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형기 중국 전문위원 = 13일 쓴 ‘박정희 우표 발행, 중국인들이 비웃을 일’이 예상외로 반응이 좋아 ‘2’를
쓰기로 했다.
또 반응이 좋으면 ‘3’을 쓸지도 모르겠다.
최근 박정희 대통령(이하 존칭생략) 기념우표 발행 논란은 이념 또는 역사전쟁의 양상을띠고 있다.
역사전쟁이니 역사로 얘기를 풀어보자.
중국의 마오쩌둥, 한국의 박정희는 독재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박정희는 유신으로, 마오쩌둥은 문화혁명으로 철권통치를 했다. 그런데 뚜렷한 차이가 있다.
마오쩌둥은 국민을 굶겨 죽였고, 박정희는 국민을 먹여 살렸다.
마오쩌둥은 국민을 굶겨 죽였지만 중국 인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반신반인(半神半人) 수준이다.
그러나 박정희는 국민을 먹여 살렸음에도 산업화 진영에는 반신반인이지만 민주화 진영에는 그 반대에 가깝다.
왜 그럴까?
마오쩌둥은 수천만 국민을 굶겨 죽였지만 중화 민족의 자존심을 살려주었다.
마오는 3개 제국주의와 맞섰다. 미국, 소련, 일본 제국주의다.
마오쩌둥은 만주를 점령한 일본을 국공합작(국민당과 공산당의 합작)을 통해 중국에서 몰아냈다.
마오쩌둥은 미국의 지원을 받던 국민당도 대만으로 쫓아냈다.
미국은 세계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소련이 공산화한 뒤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중국마저 공산화한다면 세계의 절반이
공산주의가 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국민당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항공기 등 최신 무기를 국민당에 아낌없이 지원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소련도 공산당이 아닌 국민당을 도왔다.
소련은 공산당이 중국을 해방하기 전까지 공산당이 아니라 국민당을 파트너로 삼고 있었다.
당시 소련이 동북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만주를 점령한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팽창을 막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소련은 항일을 위한 민족통일전선을 중국과 결성하려 했고, 공산당이 아닌 국민당을 그 대상으로 삼았다.
공산당의 세력이 미약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련은 공산당이 중국을 해방하기 전까지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를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했다.
소련은 이념이 아니라 국익을 우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자본주의 최강국 미국과 사회주의 최강국 소련 모두의 지원을 받은 장제스를 작은 섬, 대만으로 몰아냈다.
장제스는 질 수 없는 전쟁에서 졌고, 마오는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이긴 것이다.
마오쩌둥은 당시 가장 강력한 제국주의 세력이던 미국, 소련, 일본과 직간접적으로 싸웠고, 모두 승리했다.
중국 인민들이 마오쩌둥에 열광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근현대 중국인들이 가장 열망한 것은 ‘자존심 회복’이었다. 아편전쟁 이후 중국은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
천하의 중심 국가인 ‘중국(中國)’이 서구의 반식민지로 전락했다.
그런 중국인의 자존심을 살려준 지도자가 바로 마오쩌둥이다.
이에 비해 박정희는 경제로 제2의 건국을 했다. 그의 경제 업적은 탁월하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지금 우리의 경제발전 수준이 중국을 앞서지 못했을 것이다.
단군 이래 우리가 경제 발전 수준에서 중국을 앞선 적이 있었을까?
그러나 박정희의 이력엔 오점이 너무 많다.
박정희는 혈서를 써가면서까지 만군에 자원했다. 5.16 쿠데타로 헌정 질서를 유린하고 정권을 잡았다.
그것도 모자라 유신이라는 제2의 쿠데타를 일으켰다.
다른 것은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만군에 자원한 것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민족반역 행위다.
만군의 주요 임무가 독립군을 때려잡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만군시절 박정희
박정희는 모병 담당자에게 견마의 충성을 다하겠다는 간곡한 편지와, ‘한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란
혈서를 써 만주 군관학교에 입학했다.
박정희가 일제에 충성을 맹세한 편지는 다음과 같다.
“군관 모집 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일반적인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송구하지만 무리가 있더라도
반드시 국군에 채용시켜 주실 수 없겠습니까……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서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
-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여기서 말하는 조국은 조선이 아니라 일본이다.
식민지 청년의 일본제국에 대한 충성심이 눈물겹다.
박정희의 혈서와 편지는 일본인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그의 혈서 지원은 화제가 됐다. 그 미담(?)이 ‘만주신문’ 1939년 3월 31일자에 실릴 정도였다.
이쯤되면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 우표를 제작하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싶다.
sino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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