다.
아직도 로마노프가의 여름 궁전이 인근에 있다.
물은 포기하고 공기를 실컷 마시기로 했다.
탄산수가 솟아나는 곳은 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보르조미-하라가울리 국립공원Borjomi-Kharagauli National Park의 기슭이다.
총 700km2 크기의 공원은 해발 850~2,500m에 걸쳐 있으며 유네스코 자연유산이기도 하다.
침엽수와 활엽수가 함께 자라며 배출하는 산소의 특별한 효능 때문에 이곳에서 요양하면 모든 병이 낫는단다.
특히 호흡기 계통 질환에 좋다고 해서 방학 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장기 요양을 오는 부모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공원 초입은 아이들을 위한 놀이동산으로 꾸며져 있다.
놀이터도 있고, 바이킹 같은 놀이기구도 적잖이 눈에 띈다.
케이블카를 타고 언덕 위에 올라가 보르조미 마을을 내려다볼 수도 있다.
어른답게, 가벼운 트레킹에 나섰다. 목적지는 숲속 어딘가 있다는 온천풀장.
2km 정도의 계곡 트레킹에서 캠핑 중이었던 조지아 대학생들의 즉흥연주를 들을 기회도 있었고,
길 위로 흘러넘친 계곡 물을 건너는 작은 모험도 끼어들었다.
드디어 도착한 유황 온천 수영장은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지만 호젓한 분위기였다.
마을에 살면서 종종 수영을 즐기러 온다는 두 남자가 이미 큰 수영장을 선점하고 있었고 탈의실 문도 잠겨 있었다.
그렇다고 물러서지는 않았다.
구석에서 재빨리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38~41도를 유지한다는 미지근한 온천수에 몸은 담그니 올라온 보람이 느껴진다.
이런 산중에 온천탕 설치를 처음 지시했다는 러시아 차르가 고맙기까지 하다.
그래서 ‘차르의 유황온천’이라고 불리기도 한단다.
당시에는 러시아 귀족들에게만 허락된 호사였지만 지금은 모두에게 열려 있고 심지어 무료다.
보르조미는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였고, 모두 잘 쉬었다.
종종 보르조미를 ‘사막의 오아시스’라고 한다지만, 우리에게는 조지아 전체가 모두 오아시스였다.
이제 남은 일은 다시 트빌리시와 이스탄불을 거쳐 서울로 돌아가는 일뿐이었다.
여행이 끝날 때 즈음에야 겨우 2개의 조지아 단어를 외웠다.
까마르조바გამარჯობა는 ‘안녕하세요?’, 마들로바გმადლობთ는 ‘감사합니다’다.
조지아 문자를 두고 누군가가 ‘하트 뿅뽕’ 글자라고 했었다. 동의할 수밖에 없는 생김새다.
그 언어의 힘인지 돌아보면 조지아에 머물렀던 모든 순간 우리는 조지아에 ‘하트 뿅뿅’한 심정이었다.
30개국 이상을 여행했다는 사진가도 ‘조지아 최고’를 외쳤고, 내게도 조지아는 꼭 다시 가보고 싶은 나라가 됐다.
조지아는 슬프고, 아름답고, 건강했다.
●Hotels in Georgia
코카서스에서 가장 완벽한 방
룸스 호텔Rooms Hotel Kazbegi
와우!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 나온 첫 마디였다.
전면을 통유리로 처리한 호텔 전면의 풍경은 산골마을 스테판츠민다와 테르기강Tergi River 너머 병풍처럼 둘러쳐진 카즈베기산의
풍경을 파노라마로 담아내고 있었다.
체크인은 안중에도 없고 가방조차 내팽겨 둔 채 테라스로 나가 다하지 못한 감탄사들을 쏟아낸 후에야 정신이 들었다.
룸스 호텔은 산골마을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디자인 부티크 호텔이자 카즈베기 여행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호텔이다.
