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담당관 두고 특별예산 편성… 심사위원 만나려 브로커 고용도
DJ 평화상 유력후보 떠오르자 대사관 대신 국정원이 전담
노벨상 심사기관이 있는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각국 대사관은 노벨상 전초기지로 불린다. 외
교라는 고유 역할 외에 노벨상 수상 전략이 특별임무로 주어지는 게 보통이다.
두 나라 대사관에 근무했던 외교관들은 “세계가 노벨상 열병을 앓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그 곳에서 근무한 우리나라 전직 외교관 5명에게서 세계와 한국의 노벨상 열병을 들어봤다.
● 노르웨이 스웨덴 대사관은 전초기지
노벨상 수상이 국가 위상과 직결되다 보니 모든 나라가 치열한 수상 공략을 편다.
지금까지 19명의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이 대표적이다.
특별예산 편성뿐 아니라 현지 대사관에 노벨상 담당관까지 두고 외교력을 총동원한다.
노르웨이 대사를 지낸 A 전 외교관은 “노벨상이 엄격한 심사로 진행된다고 하지만 암암리에 흑막 홍보까지 진행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를 포함해 신흥국들은 노벨상 수상을 국위를 선양할 기회로 여기고 홍보 이상의 방식으로 공을 들인다”고 전했다.
노벨 심사위원 접촉을 위해 브로커를 고용하는 대사관도 있다고 한다.
2000년대 초 퇴임한 B 전 대사는 “외교관들도 노벨상 수상과정을 잘 알지 못해 브로커에 의존한다”며
“민감한 사안이라 극도로 조심하기 때문에 실체가 잘 드러나진 않는다”고 말했다.
브로커들은 후보 공적 만들기, 자금 유치를 통한 수상 방법 등을 조언한다.
B 전 대사는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노벨상 심사위원이 소속된 개별 단체에 기부금을 전달하는 경우도 있다”며
“하지만 현지에선 이를 비난하기 보다 당연시 여긴다”고 로비성 홍보가 일반화된 모습을 지적했다.
● 한국도 정권마다 노벨스캔들
그렇다면 2000년 평화상을 배출한 한국은 이런 로비 의혹에서 자유로울까.
우선 한국은 문학 경제 물리 등 스웨덴이 결정하는 노벨상에 대해선 현지 대사관이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노르웨이에서 선정하는 노벨 평화상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대통령이나 정치인 등 고위급 인물이 평화상 후보로 몰려 있다 보니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인 전략이 수립되고 대사관도 동원된다.
현지 대사관이 외교력을 쏟아 부은 대표적 인물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김영삼(YS),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꼽힌다.
전직 외교관들은 이들이 평화상 후보로 거론된 10여 년 간 노르웨이 대사관은 노벨상 만들기 외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전했다.
권영민 전 대사는 “대사관 업무 가운데 20% 이상을 평화상 수상에 할애했을 만큼 관심을 둬야 했다”고 회고했다.
● 전두환의 노벨상 플랜
과거 정권들은 평화상을 정하는 노르웨이 대사에 유독 높은 관심을 보였다.
전 전 대통령 시절엔 육사 11기 동기생인 고(故) 송성한 전 대사를 85년부터 임기 말까지 노르웨이 대사로 근무토록 했다.
당시 군사정권은 노벨 평화상 플랜을 가동, 송 전 대사를 노르웨이 대사관으로 보내는 한편 북한과 정상회담을 추진했다.
이를 위해 북한에서 허담 노동당 비서가 서울을 극비리에 방문하기도 했다.
송 전 대사는 당시 현지 외교관들에게 이 같은 자신의 임무를 소개하고 전폭적인 도움을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발생한 미얀마 아웅산 폭탄테러 사건, KAL기 폭파추락 사건 등에 평화적으로 대처해 한반도
안정유지에 공헌했다는 명분으로 영국ㆍ서독 의회에 의해 88년 평화상 후보로 정식 추천됐다.
