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두리 해안사구를 걷고 있는 일행. 신두리 해안사구는 천연기념물(제431호)로 지정된 국내 최대 규모의 모래언덕이다.
국내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라 이곳에서 영화나 드라마 촬영이 자주 이뤄진다.
덕분에 신두리 해안사구 방문객들이 최근 많아지고 있다.
그것이 외국에서 이뤄진다면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있는데,
사실 국내에도 외국 못지않게 즐길 거리 볼거리가 많다.
이번 연재는 위의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이 땅에 이런 데도 있었네?' 시리즈다. 시각을 달리하면 대상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의도로 ‘발’의 입장에서 내용을 전개한다.
제 고향 미국에서 사람들은 저를 ‘샌들’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제가 못생겼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공장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저를 내려다보면서 그랬습니다. '이걸 대체 누가 신지?' ‘글쎄요, 누가 저를 데려갈까요?’
저도 묻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상자에 들어가기 전에 아래쪽을 슬쩍 내려다봤는데, 글쎄 저와 비슷하게 생긴 동료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저보다 색깔이 화려하고 두툼한 게 훨씬 멋있어 보였습니다.
바싹 마르고 끈이 너덜너덜한 제 모습이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이러다가 영영 상자 속에서 나오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해서 울적했지요.
해안사구의 모래밭을 걷고 있다. 모래는 생각보다 입자가 곱다.
그러나 다행히 저는 그 속에서 무사히 빠져나왔습니다!
얼마 만에 다시 바깥세상을 보게 된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눈물이 나올 뻔했습니다.
주인이 저를 처음 봤을 때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네요.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니고. ‘뭐 이렇게 생긴 신발이 다 있냐?’는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뭐 상관없었습니다.
신선한 공기를 다시 마실 수 있게 된 것 만으로도 만족했으니까요.
주인은 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참 들여다보더니 저를 얌전히 바닥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선 바로 하얀 발을 제 몸 위로 쑤욱 들이밀었습니다.
해안사구에는 탐방로가 깔려있다. 이 길을 따라가면 모래언덕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너덜너덜한 끈은 주인의 발과 내 몸을 밀착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으악! 이상해. 이 냄새는 뭐지? 아무튼 그렇게 해서 저는 다시 세상과 조우했습니다.
이제 저도 공장에서 봤던 먼저 태어난 친구들의 사진처럼 여기저기 구경 다닐 수 있게 됐습니다.
주인 발에서 나는 냄새가 맘에 안 들긴 했지만 어쩌겠어요. 받아들여야죠.
버려졌던 땅, 천연기념물로 재탄생
아! 주인이 저를 신고 처음 바깥으로 나갔던 날, 친구 둘을 만났습니다!
우린 같은 공장 출신이었어요! 정말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친구들 주인의 발도 장난 아니더라고요.
이 중 한 녀석은 주인이 ‘무좀’에 걸렸다고 하데요. 냄새가 내 주인보다 더 고약했어요.
아무튼 이 친구들과 이번 여행을 같이 할 수 있어 꿈만 같았습니다.
데크가 깔린 탐방로는 걸터 앉아 쉬는 용도로도 쓰인다.
주인은 이 알갱이들을 ‘모래’라고 불렀고요, 멀리서 넘실댔던 푸른 것은 ‘바다’라고 하더군요.
주인은 ‘해설사’라는 사람을 만나서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들의 대화에 따르면 우리가 있는 곳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태안군이었습니다.
바닥의 모래는 ‘신두리 해안사구’에서 나온 것이었고요. 해설사의 설명을 잠깐 엿들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신두리 해안 사구는 버려지다 시피 했어요. 여기 모래는 그냥 공사용으로 퍼다 쓰고 그랬죠.
지금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도 겨우 이뤄진 거예요. 여기가 원래 사유지였거든요.
천연기념물 지정을 막기 위해서 땅주인이 일부러 쓰레기를 투척했다고도 해요.
지금 보이는 모래언덕은 많이 복원된 겁니다. 그 위에 사구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는데 다 걷어낸 거고요.'
두 주인의 모습.
당장 달려가서 하얗고 부드러운 모래언덕 속에 몸을 파묻어 보고 싶었지만 주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천연기념물이라서 함부로 언덕 위로 올라갈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보는 걸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어요.
참 많이 아쉬웠습니다.
