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용산 기지, 일본 건물은 남기고 미군 병영은 없앤다고?

*바다향 2020. 8. 13. 23:43

'용산공원화' 허상에 갇힌 용산 미군기지 개발
건물 철거가 능사가 아닌데..이미 녹지 충분해
독일처럼 실용적인 활용 필요..공공임대주택·NGO센터 등
분단의 상징이 평화의 공간으로
인종·국적 초월한 다양성 갖춘 공간 돼야

 

서울 용산구에 있는 용산 미군기지 전경. 연합뉴스 

 

용산 미군기지의 공원화 결정 이후 15년이 지났다.

그동안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변했다.

공원과 녹지는 무조건 많으면 좋은 것이라는 개발시대의 상식도 낡은 이야기가 됐다.

나무는 언제든 심을 수 있지만, 한번 철거해버린 공간적 자산은 영영 되돌릴 수 없다.

 

용산 미군기지의 통합과 이전은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독일은 미군이 남기고 간 기지를 용도만 바꿔서 그대로 쓴다.

사무실은 학교가 되고, 격납고는 체육관이 되는 식이다.

 

지극히 상식적이다.

우리 사회는 왜 상식이 통하지 않는가?

 

용산공원에 대한 대답은 ‘공원’이라는 틀의 밖에 있다.

머릿속에 있는 허무맹랑한 몽유도원도를 떨쳐버리고, 대상지를 있는 그대로 보자.

대상지에 떡하니 현존하는 1000여개의 건물 중, 90% 이상을 철거하자는 연구 용역 결과가 나왔다.

그야말로 “일부 흔적”만 남기는 수준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보존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건물들은 일제의 잔재들이다.

일본군이 만든 것은 문화재가 되고, 미군이 만든 것은 철거해야 한다는 희한한 논리다.

 

역사성이란 현재에 닿아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일제강점기의 벽돌 감옥이 미군의 함석판 병영보다 나을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조선시대의 터만 겨우 남은 흔적을 대대적으로 복구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들이 생각하는 역사는 무엇인가?

또 다른 “역사 박제”를 만들자는 것인가?

눈에 보이는 엄연한 현실은 1000여채의 멀쩡한 건물들이다.

지금 전국 곳곳의 이른바 핫플에 가보자.

조선시대 한옥이 아니라, 개량 한옥 쪼가리라도 남아있으면 신축보다 몇 배나 더 드는 비용을 들여서라도 살리려고 하는 게 요즘 정서다.

1960~70년대에 지어진 건물의 타일과 나무창도 어떻게든 남겨서 디테일을 보존하려 한다.

시간으로 쌓인 가치는 돈으로 살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시의 랜드마크법은 문화재의 기준을 30년으로 본다.

용산 미군기지 내 대부분의 건물이 문화재에 해당할 것이다.

없앨 궁리부터 하지 말고, 어떻게 재사용할 것인지를 먼저 고민하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을까?

최대한 재사용하고 이용한다는 전제하에 불가피한 것만 없애려고 해도 이미 버거운 숫자다.

건물을 없애면 그에 딸린 전기, 상하수도, 통신 등 보이지 않는 인프라까지 제거된다.

어떤 이에겐 이 모든 것보다 잔디밭이 더 소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값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렇다. 공원이라는 결정을 받치고 있는 정서적 배경이 있다.

용산과 미군의 주둔은 일단 치욕의 네거티브 역사다.

우리는 효순이와 미선이를 기억하고, 윤금이씨와 패터슨을 잊지 않는다.

이 때문에 용산을 보는 관점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뼈아픈 기억과 상처 입은 민족적 자존심은 혼합된 미군기지의 잔재를 완전히 삭제함으로써 언젠가 잊히거나 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건강한 사람이 선택하는 치유나 극복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독일 사람들처럼,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함으로써 잘못된 과거와 콤플렉스는 바르게 지워진다.

침략과 분단과 전쟁의 목적으로 사용된 시설을 가장 유쾌하고, 미래지향적이고, 인간답게 사용함으로써 소극적 치유를 넘어 대한민국이 제시하는 문명적 전환을 보여줄 수 있다.

