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병역 특혜 없는 싱가포르..한국과 다른 점은?
금메달=병역면제...'병역 특혜' 이슈가 된 아시안게임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선수들의 메달 레이스 만큼 관심을 끄는 이슈가 바로 몇몇 국가대표 선수들의 병역 면제 혜택이다. 축구 대표팀의 에이스 손흥민(26.토트넘) 선수는 물론이고, 올해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노리고 지난해 상무와 경찰 야구단 입단을 하지 않아 네티즌들로부터 "은메달을 기원합니다"는 비아냥거림을 받고 있는 야구 대표팀의 오지환(28.LG)·박해민(27.삼성) 선수에게도 이번 아시안게임은 병역 면제를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
한국에서 병역 문제는 민감한 이슈이다. 그래서 그런지 스포츠 선수들의 병역특례에 관해서도 "국위 선양을 한 선수에게 병역 면제 혜택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스포츠 대회를 병역 면제의 수단으로 전락시켜서는 안된다"며 "선수들의 병역 특례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싱가포르, 18세 되면 무조건 2년 복무... 병역 이행 뒤 대학 진학
그런데 병역 의무와 관련해서 한국보다 더 엄격한 나라가 있다. 바로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한 직후인 1967년에 의무 병역제를 도입해 모든 남성은 18세가 되면 군이나 경찰, 소방대 등에서 2년을 복무해야 한다. 싱가포르 시민권자는 물론 영주권자의 2세까지 예외 없이 국방의 의무를 져야 한다. 더구나 거동이 불가능할 정도거나 극히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모두 현역이다.
올해 8월 9일 싱가포르 건국기념일 퍼레이드
병역 대상자의 해외 출국도 엄격히 제한되어 있다.
해외 체류 기간이 2년 미만일 경우 출국 허가를 받으면 되지만 2년을 넘을 경우 출국 허가와 함께 75,000 싱가포르달러(약 6,139만원)을 적립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그래서 싱가포르에서는 보통 고등학교를 마치면 현역 복무를 마친뒤 대학을 가거나 해외 유학을 떠난다.
싱가포르, 병역 기피하면 징역형 뒤 다시 군 입대
병역을 기피하는 남자들에게는 강한 처벌이 뒤따른다. 병역 기피 기간이 짧고 복무를 할 수 있는 나이면 단기 징역형을 산 후 다시 군 입대를 해야 한다. 나이가 들어 의무 복무를 할수 없는 나이면 장기 징역형을 산 뒤에 다시 대체 병역의무가 부과된다. 40세가 넘어 병역 의무를 전혀 이행할 수 없으면 최고 3년 징역형이 선고된다.
벤저민 데이비스(싱가포르 축구협회 홈페이지 캡처)
최근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한국 스포츠 스타들의 병역 문제에 맞물려 싱가포르에서 병역과 관련한 주목할 만한 두 가지 중요한 이슈가 있었다. 하나는 싱가포르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에 진출한 10대 유망주 벤저민 데이비스(Benjamin Davis 17, 풀럼)의 병역 연기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Crazy Rich Asians)'의 원작 소설 작가 케빈 콴(Kevin Kwan, 44)의 병역 기피 혐의이다.
싱가포르 17세 英 프리미어 리거 병역 연기 신청 거부 당해
올해 17세인 영국 EPL 풀럼 구단 소속의 벤저민 데이비스는 싱가포르 정부에 병역연기 신청을 했지만 최근 거부됐다. 데이비스의 아버지는 빅리그에 진출한 아들의 발전 속도 등 다양한 변수가 있으므로 당장 병역 의무 이행 시기를 못 박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하지만 응 엥 헨 싱가포르 국방부 장관은 "데이비스의 병역을 연기해줄 경우, 제때 병역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한 다른 사람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프로선수로서 뛸 수 있을 만큼 뛴 뒤에 병역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심산인데, 국가와 병역 의무를 포함한 국가의 이익은 두 번째 고려 대상이었던 셈"이라고 잘라 말했다.
싱가포르 국방부는 스포츠 선수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국 작가에게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1993년 '조이 럭 클럽' 이후 25년 만에 주연부터 조연까지 모두 아시아계 배우들로 채운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는 개봉하자마자 돌풍을 일으키며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 이 영화의 원작 소설 작가 케빈 콴은 싱가포르 출신으로 11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 휴스턴으로 이주했고 18살에 미국 시민권자가 됐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 작가도 병역 불이행으로 입국할 경우 징역형
하지만 콴은 싱가포르 병역의무 이행을 위한 등록을 하지 않은채 해외에 장기 체류해 16살때부터 싱가포르에서 병역의무 불이행으로 수배된 상태이며 20살 때 국적 포기 신청을 했지만 싱가포르 정부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8월 7일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의 주연 배우 헨리 골딩(Henry Golding,
왼쪽)과 콘스턴스 우(Constance Wu, 가운데)와 함께 미국 영화 시사회에 참석한
케빈 콴(Kevin Kwan, 오른쪽)
콴은 결국 병역 기피로 지난 21일 밤 싱가포르에서 열린 영화 시사회에 참석할 수 없었다.
소설과 영화의 배경이자 모국인 싱가포르에 입국할 경우 체포돼 징역형까지 당할수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국방부는 22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케빈 콴이 병역법 위반인 상태로 최대 1만 싱가포르
달러(820만 원)의 벌금과 3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한 사람의 예외도 안된다는 싱가포르 정부
벤저민 데이비스와 케빈 콴은 싱가포르 국적과 함께 각각 영국과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이중국적자이다.
이들의 입장에서 싱가포르 정부의 병역의무 이행 요구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면 국적을 포기하거나 국적 포기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해도 싱가포르로 돌아가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17살의 싱가포르 출신 첫 프리미어 리거의 요구는 병역을 면제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연기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싱가포르 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한 사람의 예외를 인정하면 원칙이 무너지고 그러다보면 원칙에 따라 병역의 의무를 이행한 다른 사람들과의
형평성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