알고 보니 소비에트 연방 시절 국가 유공자들을 위한 리조트 시설을 재단장한 곳.
오래된 목재들을 재활용한 바닥은 조금 삐걱거리기도 했고, 아무 칠도 하지 않은 가구들은 거칠지만 자연스럽고 아늑하다.
객실도 화려하지 않다.
마침 궂은 날씨에 라이브러리처럼 꾸며진 라운지에는 투숙객들이 한없이 나태한 자세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붐빈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1층에 위치한 룸스 호텔 수영장으로 내려가면 된다.
선베드에 누워 설산과 숨바꼭질을 하는 구름과 안개들을 보고 있으면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다.
여기서 한 없이 게으른 자가 되어도 좋겠다 싶지만 사실 스테판츠민다는 다양한 액티비티를 제공한다.
풍경의 화룡정점을 이루는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까지의 트레킹을 포함해 다양한 트레킹 코스는 물론, 스키, 패러글라이딩,
ATV 등도 가능하다.
혹시나 겨울에 방문하여 폭설에 고립되어도 심심해 죽지 않도록 로비층에는 게임룸도 있다.
룸스 호텔은 트빌리시에도 하나 더 있다.
1 V.Gorgasali Street Stepantsminda Georgia +995 32 2400099 www.roomshotels.com
보르조미에서 여왕처럼
크라운 프라자 보르조미Crowne Plaza Borjomi
지난 연말 오픈과 동시에 보르조미 최고의 리조트로 등극했다.
주변의 산세와 잘 어울리도록 외관은 스위스 산장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내부는 현대적이다.
보르조미 공원 입구까지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편리한 위치에 수영장과 웰니스 & 스파 센터까지 갖추고 있다.
종류가 다양한 사우나에서 땀을 쏙 뺀 후 마시는 보르조미 탄산수의 맛은 더욱 환상적. 거기에 부드럽게 근육을 이완시켜 주는
스파 테라피스트의 손길이 더해지면 몸이 노곤노곤 녹아 버리는 듯하다.
101개 객실 규모에 알맞게 2개의 레스토랑과 와인 바, 클럽 라운지와 피트니스 센터도 갖추고 있다.
사실 누가 봐도 새 호텔임을 알 수 있는 크라운 프라자 호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직원들의 태도였다.
이제 막 교육을 마치고 처음 게스트를 대하는 듯 긴장한 모습이 마치 처음 사용해서 서걱거리는 린넨 감촉처럼 신선하다.
너무 긴장한 탓에 벌어지는 소소한 실수들이 휘황찬란한 호텔에 인간미를 더해 주었다.
Baratashvili st 9 Borjomi 1200, Georgia +00798 817 1782m www.ihg.com
트빌리시 상업지구의 편안함
홀리데이 인 트빌리시Holiday Inn Tbilisi
트빌리시 올드 시티와는 거리가 있지만 상업지구 중심에 위치해 있어서 교통이 편리하다.
호텔 카지노와 24시간 문을 여는 은행이 이웃으로 환상의 짝을 이루고 있고, 호텔이 위치한 메이 스퀘어 주변에는 익숙한 브랜드의
커피숍과 패스트푸드점, 마트 등이 있어서 잠들지 않는 도시적 안락함을 느낄 수 있다.
트빌리시 그랜드 콘서트홀, 아미라니 영화관, 페키니 쇼핑 거리도 가깝다.
조식 뷔페는 깔끔하고 만족스러우며 즉석 오믈렛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야외 수영장은 여름 시즌에만 사용할 수 있다.
1, 26 May Square, Tbilisi, Georgia, 0171 +995 32 2300 099 www.hi-tbilisi.com
▶travel info
Airline
조지아는 생각보다 멀지 않다.
터키항공의 인천-이스탄불 직항편을 이용하면 이스탄불에서 수도 트빌리시까지는 3시간 거리다.
터키항공은 트빌리시뿐 아니라 동부의 바투미에도 취항 중이다.