만약 전 전 대통령의 노벨상 플랜이 성공했더라면 2000년 DJ의 남북정상회담과 평화상 수상의 국면은 달라졌을 수 있다.
● YS도 평화상 추진
YS정부는 94년 북한과 미국의 제네바 기본합의서 서명으로 북핵 문제가 일단락되자 한반도 긴장완화의 물꼬가 트였다고 판단,
평화상 수상을 추진했다.
최대화 전 대사가 95년 1월 평화상 관련 활동을 소홀히 한다는 이유로 소환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당시 노르웨이 정부는 부임 1년 만에 최 전 대사가 소환되자 한국정부에 항의, 외교적 마찰까지 빚었다.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월드컵 유치에 나섰던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는 “노르웨이 인사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대사 소환을 이유로 오히려 항의했다.
외교적으로 모욕을 당했다는 분위기였다.
한 표가 아쉬운 마당에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러나 YS정부는 현지 분위기로 볼 때 YS보다는 DJ가 노벨상에 더 근접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거꾸로 DJ의 평화상 수상을 막기 위한 역로비를 폈다는 의혹을 받는다.
● YS정부, DJ 노벨상 막아라
당시 현지 책임자였던 권영민 전 대사는 역로비 문제에 대해 “어찌 한 나라의 대사가 정치 지도자를 비방할 수 있겠는가. 모두 오해다. 이미 DJ는 유력한 후보라서 방해로비를 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 문제로 인해 DJ정부 출범 때 곤욕을 치르게 된다.
청와대 의전수석으로 내정됐다 전격 취소된 것이다.
YS를 평화상 수상자로 만들기 위해 DJ를 음해했다는 보고가 청와대에 들어 간 결과였다.
실제 YS 측이 수상 확률을 높이기 위해 DJ에 대한 악소문을 퍼뜨리는 역공작을 편 정황이 없지는 않다. 당시
DJ는 인권 향상과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한 공로로 87년 이후 매년 평화상 후보에 추천되곤 했다.
99년 노르웨이 대사를 지낸 박경태 전 대사는 “DJ의 평화상 수상 무렵 방한한 노벨 심사위원들에게서 ‘YS정부 때 DJ에게 상을 주지
말라는 로비가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 DJ 노벨상에도 정부기관 동원
98년 노르웨이 대사를 지낸 양세훈 전 대사는 회고록 <장춘에서 오슬로까지>에서 DJ 홍보외교를 소개했다.
그는 DJ의 경제위기 극복을 담은 보고서를 노벨위원회와 정부, 언론에 전달하고, 대사관저로 장관, 의원, 언론인, 학계인사,
기업인을 초대했다.
노르웨이 총리도 만나 “노르웨이는 인도주의를 가장 중시하기에 남북대화가 진전돼 한반도 평화가 정착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달받았다.
노벨위원들을 방한시켜 금강산 관광, 소떼 방북 모습을 실제 경험토록 하는 작업도 추진했다.
양 전 대사는 “한국인이 노벨상을 수상하는 게 민족의 영광이라고 생각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를 이은 권 전 대사는 “DJ는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일종의 환경조성만 하면 수상이 유력하다는 현지 보고서를 작성해
본국에 보고했다”고 했다.
나중에 이 ‘돌파구’란 ‘남북정상회담’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그는 “DJ가 유력한 후보였고, 공적을 세우려는 국내세력도 많아 대사관은 점차 노벨상 (수상 작전) 중심에서 멀어져 갔다”고 회고했다.
DJ가 유력 후보가 되자 DJ 주변인사, 국정원 등에서 전략적으로 노벨상 업무를 전담했다는 얘기다.
권 전 대사는 DJ가 평화상을 수상하기 1년 전인 99년 2월 박경태 대사로 교체된다.
박 전 대사는 “내가 부임했을 때는 이미 대사관 차원이 아닌 그 위에서 고차원적으로 전략을 짜고 있던 터라 어떠한 관련 업무도
한 기억이 없다”며 “2000년에는 알려진 것과 달리 대사관 차원에서 역할은 극도로 축소됐다”고 말했다.
