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에서 만난 사람들과 택시를 타고 구시가지 센트로(Centro)로 간다.
이제 남미에 온 지 이틀째, 아직도 마음은 인도를 못 벗어나고 익숙해진 인도생각만 간절하다.
어차피 여기에 왔고 도미토리 숙소에선 있을 곳도 별로 없어서 마지못해 센트로로 나간다.
스페인어도 못하고 남미도 처음이고 마음은 전 여행지 인도에 가 있고 시차도 많이 나니 멍한 기분이다.
여행을 위한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다시 서투른 여행자가 되어 낯선 거리를 헤매게 된다.
그래도 이색적인 풍경은 뇌를 자극한다.
열대 활엽수들과 노란 건물들,
대통령 궁이 있는 아르미스 광장(Plaza de Armias)등 리마의 센트로(Centro) 지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고 한다.
어제 세련된 미라플로레스(Miraflores)에서는 별다를 것 없는 현대적인 모습을 보았지만 이곳 센트로는 유럽풍의 건축물들로 멋진 분위기를
연출한다.
스페인이 남미를 식민 통치하던 시기에 가장 부유했던 도시가 리마였다고 하더니 그 시절의 영광이 아직도 건재하다.
남미의 대도시에서는 소매치기 등 안전사고에 유의하라는 당부를 많이 들어서 약간의 긴장감도 있었는데,
막상 센트로는 관광객도 많고 활기찬 분위기다. 뜨거운 태양과 사람들의 물결을 보니 오히려 기분전환이 된다.
걱정은 그만두기로 한다.
12시 정각, 대통령궁에서 근위병 교대식을 본다. 철창이 너무 촘촘해 안을 들여다보는 게 일이긴 하다.
외국인 여행자들은 그냥 지켜보는 정도인데 비해 페루사람인 듯한 할머니들은 열광(?)하시는 분위기다.
페루의 식민지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거대한 대성당(Catedral)과 산토도밍고 교회가 광장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유럽풍의 고풍스런 건물들은 스페인 식민시대의 유산이다.
이 모든 것들이 잉카의 건축물을 파괴하고 그 위에 건설한 것이라고 한다.
남미에서 스페인풍의 건축물을 만날 수 있는 것은 그 침략의 역사의 산물인 것이다.
보행자 거리인 라우니온(La Union)거리를 돌아다닌다.
각종 매장들과 사람들이 얽힌 풍경이 마치 명동에 온 것 같다.
인도에서 입었던 긴 바지가 머쓱하기도 하고 날씨도 고온다습해서 짧은 청반바지를 사서 바로 갈아입는다.
콜라병 같은 몸매를 자랑하는 페루 여자들이 거리에 넘친다. 거리구경, 사람구경에 시간가는 줄도 모른다.
중국 음식과 유럽 음식이 섞인 치파(Chifa)는 리마의 대표음식이기도 하다.
일부러 치파(Chifa)를 파는 중국음식점을 찾아가 점심을 먹는다.
기념품 가게들을 둘러보며 거리를 걸어 산 프란시스코 성당에 간다. 이곳에는 지하무덤인 카타콤이 있다.
그룹 가이드로 성당을 둘러보고 카타콤을 돌아본다. 성당의 여기저기에는 페루의 역사가 남아있다.
성당의 아름다운 내부와 그림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그림이 있다.
가이드가 가리킨 곳에는 최후의 만찬이 그려져 있다.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치려는데 가이드가 그림을 자세히 보라고 한다.
산 프란시스코 성당의 최후의 만찬 그림 속 예수님은 페루의 음식인 꾸이를 앞에 놓고 있다.
꾸이는 쥐와 비슷한 기니피그를 통째 구워먹는 페루 요리다.
큰 쥐를 바비큐해 놓은 비주얼이라 먹을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여기 그림 속에서 만난다.
스페인이 무력으로 개종시킨 종교지만 이렇게 토착화된 모습이 원주민의 마음을 달래준 것 아닌가 싶다.
엄숙한 성당에선 경건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만, 특히 해골과 뼈가 쌓여있는 카타콤에서는 모든 게 조심스러워진다.
앙상하게 남은 사람의 뼈들이 쌓여있는 광경은 관람객들을 숙연하게 한다.
뼈만 남은 형체를 보면 산다는 것이 덧없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게 한다.
가이드 투어를 마치고 다시 성당의 마당으로 나온다. 들어갈 때는 몰랐는데 놀랄 만큼 많은 비둘기들이 모여 있다.
인기척에 놀란 비둘기들이 성스러운 무엇을 의미하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잿빛 하늘 위로 날아오른다.
다음은 종교 재판소로 간다.
미리 예약을 해야 영어가이드가 가능하다는데 다행히 조금 기다리니 먼저 예약한 외국인들이 도착해서 함께 가이드를 들을 수 있다.
종교재판소라는 말 그대로 페루에 침략한 스페인 세력들이 그들 입장에서 ‘이교도’인 잉카인들을 재판하고 잔혹하게 고문하던 곳이다.
지금은 그 시절의 참혹한 모습들이 밀랍인형으로 재현되어 있다.
식민통치 시대의 역사를 부정하거나 단순히 수용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것을 인정하고 아픔을 상기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인상 깊은 곳이다.
산크리스토발(San Cristobal) 언덕이 멀리 보인다.
꼭대기에는 거대한 십자가가 세워져있고 중턱까지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다.
산크리스토발 언덕의 알록달록한 색은 지붕이 없는 집도 있다는 소위 판자촌의 풍경이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게 보이는 서글픈 풍경이다.
산처럼 커다란 언덕 위의 십자가와 그 아래 판자집을 배경으로 자동차들이 넘치는 부산스러운 리마의 오후가 지나간다.
바쁘게 돌아다닌 센트로에서의 하루를 마치고 숙소가 있는 미라플로레스로 돌아온다.
꽃밭에는 연인들이 앉거나 누워 있고 공원에는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고양이들은 마치 여기가 그들의 집인 양 아무데다 누워서 리마의 저녁을 즐기고 있다.
일정에 쫒기는 사람처럼 마지못해 여기저기를 쏘다닌 하루도 저물고 있다.
뭔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한 이 느낌은 아마 대도시를 벗어나야 없어질 것 같다.
저녁을 먹고 호스텔로 돌아간다. 루프탑 식당에서 음악솔가 요란하다.
오늘 밤 살사댄싱 교습을 한다는 메시지를 아침에 리셉션에 서 봤던 게 생각난다.
카운터 앞 소파에서 맥주 한 병 마시고 있다가 호스텔 직원의 친구라고 소개한 사람과 인사를 하게 된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루프탑으로 가게 된다.
빠른 템포의 살사음악을 틀어 놓고 몇 사람 안 되는 인원이 춤을 배우고 있다.
워낙 몸치인 나는 그냥 구경만 하려했는데 어떤 낚아채는 손길 때문에 어울리지 않게 한참동안 스텝을 배운다.
여행지가 아니었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들을 하고 있기는 하다.
살사 스텝을 배우는 게 무슨 대단한 일탈이라도 되는 듯 은근히 신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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