귀국길에 이스탄불 공항 대기 시간이 길다면 터키항공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시내관광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조식과 중식, 입장 티켓까지 제공된다.
터키 국적 항공사인 터키항공은 1933년 설립돼 현재 315대의 항공기로 인천을 비롯해 세계 288개 도시를 취항하고 있으로
2011부터 2015년까지 5년 연속으로 스카이트랙스Skytrax에 의해 유럽 최고의 항공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이스탄불 공항의 라운지는 유럽 최고의 라운지로 꼽힐 정도로 우수한 편의 시설을 자랑한다.
Weather
면적은 작지만 해발 고도의 차이가 커서 날씨도 변화무쌍하다.
북쪽의 코카서스 산맥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은 겨울이면 더욱 혹독해진다.
남부에서 오는 건조하고 뜨거운 바람이 북부의 공기와 만나서 여름 평균 온도는 19~22도, 겨울 평균 온도가 1.5~3도로
수치적으로는 온화하다지만 방문하는 지역에 따라 옷차림을 다양하게 준비하는 것이 좋다.
Visa
여행 목적일 경우 한국인은 360일까지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다.
Currency
조지안 라리Lari를 사용하며 표기법은 GEL이다. 큰 상점과 마트에서는 신용카드도 널리 사용하고 있다.
물가는 유럽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2016년 5월 현재, 미화 1달러가 약 2.2라리다.
Food
조지아 식도락
조지아 사람들의 손님 접대는 유난스럽다.
손님을 치르고 나서 그 집 냉장고가 텅텅 비지 않으면 제대로 대접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와인과 치즈빵, 고기와 치즈로 속을 넣은 가지요리와 토마토, 오이, 양파를 섞은 샐러드. 돼지고기 숯불꼬치인 므쯔와디Mtsvadi,
짭짤한 화이트 치즈로 속을 채운 피자 모양의 카차푸리Khachapuri, 왕만두인 킨칼리Khinkali 등이 대표적이다.
Religion Facilities
트빌리시 올드 시티
150만명의 트빌리시 인구의 85% 이상이 조지아 정교회지만 다른 종교와 민족에 대한 차별이 없다.
올드 시티 깊숙한 곳에는 유대인 쿼터, 아르메니안 쿼터, 아제르바이잔 쿼터가 이웃해 있고, 유대인 회당, 모스크, 아르메니안
정교회 교회가 서로 지척에 자리잡고 있다.
시아파와 수니파가 함께 사용한다는 모스크, 2개의 유대 교파가 함께 공존하는 유대교 회당은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다.
Sulfur Bath
아바노투바니Abanotubani
나리칼리 요새 아래, 계곡을 끼고 형성된 아바노투바니는 트빌리시의 온천욕장 구역이다.
굴로스를 포함해 5개의 하맘 스타일 온천욕장이 운영 중이다.
공용탕도 있지만 1시간 단위로 빌릴 수 있는 전세탕의 비용도 1시간에 4만원 정도로 그리 비싸지 않다.
굴로스 테르말 스파Gulo’s Thermal Spa 5 Grishashvilis St. Tbilisi, Georgia +995 599 588 122
Flea Market
트빌리시의 벼룩시장 드라이 브리지 마켓Dry Bridge Market은 은식기류부터 헌옷과 신발, 군용품과 제복까지 온갖 물건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상설벼룩시장이자 골동품 시장이다.
흥정은 필수지만 안목이 있다면 꽤 쓸 만한 소련제 구제품들을 구입할 수 있다.
공원으로 내려가면 다양한 화풍의 그림들을 구입할 수 있는 그림시장으로 이어진다.
평화의 광장에서 걸어서 20분 거리.
트빌리시 사브뤼켄 다리Saarbruecken Bridge 건너 대대나 공원Dedaena Park 매일 10:00~17:00
글 천소현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이승무
취재협조 터키항공 www.turkishairlines.com, 조지아관광청 www.georgia.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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