우리는 모래언덕 앞을 지나 ‘나무 데크’라는 곳으로 올라왔습니다. 여기에 올라서니 주변 풍경이 더 확실히 보였습니다.
모래언덕이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멋있기도 했지만 뭔가 가슴이 뭉클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모래언덕이 꼭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듯 했다고 할까요?
그 광경을 보고 감상에 젖으려는 찰나, 주인은 다시 나무 데크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해안 사구 일대를 걷고 있는 일행. 코스가 꽤 길게 나 있어 트레킹을 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모래언덕으로 올라가신 분들은 거기서 빨리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사구는 천연기념물이라 함부로 올라가선 안됩니다.
자연 환경 보호에 동참해 주세요!' 주인은 흠칫 놀라는 듯 했습니다.
'카메라로 보고 있는 것 같다'면서 이후 주인은 조심스럽게 행동했습니다.
우리는 바다 반대편에서 모래언덕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멀리서 봤을 때는 느낄 수 없었는데 언덕 근처는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그래서 모래가 계속 흩날렸고요.
전에 해설사는 사구가 바람에 의해서 생겼다고 했습니다.
여기 모래들은 만 5천 여 년 전에 파도에 의해 육지로 올라왔다가 물기가 마르면서 겨울철 북서쪽에서 부는 바람을 타고 온 거라고요.
그러고 보니 모래 언덕이 쓸쓸해 보였던 건 여기 모래들이 바다를 그리워했기 때문 아닐까요? 그거밖에 이유가 더 있겠어요?
나한테 손발이 있었다면 모래들을 당장 바다로 데려다 줬을 텐데. 주인은 그것도 모르고 매몰차게 발길을 돌렸습니다.
모래언덕 뒤쪽에는 곰솔숲이 있다. 여기는 모래언덕의 황량함과는 대조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 사구지역을 벗어나 곧바로 새로운 풍경과 마주했습니다.
모래가 가득했던 곳과 달리 바람도 적게 불고 아늑했습니다. 주인이 여기가 ‘곰솔숲’이라고 일러줬습니다.
위를 올려다보니 뾰족하고 얇은 수많은 선들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습니다. 파란 하늘에 마구 빗금을 쳐 놓은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게 ‘나뭇가지’라고 얼핏 들었고 나뭇가지는 또 ‘소나무’의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여기 냄새도 기가 막혔어요.
그동안 주인 발의 쾌쾌한 냄새 속에 갇혀 있다가 싱그러운 향이 가득한 곳으로 탈출한 느낌이었습니다.
여기서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었던 제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주인은 갑자기 걸음을 멈췄습니다.
데크에 누워 쉬고 있는 이수항 씨.
뭐라고요? 고라니? 주인이 바라보고 있는 곳을 가만히 쳐다보니 까만색 눈동자가 반짝이는 게 보였습니다.
길고 날렵한 다리 위로 늘씬한 몸이 보였고요. 주인과는 다른 모습을 한 생명체였는데,
고라니라고 하는 녀석은 주인과 그렇게 한참 마주보고 있다가 갑자기 펄쩍 뛰어 소나무숲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와! 이런데서 고라니를 보다니. 놀랐네!' 주인은 연신 감탄했습니다.
고라니라는 녀석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친구가 아니었나 봅니다.
해안사구 앞은 해변이다. 여기서는 해수욕을 즐길 수 없다. 해안은 바로 옆에 신두리 해수욕장과 연결돼 있다.
숲을 벗어나니 다시 모래지대가 나왔습니다. 아! 가까이서 보니 그건 모래가 아니라 ‘갯그령’, ‘갯쇠보리’라는 식물이었습니다.
앞에 붙은 ‘갯’이라는 말은 바닷가나 물가를 나타낼 때 쓰는 말이라고 하더군요. 두 식물은 특히 모래땅을 좋아한다고 해요.
그래서 둘이 사이좋게 여기 붙어있는 거고요. 주인이 말해준 거랍니다.
모래를 얼마나 좋아하기에 색깔까지 저렇게 맞췄을까요?
그래서인지 여기도 모래지대와 비슷한 풍광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래바닥처럼 부드럽진 않았지만 풀들이 깔려있어 폭신했습니다.
또 아까 모래언덕은 약간 쓸쓸해 보였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왠지 모르게 따듯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습니다.