 

지난달 용산 미군기지 내 장교 숙소 부지에서 열린 ‘함께 그리는 용산공원 부분 개방 행사’. 연합뉴스 

 

건폐율이 낮은 용산 미군기지는 그 자체로 공원이 될 수 있음을 지난번 글에서 밝혔다. 2만명이 일하고, 살 수 있는 공원은 불가능한가? 새로 건물을 지을 필요도 없다. 공원의 주요한 기능을 레크리에이션으로 정의하고 도시와 공원을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만 극복하면 된다. 오피스, 주거, 교육, 식당, 체육관, 문화시설 등 총 연면적은 약 65만㎡에 달한다.

먼저 상징성이 높은 건물과 큰 규모의 교육 문화시설의 경우, 거의 그대로 혹은 약간의 수리를 거쳐 방문자센터, 박물관, 갤러리, 학교, 그리고 대중에게 개방되는 스포츠센터로 전환될 수 있다. 이러한 건물들은 용산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기능하면 된다. 대부분의 군용 건물들이 규정에 의해서 관리됐으므로 비교적 양호한 상태일 것으로 예상한다. 오염과 안전성에 대한 검사만 거친 후 사용자가 계약 기간만큼 자율적으로 변형하여 사용하게 해야 다양하고 창의적인 경관이 생성될 것이다.

다양한 주거용 건물의 경우에는, 희망하는 전 국민을 상대로 뺑뺑이를 돌려 당첨자를 뽑으면 어떨까?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으로 일정 기간만큼 살 수 있게 한다면 몇 년마다 돌아오는 국민적 축제가 될 것이다.

오피스 건물의 경우, 평화와 문화, 환경을 위해 일하는 국제 사회의 엔지오(NGO)와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다양한 외국인 노동자 단체에 무상 기부할 것을 제안한다. 미국의 도시공원 설계자 프레데릭 로 옴스테드는 도시의 핵심 인프라로서 센트럴파크를 제시하며 공중보건과 공해, 상수도 문제를 해결했을 뿐 아니라, 남북전쟁으로 인해 파탄이 난 인본주의적 질서를 재건하려 노력했다. 특히 각 사회 계층이 보다 서로를 이해하면서 보편적 자유라는 거대한 가치 안에서 공존해야 함을 역설하고, 당시로는 매우 획기적이고 진보적인 “누구든 차별 없이 어울릴 수 있는 공적 공간”의 경륜을 제시했다. 실제로 센트럴파크는 소득과 관계없이, 성별과 관계없이, 인종과 관계없이 함께 어울리는 공간적 기회를 제공했다.

 

서울 용산 미군기지 내 장교 숙소 5단지. 연합뉴스 

 

용산공원이 “우리 국민이 세계의 친구들에게 주는 선물”이 되면 어떨까?

최근까지 미군에 의해 사용되던 공간들이 단순히 과거의 죽은 유물로 존치되거나 무분별하게 철거되지 않고, 살아있는 공간으로 재활용되어 인종과 국적을 초월한 전 세계 젊은이들과 우리 국민이 어울릴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전쟁과 분단의 상징인 공간이 평화와 문화를 추구하는 젊은이들의 열기로 채워지기를 희망함이다.

 

수많은 외국인 병사들이 한국전에서 목숨을 잃었다.

민주화 과정에서 얻은 국제적 연대의 도움도 적지 않다.

지금 한국 경제는 수많은 제3세계의 젊은이들의 노동력이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용산이라는 상징 공간을 통해서 이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대화하고, 배우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전 세계에서 이상을 지닌 청년들이 모여들 것이고, 용산은 단순한 공원을 넘어 문화적 다양성과 예술, 교육, 음식, 그리고 풍부한 자연이 넘치는 매력적인 공간이 될 것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서울의 가장 핵심적 위치에 자신의 커뮤니티를 갖게 된다.

무엇보다 이러한 환경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시야를 넓힐 수 있는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최이규(계명대학교 도시학부 생태조경학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