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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오디세이, 신화 속 신들이 잠겨 있는 폭포

*바다향 2016. 8. 2. 23:00








오랜만에 만나는 도시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긴 피오르인 에이야피오르뒤르(eyjafjörður)를 따라 달렸다.

피오르의 가장 깊숙한 곳이 가까워지자 저 멀리 도시의 불빛이 보였다.

북아이슬란드의 중심도시 아큐레이리(Akureyri)였다.

수도 레이캬비크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아이슬란드 제2의 수도라는 별칭에 걸맞게 아큐레이리에는 무려 1만8000명에

달하는 사람이 살고 있다.

'무려'라는 단어까지 붙여가며 말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남한과 면적이 비슷한 아이슬란드의 전체 인구는 약 30만 명. 그중 60% 이상이 수도권에 밀집해 있다.

나머지 인구는 해안가에 흩어져 마을을 이루고 사는데, 대부분의 마을 인구는 몇백 명에 불과하다.

그러니 아큐레이리 정도면 아이슬란드에서는 대도시인 셈이었다.


도시에 진입하자 신호등이 하나둘 보였다. 레이캬비크 이후 오랜만이었다.

빨간불을 보고 멈췄더니 옆으로 다른 차들이 쓱 들어와 나란히 서는 광경이 생경했다.

도시에 처음 온 사람처럼 웬 오버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광활한 대자연을 마주하다 이런 도시의 모습을 보니 새삼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숙소에 짐을 풀고 시계를 보니 오후 8시가 다 되어갔다. 집주인 아저씨에게 혹시 근처에 연 식당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강하게 끄덕이더니 아큐레이리 지도를 가져왔다. 추천 식당이 세 군데나 되었다.

차로 가야할 거리냐고 물었다. 그러자 내 질문이 웃긴다는 표정으로 주인아저씨가 대답했다. “아큐레이리가 그 정도로 크진 않아요.”

정말 그랬다. 그의 말대로 레스토랑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다. 게다가 걷는 동안 벌써 동네의 삼 분의 일은 본듯했다.

내친김에 좀 더 돌아보기로 했다.

둥근 언덕 위에 아큐레이리의 상징이라는 아큐레이라키르캬(Akureyrarkirkja) 교회가 보였다.

기하학적이고 독특한 디자인이었는데 낯설지 않았다.

알고 보니 레이캬비크의 랜드마크인 할그림스키르캬(Hallgrimskirkja) 교회를 설계한 건축가의 또 다른 작품이었다.


30분 정도를 걸으니 도시 한 바퀴를 다 돌았다. 도시치곤 아담했지만 없는 게 없었다.

아이슬란드 북부의 명소들을 잇는 버스는 물론 공항, 항구, 대학교, 공원까지 있었다.

손바닥만 한 메인거리는 각종 상점으로 알록달록하게 채워져 있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불이 켜있는 카페와 식당도 꽤 많았다. 길거리에선 음악도 흘러나왔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가끔 보였다.

도시이지만 시골처럼 소박했고, 시골 같지만 도시답게 알찼다.


메인거리 귀퉁이에 있던 레스토랑으로 돌아갔다. 밖이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았다.

매일 저녁 숙소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다가 처음으로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기다렸다.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맥주 한 잔의 사치도 부렸다.

옆 테이블에는 아이슬란드 젊은이들이 깔깔대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늦은 밤 왁자지껄한 식당에서 맥주라니, 역시 도시는 도시구나!’


신들의 폭포


아큐레이리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다시 링로드에 올라섰다.

1시간쯤 달렸을까. 미바튼 (Myvatn) 지역과 중간지점 되는 곳에 ‘고다포스(Godafoss)’라고 쓰인 푯말이 보였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물이 낙하하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렸다. 소리를 따라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폭포의 위용이 드러났다.

고다포스는 신들(Goda)의 폭포(Foss)라는 뜻이다.

본래 아이슬란드인들은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신들을 섬겼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천둥의 신 ‘토르’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기독교가 국교로 제정되면서 북유럽 신들의 조각상을 이 폭포에 던져 버렸고,

그 이후부터 ‘고다포스’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이름 때문이었을까. 고다포스는 신비로웠다.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큰 빙하인 바트나요쿨에서 녹아내린 물은 거친 화산 지형을 타고 이곳까지 내려와 넓게 반원형을 이루며

낙하했다.

높이 12m, 너비 30m에 이르는 폭포에서는 하얀 물보라가 연기처럼 쉼 없이 피어올랐다.

폭포의 상류 쪽으로 향했다. 울퉁불퉁한 바위와 그 사이를 흐르는 물과 얼음 때문에 걷기가 힘들었다.

별다른 안전장치가 없는 데다 바람까지 불어 온몸이 휘청거렸다.

자칫하다간 폭포에 던져진 조각상 신세가 될 것 같았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낙하의 시작점으로 다가갔다.

 새하얀 물줄기가 둥글게 패인 절벽을 타고 우아하게 쏟아져 내렸다.

그 모습이 마치 새하얀 그리스 신전의 기둥을 연상케 했다. 끝에서 한데 모인 물은 돌연 푸른빛으로 변했다.

그러곤 바닥 한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 주변을 빙글빙글 돌다 협곡 사이로 유유히 흘러내려 갔다.

폭포의 나라 아이슬란드에서 고다포스는 그리 큰 폭포는 아니었다.

하지만 가장 매혹적인 폭포 중 하나인 것은 분명했다.

1000여 년 전 이 폭포 속으로 내던져진 신들이 여전히 이곳에 머물고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