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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이날’] 전통인가 왜색인가 트로트 뿌리 논쟁 가열

*바다향 2020. 8. 25. 18:00

196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오래 전 ‘이날’]전통인가 왜색인가 트로트 뿌리 논쟁 가열

196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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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의 트로트 예능 프로그램 ‘미스터트롯’ 무대에 오른 출연자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장민호, 영탁, 임영웅, 김호중, 김희재, 정동원, 이찬원. TV조선 제공

 

■1990년 8월24일 전통인가 왜색인가 트로트 뿌리 논쟁 가열

최근 ‘트로트’ 열풍이 TV을 넘어 유튜브까지 모든 플랫폼에서 여전히 식지 않고 있습니다.

댄스, 발라드, 힙합 등의 음악이 지배하고 K팝에는 끼지도 못했던 트로트가 이제는 주인공이 됐습니다.

TV 프로그램에는 트로트 가수들이 대거 출연하고 있고 광고에서도 트로트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지난해 ‘미스트롯’으로 트로트 흥행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TV조선의 올해 새 트로트 예능 프로그램인 ‘미스터트롯’은 지난 1월 방송을 시작해 비지상파 프로그램 중 최고 시청률인 35.7%(닐슨 집계 전국 가구 기준)를 기록했습니다.

현재 방영 중인 ‘신청곡을 불러드립니다-사랑의 콜센타’는 시청률이 23.1%까지 올랐습니다.

임영웅, 영탁, 장민호, 김호중 등 스타 탄생과 함께 트로트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많은 인기를 끌게 됐습니다.

하지만 트로트를 따라다니는 것이 일본의 ‘엔카(演歌)’입니다.

트로트의 뿌리가 엔카라는 논란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1970년대에는 포크, 록 등 청년문화가 퍼지면서 트로트는 여러 차례 왜색 논란에 휩싸이며 대중문화의 변방으로 내몰렸습니다.

경향신문은 30년 전 ‘전통인가 왜색인가 트로트 뿌리 논쟁 가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1990년 8월24일자 경향신문 캡쳐.

 

‘트로트 가요는 과연 왜색 가요인가’, ‘트로트 가요의 뿌리는 어디이며 한국 전통가요의 본래 모습을 갖고 있는가’.

트로트 가요의 왜색·정통성 시비는 한국 대중가요 60년사에 있어 가장 풀기 어려운 난제로 남아있습니다.

 

어찌 보면 트로트 가요의 왜색 시비는 한국의 대중가요가 일제의 문화 강점하에서 태동됐다는 악연으로 인해 민족적 불운의 논쟁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요계에서는 1930년 가수 채규엽이 부른 유행가 ‘봄노래부르자’를 대중가요의 시발로 꼽고 있는데요.

30년대는 일제의 문화 말살 정책이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다는 점에서 논쟁의 시점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트로트 가요의 왜색 시비는 가요사적 측면에서 볼 때 50년대 말 가요정화 운동에서부터 수면 위에 떠올라 40년간 금지와 해금의 우여곡절을 겪어왔습니다.

당시에는 공연윤리위원회의 백서에서 이 논쟁이 재연됐고 방송협회 제17회 방송대상 남녀가 수상 수상자를 놓고 논쟁이 가열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트로트 가요 옹호론자인 작곡가 박춘석씨와 비판론자인 작곡가 최창권씨의 견해를 들어봤습니다.

 

트로트 가수 송가인.

 

■작곡가 박춘석

트로트 가요는 한국의 전통가요입니다.
트로트 가요는 한민족의 무속 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불교음악, 인도음악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동양의 음악은 인도를 발상지로 해 중국·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파된 경로와 인도에서 동남아 국가를 거쳐 한국과 일본에 전래된 두 가지 경로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동양 음악은 ‘도·레·미·솔·라’의 5음계로 곡을 구성하는 공통적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일본의 요나누키 음계 등이 우리의 음계와 비슷하다고 해 왜색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부당합니다.

동양 음악의 전파경로를 살펴보더라도 트로트 가요는 오히려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트로트 가요의 왜색 시비는 한·중·일의 의식주 등 생활풍습이 비슷한 데서 비롯된 오해입니다.

