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쏠 적군도 없는데.. 섬나라 호주는 왜 한국산 K-9 자주포를 사나

*바다향 2020. 9. 3. 20:17

국내 기술로 개발된 K-9 자주포가 기동하고 있는 모습. 한화디펜스제공 

 

지난 1월 한화디펜스(이하 한화)의 이성수 대표는 호주 멜버른에서 남서쪽으로 80km가량 떨어진 질롱(Jeelong) 시(市)로 날아갔다.

대표는 카일리 그레이저 부시장 등 지역 고위급 인사를 두루 접촉하며 질롱 지역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표현했다.

국내 대형 방산 기업 대표가 지구 반대편 인구 20만의 소도시까지 찾아간 사연은 뭘까.


호주 총리의 총선 공약을 노리다

1925년 미국 자동차 기업인 포드가 질롱에 공장을 열었다.

이후 90여년 간 질롱은 호주 자동차 산업의 거점으로 군림했다.

경영난을 이기지 못한 포드는 2016년 질롱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졸지에 일자리를 잃은 질롱 시민들의 불만은 커져 갔고,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지난해 5월 '해외 기업의 자주포 공장 유치 계획'을 총선 공약으로 발표했다.

호주 육군 현대화 계획의 일환으로 질롱 지역에 자주포 생산 공장을 유치하겠다는 것이었다.

 

국산 자주포 K-9의 호주 수출 기회를 노리고 있던 한국에는 다시 오지 않을 기회였다.

동시에 약 10년 만에 다시 온 기회이기도 했다.

 

2010년 한화는 자주포 수출 경쟁 입찰을 뚫었지만, 호주 정부 예산문제로 2년 만에 사업을 접어야 했다.

한화는 질롱 지역 인사들과의 접촉을 늘리며, 현지 일자리 창출 방안을 연구했다.

이성수 대표가 질롱 지역까지 날아가 K-9 자주포 등 한국산 지상 무기체계 우수성을 역설해야 했던 이유다.

 

질롱 지역과 호주 군 당국의 문을 끈질기게 두드린 끝에, 한화는 결국 'OK'를 받아냈다.

호주 국방부는 3일 K-9 자주포를 육군 현대화 프로젝트 중 하나인 '랜드 8116 자주포 획득사업'의 단독 우선공급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사업 제안서 평가와 가격 협상이 끝날 것으로 보이는 내년쯤 정식 계약이 체결될 전망이다.

 

1차로 K-9 자주포 30문과 K-10 탄약운반장갑차 15대를 납품하는 이번 사업에 호주 정부는 1조원 가량의 예산을 편성했다. 포드가 떠난 빈자리를 K-9 자주포가 꿰찬 셈이다.

 

명품 자주포 생산국인 독일까지 제치고 한국을 택한 것은 K-9의 성능이 그만큼 입증됐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2010년 자주포 사업 입찰 당시 호주는 한국을 포함한 복수 국가에게 입찰 기회를 줬다.

이번엔 처음부터 한국 만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한화 관계자는 "10년 전 K-9 수출 실적은 '제로'였지만, 지금은 각국에 600여문이 나간 상태"라면서

"그간 쌓인 이같은 평판이 호주의 선택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호주 질롱 시를 방문한 이성수(왼쪽 세번째) 한화디펜스 대표가 해카일리 그레이지벡(오른쪽 세번째) 질롱시 부시장 등 시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화디펜스 제공


섬나라 호주의 '중국 견제' 포석?

K-9 자주포는 한화와 국방과학연구소(ADD)가 1998년 국내 기술로 독자 개발한 자주포다.

사거리 40㎞에, 1분당 최대 6발까지 발사할 수 있다.

2000~2017년 세계 자주포 수출시장에서 K-9 자주포는 48%의 점유율로 1위를 기록했다.

 

K-9은 2001년 터키를 시작으로 폴란드, 인도, 필란드,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등에 600여문이 수출됐다.

주로 비(非)서방권 국가들로, 미국의 안보 우방국 수출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과 연합 작전을 자주 하는 영국 등 다른 서방권 국가로의 수출 가능성까지 연 셈이다.

 

섬나라인 호주는 접적(接敵) 지역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K-9을 수입하기로 한 것에는 중국 견제 목적도 깔려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 진출 야욕을 최근 수년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호주 안보 정책은 미국과 손 잡고 중국의 해양 진출을 막아야 한다는 쪽으로 최근 기울었다.

 

박재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권 교수는 4일 "중국이 자신들을 때릴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던 호주의 생각이 달라지고 있는 셈"이라며

"해군뿐 아니라 지상군 화력까지 키워 미국과의 합동 작전 능력을 높이겠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호주는 중국 포위망 구축을 목적으로 한 4개국(미국ㆍ일본ㆍ호주ㆍ인도) 연합체인 쿼드(Quad Bloc)의 핵심 멤버다.

호주는 지난 7월에도 남중국와 괌 주변 해역에서 미국ㆍ일본과 함께 대규모 연합훈련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