둥근 언덕도 그렇고 그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진 길도 참으로 정감 있었습니다.
모래언덕에는 수많은 사구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그래서 주인 발을 쿡쿡 찌르면서 신호를 보냈죠. ‘어서 내려가 보자’하면서요.
주인은 그 사인에 응답했고 우리는 바닷가로 내려왔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발이라도 담가 봐야죠!'
주인은 저를 데리고 그대로 바다에 들어갔습니다.
생각보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뭔가 좀 달랐어요. 들어갔다가 나오니 몸이 약간 끈적끈적했고요.
다음에 바다를 만나면 주인이 저를 벗을 수 있게 신호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다에서 나와 얼마간 모래바닥을 거닐었습니다.
표면이 단단해서 좀 신나게 내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주인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았어요.
흥, 재미없어라! 결국 바닷가 산책은 싱겁게 마무리됐습니다.
트레킹 도중 취한 포즈.
다시 언덕으로 올라오니 해가 지기 시작했습니다.
아까 해설사가 이곳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바로 지금 무렵이라고 했는데 날씨가 흐렸던 탓인지 기대했던 장관은 볼 수 없었습니다.
대신! 나가면서 또 굉장한 풍경을 봤습니다.
‘두웅습지’라고 하는 곳이었는데, 그리 크지 않았지만 모래언덕과는 사뭇 서정적인 모습에 좀 놀랐습니다.
아무래도 가운데 물이 고여 있어서 그렇게 보인 것 같았어요. 두웅습지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다시 차에 올랐습니다.
첫 여행지에서는 바다의 짠맛과 모래의 감촉을 느꼈습니다. 다음에는 더 짜릿한 경험을 할 수 있겠죠?
information사막, 솔숲, 갯가 식물원 갖춘 생태공원태안에는 볼거리가 많다.
복잡한 해안선을 따라 곳곳마다 지리적 생태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태안에 속한 섬만 해도 100개가 넘고 해수욕장은 30여 개나 된다.
괜히 이곳이 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게 아니라는 거다.
이곳의 수많은 볼거리 중 최근 각광받고 있는 곳이 바로 신두리 해안사구다.
해변에 생긴 모래언덕에서 풍기는 이국적인 분위기 덕분에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가 여기서 촬영됐고 그게 알려지면서 관광객들이
몰리고 있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신두해변 뒤쪽에 있다.
사구의 전체 길이는 3.5km 정도 되고 이중 사막 분위기가 나는 천연기념물(제431호, 2001년 지정) 구역은 이 지역 북쪽에 길이 1.5km,
폭 1.3km, 높이 19m에 이르는 규모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국낸 최대 규모로 통한다.
이곳에 사구가 생긴 이유는 이 지역이 겨울에 부는 북서풍을 정면으로 받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그 바람을 타고 해변가 모래가 뒤쪽으로 날아가 언덕을 만들었다고 한다.
해안사구 뒤쪽에 있는 해안 배후습지인 ‘두웅습지’도 유명하다.
길이 200m, 폭 100m, 수심 3m의 작은 규모지만 우리나라 해안사구에 인접한 습지로는 큰 규모에 해당된다.
이곳은 람사르습지로 등록돼 있기도 하다.
이 외에도 해안사구와 습지는 국내에서 보기 힘든 동식물들의 서식지라 국내에 얼마 안 되는 생태학습장으로도 불리고 있다.
람사르협약
이란의 람사르(Ramsar)에서 ‘습지보전 및 현명한 이용’을 위해 채택된 국제 환경협약으로 정식명칭은 ‘물새 서식지로서의 특히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이다.
두웅습지는 2007년 람사르협약에 의한 람사르습지로 지정됐다. 이외에도 우리나라에는 강원도 대암산 용늪, 창녕 우포늪, 신안 장도습지 등의 람사르습지로 저정돼 있다.
신두리사구센터
2015년 해안사구 입구에 사구센터가 생겼다. 2
층 규모로 건설됐고 여기에 전시실, 영상실, 다목적실, 연구실, 사무실 등이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서 신두리 해안사구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지난해 중순 태안군은 해안사구 생태해설사 18명을 이곳에 배치해 관람객들에게 해안사구에 대한 전문적이고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했다.
윤성중 기자 사진 신희수 기자 / yooniverse@emount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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