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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5년] ② "응징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100년 만의 '친일 단죄'

*바다향 2020. 8. 13. 23:55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 친일인사 윤치호·이두황·김해강 '단죄비' 건립
김재호 지부장 "미래세대 부끄럽지 않게 친일 청산 이어가야..정부·정치권 협조 필요"

 

(전주=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역사적 단죄는 시효가 없습니다. 응징하지 않는 역사는 반드시 반복됩니다."

 

이두황 단죄비 (전주=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12일 오전 전북 전주시 중노송동 이두황 단죄비 앞을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 2020.8.12

 

광복 75주년을 사흘 앞둔 12일 전북도청에서 만난 민족문제연구소 김재호 전북지부장은 벽에 걸린 태극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렇게 힘줘 말했다.

 

2011년부터 민족문제연구소 지부장을 맡은 그는 전북 곳곳에 널린 친일 잔재를 알리고 이를 청산하는 데 앞장섰다.

김 지부장은 2011년 진안군 부귀면에 있는 '친일귀족' 윤치호 불망비(不忘碑)를 철거하고 그의 친일 행적을 적은 단죄비(斷罪碑)를 세웠다.

 

윤치호는 1897년 후반부터 독립협회에 몸담고 독립운동가인 서재필 선생 등과 함께 자주 국권 수호를 외쳤으나 1920년대에 들어서는 변절해 친일 단체와 깊이 교류했다.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부터는 창씨 개명과 지원병·공물 차출에 앞장선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 연맹 임원으로 활동하는 등 본격적인 친일 행보를 보였다.

 

단죄비에는 '윤치호는 한때 촉망받던 지식인으로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등 애국 계몽 활동을 지도하고 105인 사건으로 투옥되기도 했지만 1915년 친일 전향을 조건으로 특사로 석방돼 변절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문구가 적혔다.

 

김 지부장은 이어 2016년 친일 반민족행위자인 이두황 묘가 있는 전주시 중노송동 기린봉 초입에 단죄비를 세웠다.

 

이두황은 1895년 일어난 '을미사변' 당시 훈련대 제1대대장으로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다.

조선공사 미우라와 일본 자객 수십 명이 조선의 국모 목에 칼을 들이대는 데 길을 열어준 장본인이다.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른 이두황은 항일 의병 투쟁 시기였던 1908년에는 호남지역 의병 해산을 주도했다.

우리나라가 일제에 주권을 빼앗긴 경술국치 이후에는 일제 토지 수탈을 돕는 등 민족의 경제력을 착취했다.

 

김해강 시비 전북 전주시 덕진공원에 세워진 김해강 시비.

 

이두황은 일제를 도운 공로로 현재의 전북도지사급인 도장관을 지내다가 1916년에 죽었다.

이로부터 꼬박 100년이 지나서야 단죄비를 통해 역사적 응징을 받은 것이다.

 

비석에는 '동학농민군의 비원과 항일 의병의 한을 모아 역사와 민족의 죄인, 충량한 황국신민(皇國臣民) 이두황을 깨운다. (중략) 사후 100년, 역사와 민족의 이름으로 이 단죄비를 세운다'는 비문이 적혔다.

 

김 지부장은 치욕스러운 국치일인 오는 29일 전주 덕진공원에 있는 김해강 시비(詩碑) 옆에도 도내 세 번째 단죄비를 세운다.

김해강은 1942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자살특공대인 '가미카제(神風)'를 칭송한 '돌아오지 않는 아홉 장사'라는 시를 남겼다.

그는 친일인명사전에는 없지만, 민족문제연구소 등에서 발표한 친일문인 42인과 광복회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김해강은 생전 '전북도민의 노래'와 '전주시민의 노래' 외에도 학교 교가를 다수 작사했다.

 

현재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지자체 등의 노력으로 이를 새로 만드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김해강 시비는 내년 3·1절쯤 철거하는 방향으로 전주시와 뜻을 모으고 있다.

 

다만 시비가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게 아닌 데다, 단죄비를 통해 죄상을 낱낱이 기록할 것이기 때문에 존치해도 상관없다는 게 김 지부장의 입장이다.

 

김 지부장은 "우리나라가 해방된 지 벌써 75년이 됐지만,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친일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며

"1990년이 지나서야 청산 작업이 이뤄졌기에 아직도 곳곳에 반민족 행위를 한 친일 흔적이 치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래 세대에 부끄럽지 않도록 친일 청산을 이어갈 것이고 또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며

"이러한 일을 시민·사회단체가 주도할 게 아니라 정부와 정치권, 교육계 등 제도권 내에서도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협조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재호 지부장 (전주=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12일 민족문제연구소 김재호 전북지부장이 취재진과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2020.8.12

 

김 지부장은 현 단계에서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또 다른 단죄 대상 인사에 대한 단죄비 설립 계획도 밝혔다.

김해강에 이은 전북 지역 네 번째 단죄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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