● 고은 시인, 실패이유
이처럼 노르웨이 대사들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평화상 관련 정보, 현지 분위기, 아이디어 등을 본국에 보고하는 것이다.
자국 지도자 치적 홍보와 함께 심사위원들에 직접 접촉까지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C 전 대사는 “심사위원의 경우 개인적으로 만나 국내에서 요구한 내용을 전달하는데, 극도로 조심스럽게 진행해 외부에 전혀 노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로비 활동이 지나치거나, 외부에 공개될 경우 역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현지 대사를 지낸 이들은 단적인 예로 문학상 후보로 매년 거론되는 고은 시인을 든다.
D 전 대사는 “고은 시인이 유력 후보임에도 문학상을 번번이 타지 못하는 것은 번역작업 등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겠지만
오히려 너무 홍보가 이뤄져 위원들의 반감을 산 게 한 원인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심할 정도로 한국 각계에서 홍보가 이뤄지다 보니 노벨 심사위원 사이에서 고은 시인을 평가 대상에 올리기 꺼려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고 덧붙였다.
노벨상 홍보는 좀더 세련되고 은밀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직 외교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 2014년 노벨상 발표(한국시간)
생리의학상 6일 오후 6시 30분
물리학상 7일 오후 6시 45분
화학상 8일 오후 6시 45분
평화상 10일 오후 6시
경제학상 13일 오후 8시
문학상 9일 예상
수상한 수상, 노벨상 스캔들
"개인 영예 넘어 국격의 징표" 세계 주목 속 6일부터 발표
로비·정치 바람에 뜻밖의 인물도, 최근 10년간 뒷말·비아냥 난무
노벨상 시즌이 돌아왔다.
10월이 되면 세계의 눈은 어김없이 노벨상을 선정하는 스웨덴과 노르웨이로 향한다.
올해는 6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물리 화학 평화 경제학 문학의 6개 부문 수상자가 순차 발표된다.
최고 권위를 지닌 노벨상 수상은 개인의 영예는 물론 한 나라의 국력이자 국격으로 통한다. 노
벨상에 목말라 하는 것은 세계 각국이 다르지 않다.
특별예산을 투입하고 현지 대사관에 담당관까지 두기도 한다.
그래서 철저한 비밀주의에도 불구하고 노벨상 선정은 종종 경쟁으로, 집착으로, 스캔들로 번진다.
세계의 노벨상 열병은 올해만 해도 필리핀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의 평화상 로비, 중국 정부의 반체제 인사 수상을 막기 위한
역로비 의혹으로 나타났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조차 지난 5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평화상을 노린다던데, 요즘은 노벨상을 아무에게나 주니
가능한 일이다”고 반 농담조로 말했다.
*관련기사 면
노벨상 시즌은 한국에게는 우울한 시기다.
국가별 노벨상 수상자 집계에서 중국보다 뒤지고 일본에는 1명 대 19명으로 한참을 뒤처졌다.
올해는 톰슨로이터가 유룡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단장과, 찰스 리 서울대 의대 석좌 초빙교수를 각각 화학상과 생리의학상
후보군에 올려 기대감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매년 노벨상 소외감이 반복되면서 수상거부 주장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현지 대사를 지낸 전직 외교관들은 그 동안 정치권력의 욕심으로 노벨상 수상을 위한 ‘로비성 홍보’가 이뤄졌다고 증언했다.
노벨상 소외가 그로 인한 부작용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들이 이런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문학상 후보에 자주 거론된 고은 시인은 과도한 홍보 탓에 노벨상 심사위원들의 반감을 산 상태라고 전직 외교관들은 전했다.
특히 2000년 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전 대통령 스캔들은 계속되고 있다.
이 문제를 제기해온 김기삼 전 국정원 직원이 미국 언론인 도널드 커크와 함께 당시 정부 비밀문서가 담긴 영문판 책의 출간을
앞두고 있어 파장도 예상된다.