특히 단조의 노래는 반도와 섬나라에서 발달돼 트로트 가요의 정통성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중가요의 인기는 자생적 측면이 강해 정책이나 강압에 의해 유행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트로트 가요는 일제하가 아니더라도 탄생됐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엔카의 이론을 최초로 정립한 고가마사오(古賀政男)도 ‘엔카의 사상은 한국적인 것’이라고 고백한 점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트로트 가요와 엔카는 내용면에서도 크게 다릅니다.

엔카는 남녀 간 애정, 불륜의 사랑을 노래하는 경우가 많으나 트로트 가요는 토속적이고 애향심·부모 은공을 노래해 정서적으로 구별되고 있습니다.

또 엔카는 4분의2박자의 경박해 보이는 리듬이 주류이나 트로트 가요는 신명나는 굿거리장단과 비슷한 4분의 3박자가 골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엔카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 ‘사나이 순정’, 등 3박자는 오히려 한국의 박자를 이용해 일본에서 히트한 대표적인 예입니다.

따라서 트로트 가요는 창가·민요에서 발달됐고 ‘아리랑’, ‘창부타령’, ‘노랫가락’ 등 창가·민요는 무속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는 셈입니다.

‘노들강변’, ‘대한팔경’, ‘능수버들’ 등 신민요가 일제식민지하에서 탄생했다는 것은 곧 한국의 전통가요가 왜색 조의 엔카와 다른 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일본 엔카 가수 나가야마 요코 유튜브 캡쳐.

 

■작곡가 최창권

트로트 가요로 불리는 뽕짝 가요가 우리 전통가요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 전통가요는 ‘아리랑’ 등 민요와 창가 이후 정통성을 가진 대중가요로 발전되지 못했습니다.

‘국내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트로트 가요를 왜색 가요라고 해서 굳이 거부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수긍이 가지만 ‘트로트 가요는 왜색이 아니다’라는 주장에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왜색 가요. 즉 엔카에는 몇몇 뚜렷한 특징이 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우선 가수들의 창법에서 나타납니다.

엔카는 비음을 이용한 콧노래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우리 고유의 전통가요 창법은 판소리처럼 열창하는 목소리를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음계가 트로트 가요와 엔카는 똑같습니다.

엔카는 장조곡에서 이나카부시(田舍) 음계, 단조곡에서 미야코부시(都節) 음계를 사용하고 있는데 일제하에 탄생한 뽕짝 가요는 엔카의 음계와 같기 때문입니다.

또한 편곡에서도 엔카는 기타 반주를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통탕거리는 듯한 리듬으로 들리는 이기타반주는 일본 전통악기인 샤미센(三味線)·고토(琴) 등의 음색을 살리기 위해 이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일제하의 트로트 가요가 대부분 현란한 애드리브을 가미한 기타 반주로 노래된 것도 바로 엔카의 영향이기 때문입니다. 박자에 있어서도 엔카는 2박, 4박, 16박자 등으로 세분화되고 있으나 우리의 전통적 박자는 3박, 9박자의 형태로 세분화합니다.

일제하의 이른바 뽕짝 가요는 ‘뽕’으로 하는 선(先)박자와 ‘짝’하는 후(後)박자, 즉 2박자의 계열로 구성돼 있는 것도 엔카의 영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일본 엔카의 이론인 고가마사오는 한국의 가요가 엔카의 영향을 받은 후인 20년대에 한국 선린상업에서 공부한 인물로 ‘엔카가 한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그의 주장은 근거가 미약합니다.

엔카는 이미 명치(明治) 시대부터 유행했던 일본 가요이기 때문입니다.

뽕짝 가요는 시대적 산물로 그 존재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트로트 가요가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고 대중정서를 달래고 있다는 것을 반박할 이유도 없습니다.

하지만 엔카의 영향을 받은 트로트 가요를 우리의 전통가요로 부를 수 없거니와 엔카적인 발전 또한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반면 최근 들어서는 서양 음악을 받아들인 일본의 유행가가 한국으로 건너와 우리 음악과 결합해 트로트가 틀을 갖추게 됐다는 게 정설입니다.

하지만 트로트가 일본 엔카의 영향을 받았더라도 현재까지 이어왔고, 지금까지도 의미가 있다는 것 또한 우리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