노벨상은 과거에도 정치적 수상을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비폭력 투쟁으로 인도 독립을 이끈 마하트마 간디가 5번 후보에 오르고도 영국과 마찰을 원치 않은 노르웨이 입김으로 매번 탈락된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노벨상 스캔들은 최근 더욱 빈번해져, 지난 10년 간 문제되지 않은 경우가 손에 꼽힌다.
작년 유엔 산하 화학무기금지기구(OPCW)가 평화상을 타자 영국 일간 가디언은 “누가 문제 많은 평화상을 받겠느냐. 차라리 오슬로(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서 외면 받은 게 명예롭다”고 꼬집었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의 수상은 앞으로 세계 평화에 기여하라며 미리 준 ‘선불 노벨상’으로, 2002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수상은 이라크 전쟁을 준비하던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비난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됐다.
2012년 중국의 친정부 인사 모옌(莫言)이 문학상을 수상했을 때는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는 인사가 수상할 정도로 노벨상이 부패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2010년 반체제 인사 류사오보(劉曉波)가 평화상을 받아 중국 정부 심기가 뒤틀렸던 것과도 묘한 대조를 이뤘다.
공정성 논란이 커지자 스웨덴 당국은 노벨위원들의 뇌물 향응 의혹을 수사하고, 평화상 선정 적절성에 대해 공개 조사를 벌이기까지 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노벨상은 로비와 정치바람을 타는 일종의 줄타기인 게 현실”이라며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 수상에 공을 들이기 보다 기초체력을 양성하다가 유력 후보가 나오면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게 현명하다”고
말했다.
노벨상 선정과정과 그 가치는
한국일보박관규입력2014.10.04 05:08
노벨상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베르나르드 노벨(1833~96)의 유언에 따라 인류복지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1901년부터
매년 수상되고 있다.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문학 평화와 1969년 제정된 경제학까지 모두 6개 부문에서 선정된다.
노르웨이가 정하는 평화상을 제외한 나머지는 스웨덴 왕립과학원, 한림원 등 스웨덴 기관이 결정한다.
매년 후보 선정은 전년 9월 추천 의뢰서를 전 세계 전문가에게 발송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다음해 1월까지 추천서 접수가 마감되면 각 기관은 본격 심사에 들어간다.
물리학상과 화학상은 해당 분야 노벨위원회가 심사한 뒤 스웨덴 왕립과학원이 의결하고, 경제학상은 스웨덴 과학원이 결정한다.
생리의학상은 카롤린스카 의과대 노벨총회에서, 문학상은 스웨덴 한림원에서 정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수상한 평화상의 경우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이런 과정에도 불구하고 114년째를 맞은 노벨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에 의해 수상자가 결정되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심사과정이나 표결내용은 노벨상 규정에 따라 50년간 비밀에 부쳐진다.
수상자 발표는 세계의 관심 속에 매년 10월 초ㆍ중순에 이뤄지고, 시상식은 노르웨이 오슬로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그 해 12월 10일 거행된다.
노벨상을 수상하면 지름 6.6㎝에, 금으로 도금된 메달과 증서 그리고 상금이 주어진다.
상금은 원래 1,000만 크로나(약14억6260만원)였으나 경기침체와 유럽경제 위기로 63년만인 2012년 20% 삭감돼 지금은 800만크로나(11억7,000만원)를 받는다.
최대 3명까지 가능한 공동 수상일 경우 이를 균등하게 나눠 지급한다.
평화상은 단체에도 주어지지만 그 밖의 상은 개인에게만 수여된다.
노벨상 메달의 가치는 최근 경매를 통해 가늠할 수 있다.
미국 헤리티지옥션에서 작년 4월 유전자(DNA) 이중나선 구조를 공동 발견한 프랜시스 크릭의 노벨상 메달과 증서는 200만달러에
낙찰됐다. 남미의 한 전당포에서 발견된 1936년도 평화상 메달은 미국 볼티모어에서 116만 달러에 낙찰됐다.
이 평화상은 36년 아르헨티나 외무장관이던 카를로스 사베드라 라마스가 받은 것이었다.
"노무현·MB정부도 내막에 관심… 끝내 조사 못하더라
"DJ 노벨상 로비" 영문 책 낸 김기삼씨
前 스웨덴 외교차관이 창구역… 평화상 심사위원 방한도
수상 욕심이 북핵개발 불러… 주장 그쳐 온 의혹 자료로 입증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에서 군나르 베르게 당시 노벨위원장에게서 평화상을 받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미국 온라인 책 서점 아마존에는 언론인 도널드 커크와 김기삼씨가 공동 저술한 DJ정부 노벨상 로비 의혹에 대한 영문 책이 예약
판매되고 있다. 인터넷 사진 캡처
한국의 노벨상 스캔들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 김기삼(50)씨다.
국정원 출신으로 미국에 망명한 김씨는 10년 넘게 김대중(DJ) 정부 노벨상 공작의 존재를 주장해왔다.
대북송금과 안기부 불법도청 문제가 그의 손을 거쳐 대형 사건이 됐다.
그러나 DJ 노벨 스캔들은 국내에서 사건으로 취급되지 않았고 그의 주장도 의혹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김씨는 최근 새로운 시도에 나섰다.
미국 언론인 도널드 커크와 공동으로 ‘김대중과 노벨상 추구’(KIM DAE-JUNG AND THE QUEST FOR THE NOBEL)라는 영문 책을
내는 일이다.
책에서 그는 처음으로 DJ정부 당시 노벨상과 관련된 국정원과 외교부 등의 정부 비밀문서를 공개해 이전과는 다른 파장을 예고했다. ‘어떻게 한국 대통령이 노벨상을 탔고, 김정일의 핵 프로그램을 지원했나’라는 부제가 달린 책이 국제사회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는 김씨뿐 아니라 한국 정부 관심사이다. 워싱턴과 뉴욕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김씨는 “이번 책이 (노벨상 로비) 그림의 90%를 맞춘 것“이라며 지금껏 주장에 그쳐온 의혹을 자료로서 입증해낸다는 자신감을 내보였다.
그러면서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미국 현지에서 그를 직접 만나고, 한국에서 전화를 해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DJ의 노벨 평화상 문제에 매달리는 이유가 뭔가. 노벨상을 받기 충분한 인물인데다, 당사자는 이미 고인이 됐다는 지적이 있다.
“그렇지 않다. 노벨상 타려고 더 큰 위험(대북송금과 북핵개발)을 가져왔다. 노벨상위원회가 공식 조사한다면 응하겠다.”
-DJ 이후 역대 정부들은 이 의혹에 어떻게 반응했나.
“노무현 정부 초기 민정수석실에서 사람을 미국으로 보내 만났다. 이명박 정부시절에도 실세들을 미국에서 만났다.
처음에는 이 문제를 조사하려 했으나 끝내 하지 못하더라.”
-구체적으로, 노무현 정부 때부터 말해달라.
“정권교체기이던 2003년 초 대북송금 얘기가 나오길래 청와대에 편지를 보냈다. 2주 뒤 DJ의 대북송금 인정 발언이 나왔다.
당시 민정수석실에서 보낸 최모 변호사가 미국으로 찾아왔다. 최변호사는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 지시를 받고 왔다고 해 무기비리 등 DJ 정부 부패에 관한 편지도 써주었다.
내가 공개적으로 글을 쓰고 청와대에 진정을 하니 이호철 당시 민정수석실 비서관이 이메일 연락을 해온 적이 있다.”
-그 다음 이명박 정부 반응은.
“2008년 6월말 대통령 비서실장에서 막 물러난 류우익 전 통일부 장관이 방미했을 때 만나자며 항공편을 제공해, 로스앤젤레스로
찾아가 만났다. 그는 비서실장 재직 때 민정수석에게서 내가 제기한 문제들을 보고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면조사를)하겠다고 말하고 돌아갔는데 이후 아무 조치가 없었다.
이듬해인 2009년 4월 워싱턴에 온 김종태 당시 기무사령관(현 새누리당 의원)을 펜타곤(국방부) 근처에서 만났다.
그는 이전에 강영훈 전 국무총리를 만나 얘기를 들어 알고 있다며 내가 제기한 의혹에 대해 얘기했다.”
-현 박근혜 정부도 관심을 갖고 있나.
“접촉한 인사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현 정부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이병기 국정원장과 인연이 있지 않은가.
“내가 양심선언문을 써 제일 먼저 갖다 준 사람이 이 원장이다.
2002년 하반기 미국에서 공중전화로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특보이던 이 원장과 통화했다.
여러 의혹들을 말하니까 한국으로 오라 했다.
한국에 들어가 만났는데 (폭로 기자회견에 대해)기다려 달라고 한 뒤, (상대 후보에 대해 폭로, 비방하는 선거운동인)네거티브는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당시는 김대업 전 부사관이 제기한 이른바 병풍 사건이 한창이었다.)
-이번에 나오는 책이 인용한 문서들은 아직 미공개 자료인데 어떻게 입수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모았다. 동료들이 전해준 것들도 있다. 내가 직접 국정원에서 들고 나온 것은 없다.“(직접 국정원 문서를
몰래 빼냈거나, 재직 중 얻은 비밀을 공개하면 국정원직원법 상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책이 다룬 민감한 내용을 소개해달라.
“얀 엘리아슨 유엔 사무차장이 스웨덴 외교부 차관 시절 DJ정부의 대북 창구 역할을 한 사실, 노벨평화상 심사위원이 한국을 방문한 것 등이 있다. 국정원이 돈을 대고 현지 학자 이름을 빌려 스웨덴판 ‘감옥에서 대통령까지’란 DJ 옥중수기를 출판한 것이나 삼성의
노벨상 100주년 기념전 후원과정 등도 공개되지 않은 얘기들이다. DJ의 라프토 인권상 수상 과정에서 심사위원을 초청한 뒤 당시
유력후보가 탈락한 문제는 노르웨이와 외교적 논란이 될 수도 있다.“
-그간 미국 생활은 어떠했나.
“신분 문제부터 경제적 곤궁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 몰랐다. 고통을 참아준 가족에게 미안하다.“
-앞으로 계획은.
“이것(DJ의 노벨상 공작 의혹) 때문에 내 인생이 이리 됐다. 책이 나오면 이제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싶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이다.
생활인으로, 일상으로 돌아가려 한다.”
기획취재팀
<책에 어떤 민감한 내용 있나>
영국계 유명 출판사인 맥밀란이 발간을 준비 중인 ‘KIM DAE-JUNG AND THE QUEST FOR THE NOBEL‘는 모두 15개 장에 25개
주제로 이뤄졌다.
아직 기밀로 취급되는 정부문서를 인용한 각주는 16쪽 가량 된다.
김기삼 씨로선 지난 10여년간 ‘말’로 주장해온 노벨 스캔들 의혹의 원본자료를 처음 공개한 셈이다.
공동저자인 도널드 커크는 1970년대 이후 한국의 굵직 굵직한 현대사를 기록해온 언론인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책이 나오면 당시 노벨상을 위해 국정원과 현지 대사관 등 국가기관이 동원된 사실이 어느 정도는 인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책의 원고는 지난해 출판사 맥밀란에 넘어갔으나 발간이 1년 이상 미뤄지고 있다.
책에서 다룬 인물들 가운데 아직 현직으로 활약하는 인사가 다수여서 명예훼손 등에 대한 법리검토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는 이 책의 출간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으나 큰 문제 되지 않을 것으로 낙관하는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영어로 된 책에 대한 국제사회 반응은 국내와 다를 수 있어, 결과를 예단하기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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